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경제학은 ‘전라도 무속신앙’인가? 동학지배층의 ‘엽기적 번역 만행’인가? -보수진영에 보수주의가 없고, 그 빈자리를 전라도 씨족신앙이 채우는 슬픔
 
 

필자는 전라도 및 경상도 씨족신앙의 정교일치 정치 모두를 부정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배권력이 전라도 귀족층이며 이들이 행하니, 비판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어제도 밝혔듯이, 민주당의 이재명이 제왕적 대통령이란다. 윤석열에 제왕적 대통령이라면서, 이재명도 제왕적 대통령이란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전라도 씨족종교’가 무엇이며》 《어떻게 세상에 나타나는가》를 아예 논의에서 배제한다. 민주정의당 전두환 권력은 광주에서 군대가 출동해서, 폭력을 행사했음을 국민이 알기를 원하지 않았듯이, 김대중체제의 정치인들은 영남에 지역연고를 가진 정당조차도, 온 세상이 ‘전라도씨족주의’로 왜곡됐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국민의 힘은 ‘촛불 두목’ 원불교 백낙청을 거론하지 않고, 촛불두목 원불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도 거론하지 않고, ‘분단체제론’의 정치경제적 작동(필자는 김대중체제란 말을 원불교 백낙청의 생각을 시점을 바꾸어서 재적용한다)을 아예 논의에서 배제한다. 원불교 김무성-원불교 백낙청이 거론을 안하길 바라는가? 뒤집어 보수유권자 국민을 국힘은 대변안안하고, 원불교 지배자들만 대변하고 있다.
 
비슷한 주제가 있다.
 
보수주의 경제학은 ‘전라도 무속신앙’인가? 이 부분에서 이명박 정부 때부터 꾸준히 국민들은 ‘김대중경제학은 아닌데’ 하는 반론을 해왔다. 줄곧 다 씹었다. 윤석열 정부 3년 내내 보수층은 아니오 했고, 관료들은 다 씹었다. 윤석열 정부 경제관료가 ‘친박 아니냐’가, 경제이론의 전라도식으로 정신줄 나간 문제를 감출 수 없다. 그러나, 감추고 있다.
 
“줄푸세” 논리는 박근혜 정부의 지적재산권이 아니라, 김대중 대중참여경제학의 한 분파로서 박세일 라인에 선 자유경제원 김정호 교수의 논리였다. 규제만 풀면 경제가 쑥쑥 성장한다? 박근혜 정부처럼 김대중경제학이란 전라도중심주의인데 이를 중립적인 것으로 맹신하다가, 지도자가 몰락하는 것을 바라보는 처참함도 없었다.
 
“탈 규제”라는 표현의 실제적 의미를 기독교인은 다 알아들을 수 있다.
 
프랑스가 경제위기에 빠졌다. 독일보다도 더 진보의 예수신앙 중심의 공동체주의다.
 
너무 세금이 높고, 너무 정부지출이 크고, 기업이 질식했다. 그리고, 이제 기업이 망한다.
 
규제란 말의 이면에는 ‘정부 주권’으로 약자에도 세금 지출을 해야 한다는 진보적 기독교 공동체의식에 대하여, 기업행위는 전통적으로 부르주아 세력이고 보수기독교 신앙자의 세상 지배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규제의 의미는 사실상 정부주권, 정부에 줄 선 약자들을 바라보는 진보기독교 신앙과 연결돼 있고,
 
탈 규제의 의미는 전라도 무속신앙 아니라, 기업행위의 종교개혁의 진리의 자기책임이듯, 기업의 자기책임원리와 연결돼 있다.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학은
 
전라도 유교로 경제민주화를 구사한다. 전라도 지역 밖을 차별한다.
 
그리고 전라도 무속신앙이 자유주의 경제학인양 주장하며, 경제의 토대인 법질서를 뭉개 버린다.
 
 
 
법질서를 뭉개고 오세훈 서울시는 얼마나 더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가?
 
뒤집어 이야기하자. 오세훈이 했어도 사실은 김대중 대중참여경제학 이래 민주당(동학)경제학이다. 오세훈 훨씬 이전부터 비판해야 한다. 보수층을 대변하는 거 같지만, 사실은 보수유권자에 매우 불리한 구조를 덮어버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은 부채공화국이다. 부채공화국은 부동산문제다. 남북문제와 연결된 지방자치 문제다.
 
무당신앙은 독점적 제사장주의요, 시장경제 본래의 진리의 자기책임원칙과 정반대다. 김대중경제학은 명목상 보수 경제 나누고 균형이나 중도라지만, 실제는 전라도씨족주의로 시장경제 반대편만 몰린 것이다.
 
규제해제는 곧 정부 지자체 및 정치권력자를 맹신하여, 가장 멍청한 투자를 유발하는 것이지, 시장경제가 도덕경제가 됨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보수정당에 유명인사들이 정말로 보수유권자를 대변하나? 뒤집어, 보수정당을 억누르는 집권당을 사실상 타격하려는 의지가 있나? 아니면, 조선시대 붕당정쟁에서 전라도에 처바리는 경상도 씨족원리를 복원하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전라도 노예의 경상도 과거의 미래화를 안고 가나?
 
정상적 시장경제로 치면, 사실은 오세훈 같은 김대중경제학의 금과옥조 진리화가 “규제”다. 김대중경제학은 자본시장 부풀리고, 이를 나누기 위한 것이며 전 사회적 노동회피의 거대정부를 지향한다.
 
유신시대에 국정교육 연관으로 ‘영남권력화’와, 지금은 동학신앙으로 ‘호남권력’되는 부분은 매우 연결됐다. 영화 ‘건국전쟁’도 자유민주주의를 팔아먹는 ‘씨족주의’복원이다.
 
필자의 메시지를 제도권에서 누군가 받아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세상은 변한다. 아무도 없다. 지배층이 이렇게 대놓고 지지층을 엿먹이는데, 지지층을 위하지 않는 지배층 대신 이야기하여, 위험은 자기가 지고 이익은 지배층이 지는 일을 도대체 왜 해야 하나? 아무도 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