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는 통일’이후 30여년, 일반국민에겐 ‘국민기본권’을 겨냥하는 정치판 ‘지역주택조합 사기’로 느껴지는 이유 – 기독교로 위장한 “동학정치”에 국민과 국제사회가 속아 버렸다는 사실.


 

대한민국에는 두 가지 세계관이 갈등관계에 있다. 이런 사실문제는 존재하는데, 이를 <아는 사람(알지만 권력 없는 사람)>, <알면서 은폐하는 사람(알면서 권력도 있는 사람)>, <알지 못하는 사람(못 배운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①. “민족복음화운동”은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론에 있다.--찰리커크도 이 관점을 신뢰했다. (이는 미국 메인 세력의 관점일 것이다.)

②. 친중좌파는 촛불세력이고, 촛불세력의 민중신학 세력이며, 천도교세계관이 해방신학과 같다는 기만적인 동일시 위에 있다. 사실상, 동학세계관을 진짜로 믿는데 개신교 및 가톨릭 외관을 이용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촛불의 모태는 민중신학.(서남○, 안병○)→함석헌 저작집 30권→ ‘나라’는 해방의 국가, ‘국가’는 억압적 국가(함석헌 선생의 실제 워딩은 나라/국가의 이분법인데, 이의 실제적 의미는 호남은 해방, 영남은 억압)

 

이재명 민주당의 미국에 들이박기 문제에서, 트럼프 공화당이 미국에 투자조건을 매우 세게 건 것에 대하여, 이재명 민주당은 쟁점화할 조짐이다. 여기도 완전히 서로 다른 관점으로 나뉠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의 미국에 들이박아라! 는 것은 중국식 중국경전 이해와 국제관계에서 정답의 길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자국민은 전라도가 우주중심이고 일반인은 노비에요 라는 자인을 요구한다.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것의 판단은 별개 문제다. 일본, EU가 반대하는 의사표시 형식에서 굴욕적인 모욕적 굴욕감을 미국에 느끼게 하는 것은 없다. 미국은 꾸준하게 <동학세계관이 황당해>라고 문재인 때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외친다.

 

50대 이상은 유신시대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이미 경상도식 우주관의 전방위적 중심주의가 호남 김대중 민주당의 노비화를 전제하는 것이라고 그들이 비판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자체 핵무장’은 1977-1979년 카터의 인권론 때 나오고, 지금 나오고 있다. 일반국민 상식은 유신시대를 금기시하는 어법은 당연히, 전라도식 봉건제도 부정이 맞다. 경상도식 봉건제를 금기시하고 전라도식 봉건제로 정주행하는 것은 “금반언 원칙” 정면 위반이다.

 

유신시대는 압도적인 공권력 남용에 의한 정부권력에 일반인이 반대를 못했다. 김대중체제는 압도적인 일당독재 권력에 반대를 못한다.

 

김대중 민주당은 유신국가주의 뿌리는 애국심담론에 원인을 본다. 1인 지도자에 권력집중해야 안정이 온다고 동의를 받는 양식은 애국심담론에 있다. 필자는 김대중체제의 일당독재 원인을 동학신앙에 얽혀진 통일담론에 있다고 본다. 통일담론이 1당독재에 제발로 꿇어 엎드려 승복하라는 세뇌양식의 작동이다.

 

통일담론은 한마디로 천도교 동귀일체, 증산교 해원상생, 원불교 일원상진리로 표현된다. 통일담론은 중국 시진핑이 대만을 종속화하겠다는 의미로서 중국경전 의미만 있었고, 다른 것은 없었다.

 

유신체제 국가주의 담론→ 안정을 위해서 1인 지도자 영남 귀족 권력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라.

 

김대중체제 통일담론 → 통일을 위해서 전라도와 평안도에 공산마을 부족연합 부족권력을 지지하라.

 

여기서 사람을 헷갈리게 한 것이 ‘자유통일’이란 내용의 실제다. 이는 미셸 푸코적인 사회학적 질서로 해방공간부터 6.25 전쟁까지를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볼 때, 동학신앙에 기초된 동족상잔 종교전쟁으로 6.25 전쟁이 바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자유통일’과 ‘민주통일’이 동족상잔의 전쟁의 ‘미시 – 생활문화사’에서 나타나는 모습임을 알게 된다.

 

필자의 판단은 사실세계와 선배세대가 파악한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선배세대는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신앙에 깔린 중국경전 세계관을 미화하여, 그 동족상잔 전쟁의 피해자를 외면하는 권력정치로 일관했다. 전라도 사대부들의 중국경전 읽기는 대개 이런 패턴이다. 그러나, 필자는 89학번 70년생이자 비운동권으로, 고통의 기억으로 이것을 재해석한다. 기독교세계관에 기초된 ‘문화사 역사 방법론’의 읽기다.

