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정부, 판 먼저 깔아준 뒤 선별 지원
국가 주도로 풍력발전 산업 키워
20여년간 수백개 업체 난립하자
보조금 줄이고 무한경쟁 이끌어내
생존한 엔비전 등 5개社 시장 과점
정부·기업 '팀 차이나'로 세계 공략
규제 완화→적자 생존→집중 투자
똑같은 '성공 방정식' 타산업에 적용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시는 말 그대로 ‘풍력발전을 위한 땅’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는 고비사막발(發) 강풍을 가로막을 그 어떤 장애물 하나 없었다. 한국 서·남해안의 바닷바람(평균 초속 6m)보다 센 초속 7~8m 강풍은 고스란히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통과했고, 그때마다 터빈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세계 2위 풍력발전 기업인 엔비전이 운영하는 이 단지에서 연간 생산하는 전력량은 약 184기가와트시(GWh). 5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의 전력은 주변에 깔린 송전망을 타고 퍼진다. 24시간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는 중국의 전기료를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내린 일등 공신 중 하나다. 일부는 최근 가동에 들어간 그린수소·그린암모니아 플랜트로 향한다. 100% 재생에너지로 그린수소를 양산하는 세계 첫 번째 사례다.
풍력발전 후발주자인 중국은 이렇게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쳐 글로벌 풍력발전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최강자로 올라선 데 이어 2030년 845조원 규모로 성장할 ‘클린테크’ 시장에도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았다.

◇정부·기업 ‘원팀’이 만든 풍력 르네상스
중국 정부가 풍력산업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무렵이다. 당시만 해도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쏟아내는 ‘세계의 공장’은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기후 악당’과 동의어였다. 화석연료로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랬던 중국이 풍력과 태양광에 눈을 돌린 것은 에너지 시장의 ‘예정된 미래’로 봤기 때문이다. 마침 중국에는 바람 많고 볕 좋은 네이멍구의 고원과 둔황의 사막 등 천혜의 자연이 있었다. 정부 보조금과 업체 간 무한 경쟁을 통해 빠르게 실력을 키우면 속도가 더딘 유럽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막대한 보조금은 새로운 도전자들을 풍력발전 무대로 올려세웠고, 한 번 ‘정글’에 들어간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생산·물류·운영 혁신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보조금을 줄이기 시작했다. 2021년 300여 개로 불어난 기업 중 쭉정이를 걸러내고 보배만 남기기 위해서다. 살아남은 극소수 기업에는 정부 일감을 안겨 근육을 키워줬다.
그렇게 맨땅에서 풍력발전 시장에 뛰어든 중국은 채 20년도 안 돼 ‘글로벌 톱 10’ 중 6곳을 배출했다. 골드윈드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른 엔비전도 2007년 문을 연 ‘청년 기업’이다. 풍력터빈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 수소·암모니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연매출 100억달러(약 14조원)짜리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 정부는 실력이 검증된 엔비전에 넷제로 산업단지 구축을 맡겼다. 미래 성장동력을 선물한 것이다. 수출도 돕는다. 엔비전은 중국수출신용보험공사의 보증을 등에 업고 브라질 넷제로 산업단지 프로젝트의 핵심인 재생에너지 솔루션 일감을 따냈다. 엔비전 관계자는 “5년 내 세계 100곳에 넷제로 산업단지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소, 핵발전, 탄소포집도 적자생존
무한 경쟁을 이겨낸 기업을 지원해 세계 최강으로 만드는 중국의 신산업 육성 방정식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태양광이 그랬다. 중국 정부는 2010년대 태양광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지정하며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다. 기업들이 난립하면서 태양광 패널 시장은 무한경쟁 체제가 됐다. 끊임없는 생산과 기술 혁신을 통해 싸고 좋은 패널을 개발한 퉁웨이, 진코솔라, 룽지, JS솔라 등만 살아남았다. 지금 이 기업들은 세계 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눈독을 들이는 것은 탄소포집기술(CCUS)이다. 중국은 미국보다 3년 정도 뒤진 기술을 2030년까지 따라잡기 위해 890억위안(약 17조5000억원) 규모 녹색발전펀드를 조성했다. 이 돈은 대부분 CCUS 스타트업에 투입된다. 수많은 관련 기업을 링 위에 올리고, 경쟁시킨 뒤 살아남은 기업을 추가 지원하는 기존 방식대로 산업을 키운다는 구상이다. 시장에서는 모듈형 DAC(직접공기포집)의 오르카에너지, 이산화탄소를 화학원료로 전환하는 린허클라이밋 등이 CCUS 분야의 중국 국가대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