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의 설계자, 패밀리오피스]

<2> 0% 세율로 '슈퍼 리치' 끌어오는 홍콩

2.간편한 설립 절차

별도 인가·사전승인 없이 신고만

3.투자이민 유연성

투자 유지기간 2년서 6개월로 축소

4.고객 보안성 강화

자금세탁방지 정보공유 의무 없어

5.아트테크 활성화

자산가 애용 미술품 경매 세계 2위

15일 홍콩 센트럴 지역 퀸스 로드에 위치한 더 센터 건물 앞에 위치한 황소상. 더 센터 건물에는 래플스 패밀리오피스와 싱가포르 DBS은행 홍콩 본사 등 금융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사진=윤지영 기자

15일 홍콩 센트럴 지역 퀸스 로드에 위치한 더 센터 건물 앞에 위치한 황소상. 더 센터 건물에는 래플스 패밀리오피스와 싱가포르 DBS은행 홍콩 본사 등 금융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사진=윤지영 기자




크고 작은 싱글 패밀리오피스(SFO)와 멀티 패밀리오피스(MFO), 시중은행들이 밀집해 있는 홍콩 센트럴 지역은 대표적인 금융 중심지로 꼽힌다. 홍콩 항셍은행 본사와 홍콩 대표 멀티 패밀리오피스인 ‘래플스 패밀리오피스(RFO)’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으며 간판은 없지만 건물마다 부동산 재벌 가문 등이 설립한 싱글 패밀리오피스들이 자리 잡고 있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세계 100대 은행 중 70곳 이상이 홍콩에 진출해 있으며 세무나 법률·자산운용 등을 돕는 금융 전문인력 26만 7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홍콩은 여러 가문의 투자를 돕는 멀티 패밀리오피스보다 한 가문만을 전담으로 하는 싱글 패밀리오피스가 ‘대세’다. 싱글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초고액 자산가의 자금을 한번에 홍콩으로 결집할 수 있어서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딜로이트그룹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홍콩에서는 약 2700개 이상의 싱글 패밀리오피스가 운영 중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의 자산 규모는 약 7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홍콩은 ‘중국화’ 논란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싱가포르 등에 밀려 아시아 대표 패밀리오피스 허브 자리를 위협받았지만 패밀리오피스 친화 정책을 내세워 초고액 자산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홍콩 항셍은행 본사. 센트럴 지역에는 패밀리오피스와 시중은행 등 각종 금융기관이 모여 있어 금융거래 편의성을 높였다. 사진=윤지영 기자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홍콩 항셍은행 본사. 센트럴 지역에는 패밀리오피스와 시중은행 등 각종 금융기관이 모여 있어 금융거래 편의성을 높였다. 사진=윤지영 기자


대표적으로 상속세·배당소득세·법인세가 ‘0%’인 강력한 세제 혜택이 눈에 띈다. 세대 간 부의 승계와 가문 자산 관리가 주목적인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하는 데 최적의 세금 체계를 갖춘 셈이다. 이 중에서도 자산가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분은 ‘0% 상속세’다. 특히 투자 금액이 200만 홍콩달러(약 3억 6686만 원) 이상이면서 2억 4000만 홍콩달러(약 440억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싱글 패밀리오피스는 법인세도 면제된다. 법인세를 내지 않는 패밀리오피스는 배당·이자소득세도 과세되지 않으며 양도소득세 부담도 없다. 자산가들이 투자 수익을 그대로 재투자해 장기적으로 부를 확대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로널드 챈 차트웰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15일 “세금 혜택 덕분에 최근 이탈리아 운동기구 기업이나 화장품·의류·요트 기업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기업이 홍콩에서 싱글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간편한 패밀리오피스 설립 절차도 강점이다. 홍콩 증권 선물 조례상 규제 활동에 해당되지 않으면 패밀리오피스 설립 시 별도 인가나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카리나 왕 EY홍콩 패밀리 비즈니스 부문 파트너는 “싱가포르에서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면 1년에서 1년 반이 지나야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홍콩은 별도 사전 승인 없이 바로 세금 혜택이 적용된다”면서 “싱가포르는 가문과 관련 없는 1명 이상을 패밀리오피스에서 근무하게 해야 하지만 홍콩은 관련 요건이 없으며 최소 설립 인원 규모(2명)만 충족하면 된다”고 말했다.



패밀리오피스 설립 가문을 위한 투자 이민 문턱이 낮은 점도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부터 투자 이민 프로그램인 자본투자입주제도(CIES)를 새롭게 업그레이드해 운영하고 있다. 당초 2년이던 투자 유지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해 투자 이민 유연성을 높인 게 핵심이다. 6개월 간 최소 3000만 홍콩달러(약 56억 원) 규모의 투자 자금을 유지하면서 출입국관리국의 승인을 받으면 배우자와 18세 미만 자녀도 홍콩에 함께 거주할 수 있다. 2억 4000만 홍콩달러(약 440억 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싱글 패밀리오피스를 홍콩에 설립하고 세제 혜택 조건을 충족하면 가족 중 최대 8명이 이 제도를 통해 영주권 신청 자격을 갖게 된다.

홍콩 정부가 나서서 패밀리오피스 간 다양한 교류 네트워크를 마련하기도 한다. 정부는 글로벌 패밀리오피스 허브 육성 차원에서 ‘홍콩 웰스 레거시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홍콩 난펑그룹 싱글 패밀리오피스인 난펑트리니티의 재닛 흥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홍콩 정부가 주도하는 ‘웰스 포 굿(Wealth for Good)’ 포럼 등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과 싱가포르·일본·대만의 자산가들이 홍콩을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또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한 싱글 패밀리오피스를 위해 보안성도 강화했다. 싱가포르 같은 자금세탁 방지 정보 공유 플랫폼 의무가 없고 개인정보보호조례(PDPO)를 통해 금융 정보의 비밀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이 외에도 홍콩은 자산가들이 애용하는 대체투자의 한 종류인 아트테크 활성화를 위해 ‘아시아 글로벌 미술 시장 중심지’ 자리에 재도전하고 있다. ‘홍콩의 중국화’와 맞물려 미술품 거래 시장이 침체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미지 개선에 나선 것이다. 홍콩 정부는 홍콩국제공항 인근에 예술 스튜디오, 갤러리, 딜러를 한데 모은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대규모 미술품 저장 시설을 짓는 ‘스카이토피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홍콩은 미술품 경매 분야 세계 2위 국가로 최근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 동양화 등을 중심으로 한 아트테크에 관심이 많은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비 오는 홍콩 센트럴 지역 전경. 사진=윤지영 기자

비 오는 홍콩 센트럴 지역 전경. 사진=윤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