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갑제 기자나 김덕영 감독이나 ‘역사학’에서는 쥐뿔도 모르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 귀족들의 조상신 숭배와 얽히는 쪽으로 가면, 마치 군사정권에서 전두환 찬양하면 일자리 생기듯, 부족주의 코드가 생계 코드가 되는 꼴이다.
요즘 필자의 똥글(고품격 표현은 ‘에세이’)로 민사소장에서 번호매기는 사실 정리 방법을 써보자.
①. 1919년 3.1운동 이후 자유진영에 살려줘! 하고 신호 보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②. 아무 신호가 없고 소련공산당만 지원했다.
③. 동학신앙을 통해서 조선공산당으로 영호남이 하나였다. 농촌지대마다 공산당이 있었다.
④. 해방공간은 자릿싸움으로 관직 차지로 돌아갔다.
남로당에 속했던 소련만이 우주중심(중화)라는 호남동학파.
미군정이 선호한 이승만 라인에 속한 영남동학파.
그리고,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세우려는 소련군정에 적극 협력한 평안도의 동학세력.
⑤ 개벽신앙은 권력을 쥔 동학 지도자 밖을 히틀러의 유대인 문제처럼, 잔인하게 배제하고 테러하고 폭력하고 “후천개벽”으로서 통일이라고 불렀다.
⑥ 원불교 백낙청의 남로당 빨치산의 씨족신앙에 기초를 둔 동학.
김일성의 남로당 구출전쟁인 6.25 전쟁 남침.
이승만진영의 군부내 동학파의 북한섬멸 직전의 감정.
필자는 이 모든게 푸코의 구조주의 역사방법론으로 모두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역사공간이었다고 본다.
1930년대 후반에 싹터서,...... 해방공간부터 6.25전쟁 때 작렬하고, 이 구조는 4.19 공간에 다시 튀어나왔다.
⑦ 필자가 ‘복음통일’담론에 돌아버린 이유가 있다. 필자의 시선은 한국의 양당 지지층을 역사사회학적으로, 하나의 교회공동체이자 사회공동체로 바라보는 시점이었다.
동성촌-대농토-조선공산당과 얽힌 지금 노인들의 어린시절 부족주의에 강한 그리움이 있고, 다음 세대에 권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노인세대인 40-50년대생의 윗세대인 20-30년대생은 다 알 만한 일이다. 동족상잔의 신앙이다.
기억할 사람은 다 안다. 20-30년대생은 북진자유통일로서 군부 뺀 나머지 모든 통일담론은 말도 못 꺼내게 했다. 그러나, 남로당 씨족은 군부 통일담론의 기원이 폭력이라고 본다.
⑧ 6.25전쟁을 둘러싼 역사공간이 전부 쌍방폭력이며 쌍방가해. 쌍방종족전쟁이다. 윤석열 탄핵 때도 그 가닥이 이어진다.
⑨ 이 구조를 영원히 가자? 음메 지겨운거.
--결코 이 구조는 통일이냐 분단이냐가 아니라, 통일이란 논리를 지원한 동학신앙 세계관이 히틀러 파시즘이 천억번 형님 할만큼 동족상잔의 피냄새가 진동하는 악마(사탄)의 신앙이 아닌가?
필자는 보수쪽 정보 다 읽고, 진보쪽 정보 다 읽고, 모든 것을 다 읽고 판단하는 판단이다.
⑩. 일제 강점기에 거대한 하나의 대동세상? 조선공산당이며 친중중심의 민족해방 통일전선이다. 이는 기독교 박해세상이다.
[결국, 가해자 증산교 교단, 원불교 교단,---피해자 한국교회의 종교폭력 파시즘 문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