-사쿠라 조갑제기자의 ‘전라도 유교’식 “윤석열=오랑캐”판단이 제조업붕괴 이유-

필자는 이재명 민주당을 변호하는게 아니다. ‘광주일고 『조선일보』의 순진한 1차원적 판단을 비판한다.
“클라라 마테이”라는 이탈리아 출신 중도좌파 경제 유튜버는 자본주의를 이렇게 요약한다. (허구헌날 “그람시”따지는 좌파 색깔이 매우 깊다) 자본주의는 <생산시설의 사유화>, 그리고 <더 많은 생산을 향한 푸쉬>를 두 축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는 폰 비저의 [권력의 법칙] 용어로 바꾸면, 더 많은 생산은 공통의 과업을 위한 <과업 공동체>로 공정한 법이 주어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 붕괴의 본질적인 원인은 결국은 ’공정한 법‘이라는 논리를 완전히 묻어버릴 만큼, 붕당정쟁의 폭주다.
검찰이 법학 이론의 논리로 <공정한 법>을 외칠수록, 더불어 민주당은 ’원불교‘(사탄교)나 기타 일제 시대의 동학공산운동 세계관 기준으로 파악할 것이다. 시장경제는 계약자유원칙이고, 그 시장경제의 계약은 유대기독교 원리이거나, 민법원리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에 토대가 된다. 다시 말해서, 더 많은 생산, 더 나은 효율성을 주장할수록, 더불어 민주당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나타난 노장사상으로, “부역 반대(공정한 법을 따지는 질서에 서 있는 것의 반대)”를 외치고 있다.
영어권 경제유튜버로 자주 참조하는 <프로액티브 띵커>라는 경제유튜브는 미국의 99.8%가 은퇴를 못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조차도 사회보장제도가 망한다는 것이다.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더 나쁜 인구곡선을 가진 한국은 인정안한다. 왜냐하면, 유신체제의 영남유교 질서와 유사하게, 김대중체제는 동학으로 진인 정도령인 국가가 국민에 <계룡산 신도안>(일종의 무릉도원) 보내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을 돌아설 수 없다. 뿐만 아니다. 노장세대가 이익을 보아서 미국보다 더 사회보장제도 파산이 쉬운 상황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한다. 이는 매우 심플하다. 유대기독교원리로서 <공정함>은 한국의 사회보장질서는 파산의 인정이 맞다. 폴 크루그먼이 한국에서 보장액을 절반으로 줄이거나, 미국처럼 계속 받는 시점을 늦추는 것만이 답이다.(사실상 파산이다)라고 충고해도, 한국정치는 받을 생각이 없다. 마치, 전태일 때 저임금 근로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을 묻고 가자,고 했듯이, 고도로 현실 권력중심으로 젊은세대에 불공정한 질서를 묻고 가자고 한다.
광주일고 조선일보는 <동학종교>의 기본교의인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바라본다. 1985년생 이준석이도 <불의가 하수처럼>운운하는 뻘 소리를 했다. 이 안에서 서양문명과 연결은 <대 실패>다. 유교의리론은 이준석이 근간하는 씨족 프렌들리다. 그 밖에서는 황당무계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씨도, 이준석 세계관 연장이다. 모래시계 검사의 최종결산은 결국 <법의 보호>가 아니라, “영남 내부의 친 호남양반 연합 세계관”이었다. 로스쿨에서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교과서 원리는 결국 양반 논리로, 누군가 다른 양반귀족이 세운 논리다. 양반끼리의 논리에서 그런 게 어딨나? 무조건 어겨야지. 문제는 이런 속에서 “제조업”의 토대인 과업공동체란 인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유신체제를 긍정하지 않는다. 김대중 지지자들과 다른 의미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한다. 그러나, 원불교 백낙청 지인이 생각하는 유신 박정희체제의 상징은 부정할 수 없다. 백낙청 지인은 강한 호남색깔로 공정한 법이 아닌데, 당시의 현대 자동차 근로자들은 미국 수출 확장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불가능하다는 호남색깔 강한 원불교 백낙청 지인을 통해서, 필자는 그 분과 만난 순간에서는 당신이 이해 불가능하다고 하고 싶었다.