 

필자의 판단과 유사한 현상은, 김건희 씨가 새불결 아카데미 김요○ 목사 앞에서 ‘윤석열=통일대통령’ 논하는 것을, 김요○ 목사가 종족전쟁에서 호남의 붕괴로 이해하고 노발대발 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양쪽 자료 다 본 입장은 쓸데 없는 자극이었다고 본다. 동시에, 그들의 국민기본권 강탈을 지향하지만, 전라도식 유교이거나 전라도 동학에 근본주의 미치광이 신앙에 빠져서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격렬하게 ‘아니오!’라고 했어야 할 부분이다.

 

이재명 민주당의 미국에 들이박기는 민주당끼리는 트럼프 공화당의 과도한 요구에 포커싱 맞추지만, 사실은 국민에겐 양쪽이 다 보이며 문재인 때부터 미국 공화당은 동학세계관에 절레절레 하면서 모욕적으로 느낀다며 분노를 표해왔다. 더도덜도 아니라, [이혼숙려캠프]에서 실사판 막장 드라마 불륜 남성을 바라보는 법적 부인의 모욕감이 미국의 느낌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박정희 때에 미국의 세계전략 때 나타난 표현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일본 헌법 용어이면서 독일 기본법 용어다. 독일기본법은 히틀러 파시즘을 이긴 독일계 유대인들의 관점을 깔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히틀러 파시즘체제이거나, 이와 똑같은 원리의 스탈린주의에 반대를 깔고 있다.

 

위헌정당해산심판권은 50년대 스탈린주의의 부활에 대하여 독일인이 행사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법조문을 원불교 지배층은 전라도 종족종교 기준으로 오랑캐로 본다.

 

일본이 독일기본법 용어를 차용함은, 일본 정치의 사실상 원형인 1930년대 파시즘정치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담고 있다. 일본정치의 핵심은 동경대 국가신도 세력과 동경대 조선공산당 세력의 문제라고 본다. 결국은 일본정치는 동경대 국가신도 세력이 리드한다. 일본은 아시아 세계관이나, 한국 중국과는 매우 다른 인간 윤리 중심의 유교를 갖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자유대한민국’이란 표현이 유행한다. 법 위에서 귀족 연합이 엿장수 맘대로 하는 그런 의미의 ‘자유’로, 법치국가의 ‘자유’가 명백히 아니다. 한국교회가 기독교적 건국론의 전통을 벗어나서, 천도교 세계관인 함석헌 노선에 굴복하니까 빚어진게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미국이 한국에 관세 참교육 하고 싶게 드는 결정적 부분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전라도 종족주의 일당독재 코드’의 폭주를 보는 부분일 것이다.

 

법치는 정치인이 귀족으로서 법의 수호라는 모범을 통해서 빚어진다. 그러나, 미국은 문재인 때부터 계속 의문을 가졌다. 무슨 귀족이 법을 수호안하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한국에 법학이론서 다 보라. 권력분산이고 1인권력 및 1당권력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의 힘은 민주당에도 왜 1당권력이란 말을 못한다.

 

경제는 법치를 매개로 돌아간다. 미국이 생각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원불교(사탄교)지배층과 조갑제기자가 생각하는 ‘자유 대한민국’논리에서 같은 매개고리가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가 깨지면 기독교공동체의 의사소통은 사라진다.

 

세상적으로는 같은 의사소통의 전제가 무너지면 의사소통은 사라진다.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하버마스가 계속 강조하는 부분)

 

문재인 때와 이재명 때 똑같이 원불교(사탄교)를 통해서 동북아 질서에 노론 신화로서 탕평 균형이라면서 미국과 중국에 양다리 치는 데,..... 그렇게 바라보는 데에는 더불어 민주당은 미국을 사대조공체제의 서양 천자국정도로 본다.

 

미국인들의 진지한 의문은 무역!! 의 작동 토대로서 ‘법치’가 서야 하는데, 법치문란이 심각하지 않느냐는 부분일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동학경전 논리로 전라도사대부의 ‘탕평 대동’의 지구적 가치는 개뿔!! 완전한 허구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는데, 마치 유신국가주의 때에 1인지도자 신화 무너지는거 싫다고 계속 버럭버럭 우기는 상황의 붕어빵 반복이다.

 

(필자의 단골 낙서판, 일베 정게가 안 열린다.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