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5월 중공군 제19병단 (189사단 , 188사단 , 187사단) 이 청평호를 기습 도하하면서 전투가 시작됨 . 

 당시 청평호는 지금 처럼 수위가 높지 않아 도하가 가능했던 강 이였고 중공군 3개 사단의 주파식 공격으로 2개 대대였던 2연대는 철수하게 됨 


   


  6사단 2연대는 선봉에 있던 부대였고 미군은 6사단 2연대에게 용문산 진형 선두에서 미군본대가 지원 올때 까지 시간을 벌어달라는 임무를 받게됨 

 이 당시 미군은 38도선 이북까지 북진하려고 공세작전을 준비하고 있었음 . 만약 6사단 2연대가 뚫리면 미군의 38도선 북진 공세작전은 취소가 됨 

  그렇게 6사단 2연대는 중공군 3개 사단의 공세작전에 포위되어 고립되었고 6사단 2연대는 괴멸되나 싶어 미군사령부에서 6사단 2연대에게 

 상황이 좋지 않으면 철수하고 6사단 19연대 , 6사단 7연대와 합류하라고 지시를 했지만 6사단 2연대는 거절하고 중공군 3개 사단과 계속 싸우게됨 . 

그 당시 생존했던 6사단 2연대 병사들 증언에 의하면 중공군 수류탄이 사방에서 날라왔는데 다시 주워 던졌다고함 심지어 3대대 , 1대대는 

백병전 까지 했으며 진내포격 까지 요청 했다고함 .  

중공군 제19병단 입장에서는 " 저곳이 6사단 본대다 " 생각하고 중공군 3개사단이 맹공격을 했지만 쉽게 뚫리지 않게됨 . 

오죽하면 제19병단 지휘관이 " 저곳이 정말 한국군이 맞나 ? 왜 도망가지 않고 계속 싸우는거냐 ? 미군이 아니고 정말 한국군이 확실하냐 ? " 라고 물어봤다함 

그렇게 1951년 5월 18일 ~ 1951년 5월 20일 새벽 5시 까지 6사단 2연대가 중공군 3개 사단의 맹공격을 막았고 중공군은 뚫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 

1951년 5월 20일 새벽 5시  미군본대의 지휘아래 후방에서 6사단 19연대 , 7연대가 합류하고 미 24사단 , 미7사단이 도착하면서 

6사단 2연대가 사기가 충전되어 공격 당하던 부대가 되려 참호에서 뛰쳐나와 중공군을 공격하는 상황이 발생함 . 

이때 미군지휘부와 6사단장이 " 2연대 본대 복귀하고 교체해라 너네 너무 무리했다 쉬어라 , 재정비해라 " 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하고 

참호에서 뛰쳐나와 중공군을 공격하는데 중공군은 이미 사기가 완전 꺾여 있었고 오죽하면 이 당시 제19병단 중공군들 소문에는 

" 쟤네는 한국군이 아니라 일본군이다 미국이 일본군들을 데리고 온거다  " 라며 괴소문 까지 일어나 사기가 완전 바닥이였던 상황에 

6사단 2연대가 대검을 장착하고 돌격하니 중공군 3개 사단이 놀라서 철수명령도 없이 우왕자왕 도망가기 시작했다고함 ...

그렇게 6사단 2연대는 69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반대로 중공군은 4,912명이 전사하고 9명의 포로를 붙잡았다고함 . 

사실 이 9명도 6사단 2연대를 피해 미군에게 도망간 중공군이였다고함 . 이때 6사단 2연대는 도망가고 항복하는 중공군 까지 모두 사살했다고함 . 

그래서 포로 9명이 " 일본군이다 " 라며 미군쪽으로 도망갔다고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