87년 서양법을 제대로 적용하겠다고 고백하고, 영화 <건국전쟁>과 영화 <길위의 김대중>의 연합논리로 바라보는 국민공동체인식은, 과업 공동체로서 제조업 토대의 문화를 안 만들겠다는 고백과 같다. 오직, 영남의 이승만에 줄 선 친 호남파와 호남파끼리의 연합한 일당독재 정치권력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은 모범 안하고, 국민과 미국이 저절로 법을 수호해준다는 것을 믿는다. 국민과 미국의 선의에 의존하는 극도의 귀족의 권리만 누리고, 의무 도외시가 지속된다.
이승만, 박정희를 훌륭한 임금이라고 빨아대는 영남 내부의 양반 집단의 유교의리론은 좋다고 보자. 그 속에서 제조업할 마음이 나겠나?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이 기업인인 경우도 많은데, 이 분들은 민주당 색깔의 근로자 계층을 인정하여 노동조합을 끌어안는다. 한국경제는 노동조합이 문제가 아니라, 원불교(사탄교)중심의 민중운동이 결국은 전혀 진보기독교자체가 아닌 공산부족의 율도국을 지향하는 의도인데, 진보기독교를 호소하는게 문제다. 지금, 민주노총이 됐든, 공무원 노조가 됐든, 거의 대부분의 말단 영역의 플랭카드는 대량으로 발견되는게 동학세계관이지, 진보기독교 세계관이 아니다.
보수경제학이든 진보경제학이든 성서적 내러티브 위에 있다. 그런데, 한국은 홍준표씨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유신시대에 억압된 양반임을 대놓고 고백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무차별 고백 위에 있다. 공정한 법으로서 경제학의 작동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문화 위에 있다. 이재명 민주당은 계속 지르는 정책은 동학 세계관 위이지, 보수와 진보 경제학에 깔린 그런 성서적 내러티브가 아니다.
유신시대의 경제개발 *개년 계획의 참모의 전능함이, 동학신앙적으로 뒤엎어져서, 무한대로 보수층에 정책 부담을 안은 채 17-19세기 전라도 지배체제처럼 자기층에 선물정치하는 의미로 돌아간다.
김대중체제의 부동산 정책은 기억할 사람은 기억하는 데, 유신시대에서 광범위한 투기 억제에 대하여, 김대중 지지자들에 노무현이 풀어준다는 그런 의도로 나왔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2006년 강남에 공인중개사 협회에서 강사로 나온 분이, 과거와는 다르게 부동산 중심의 정책이 벌어진다고 했던 때다.
광주일고 <조선일보>의 부동산면은 그 자체로 무속신앙 펌프질과 연결된 우상향 논리의 도배다. 이게 국민의 세뇌에 완성이 됐다.
“광주일고 조선일보”의 지능지수가 매우 낮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한다.
유신체제처럼 그런 영남 왕권제 국가관으로 돌아갈 수 없고, 원불교(사탄교) 백낙청 중심의 일당독재 당국가 국가관으로 분단체제론에 기록된 것은 불법체제다. (광주일고 조선일보는 또 일당독재를 논하지만, 원불교 백낙청은 꼭꼭 숨겨준다)
공정한 법질서 위에 제조업 과업 공동체가 필요하고, 공정한 법질서는 귀족연합의 집단적 의지에서 필요하다. 필자는 어렵게 공정한 법질서를 보지 않는다. 로스쿨의 수입된 교과서적 법이론으로 본다. 이 위에서 국민정신을 어떻게 세우느냐, 인문학과 연합이 필요하다.
광주일고 조선일보 데스크야!
당신들은 지난 30년간 뭘 했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