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영남 왕권제 유교’라는 국뽕 민정당 민족주의는 죄악이고, 모든 국민은 ‘전라도 당파적 유교(동학신앙)라는 국뽕 민주당 민족주의는 천사인가? - 한국교회는 유신시대에 왕권제 유교에 줄서고, 국뽕 민주당 민족주의에도 줄 서야 할까?
 

어제 “어떤 기독교언론”이 아프리카 기독교 지도자를 기준으로 서방 신학에서 멀어지라는 글을 소개했다. 필자는 꼬진대 국문과 출신으로 기독교서점에 나온 책을 성실히 소화했다. 영어권 보수기독교, 영어권 진보기독교를 해석한다. 아프리카 기독교는 영어권 진보에서 확장된 논리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렵다. 왜냐하면, 아프리카 토착 어법과 영어권 진보 신학은 상당한 ‘갭’을 가진다.
 
한명의 성도의 세계관은 한국의 기독교지식인들이 번역한 해설서와 참고서에 영향 받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의 기독교지식인들이 번역한 책들은 미국 공화당과 미국 민주당과 EU성향의 신앙이다. 영어권 진보와 아프리카 기독교가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 기독교지식인도 토착화신학을 이야기한다.
 
미국 민주당의 ‘대충대충’ 한국 아는체는 필자는 아픈 기억이다. 차라리, 그런 자국중심의 어설픈 해석의 개입은 모른다고 하는게 맞았다고 본다. 개인적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닮지 않으려 한다. 따라서, 필자의 모든 생각은 한국에 많이 퍼진 기독교정보로 휘게 된다. 아프리카 기독교에 대한 평가도 피한다. 일단 그분들 마음에 들게 해석하는게 너무 어렵다. 처음부터 다 공부해야 함을 실감한다. 뿐만 아니다.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은 꾸준히 ‘후원’을 원하는 글을 올린다. 필자는 인터넷을 통한 일체의 금융결제를 안하고 있다. 그들 눈에는 ‘필자’는 어떻게 보일까?
 
아프리카 기독교의 주장을 띄운 언론이 기독교언론이면서 ‘한자’를 띄우는 정신나가도 제대로 나간 일을 했었기에, 이런 고민을 겪어본 거 같지 않다. 분명히, 아프리카 기독교 예배에서 춤을 추는 형식은 그들만의 토착문화와 연결된다. 그들 기준으로 참으로 정결한 예식이지만, 한국인은 해석할 수 있는 아무런 해석 틀이 없다.
 
30여년 전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이후 꾸준히 한국사회에서는 “원불교(사탄교)”같은 동학신앙이 우리의 토착종교라는 정신이 나가도 제대로 나간 상황이 반복된다.
 
중국이 세계 패권적 야망으로 중국중심적 역사로 한국사를 설명하면서, 모든 민족종교란 호칭은 ‘종식’이 됐다. “중국 따까리 종교”라고 설명해야 맞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유교 해석방식과 상당히 다른 베이징유교를 정통이라고 바라보면서, 마치 기독교문화 공의회 바른 결정처럼 중국 본토의 경전 해석법을 따르면서, “민족” “민족”하는 말보다 더 개그가 없다.
 
한국에 퍼진 조직신학책과 한국 성도의 신앙 현실은 갭이 크다.
 
미국 기독교인들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와 ‘히브리 사유’를 구분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겐 ‘르네상스 인본주의’라도 장착이 낫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기독교신앙을 해치는 사유는 유불선 신앙 사유의 기독교 사유에 침입이다.
 
물론, 영어권 기독교인에겐 필자의 고민과 같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기독교신자의 신앙경주에서만 느끼는 신학 논리를, 어떤 나라가 한국인처럼 신앙적으로 사고하겠나?
 
필자처럼 ‘성경복음’중심으로 인본주의가 아니라 유불선 신앙 및 동학신앙의 신앙일탈과 싸우는 한국교회 신자의 신앙길을 기록하는 생각과, 전혀 다른 의미로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논한다.
 
바로,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동학의 신관 위에 교횟말 씌우자는 것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동학 사유가 민족종교이고 토착종교라는 말이, 중국의 자국의 속국중심으로 기록하는 문화에서 깨졌다고 본다. 중국이 중화주의이면 노론 사대부들이 17-19세기에 논한 소중화주의는 이젠 완전히 깨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똥꾸녕 빨겠냐는 의미로 <권력 이데올로기>만 남았다.
 
추석의 차례를 지내는 인구가 국민의 과반수가 안된다. 예수 안 믿어도 안 지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역대급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신앙의 신앙 갑질중이다.
 
필자는 제일 의문하는게 있다.
 
일베정게의 ‘알타이 21’은 유신체제 논리에 섰던 분들이 김대중체제에도 섰던 증거다.
 
유신체제의 영남유교 국뽕은 모든 국민이 영남이고 영남중심을 전제한다. 기독교 교회관으로 영남 밖의 타자 배려를 못함을 비판 가능하다.
 
호남 동학파의 일당독재 국뽕은 모든 국민이 호남이거나 호남중심을 전제한다. 기독교 교회관으로 호남 밖의 타자 배려를 못함을 전제한다.
 
이미, 보수교회는 박종철 문제로 1987년에 반성문 썼다. 그리고는 일제 강점기 스탈린주의 줄 서서 한국교회 박해를 주도했던 씨족에, 투항하나? 그런 투항은 토착종교일까? 토착신앙일까? 전혀 아니지 않나?
 
필자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논리로서, 한국교회는 한국인만의 복음중심의 기독교신학이 있어야 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논리가 있었다. 민족복음화운동 주축의 논리다. 반면에, 아프리카 기독교 운운하면서 세계 공산주의 연대의 매개로서 논하는 어법은, 민중신학의 어법이면서 김대중시대에 확장된 박세길류 좌파의 어법이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신앙 현실로 그 나라 신자에 꼭 맞는 신앙고백으로서 그런 책은 자국 국민이 더 잘 쓴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기독교를 띄우는 기독교언론은 이런 의지를 가진 쪽을 띄우는 의도였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87년 민주헌법으로서 서양법 주장한 분들이 안 지키는데 필자는 지키고, 그리고 민족복음화운동 때의 신앙 약속을 필자는 지킨다. 다음 세대도 지켜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실제로 신앙에 방점이 찍힌게 아니라, 정치권력 이데올로기 보완으로서 종교 문제로 바라보면서, 미국패권에 버스러지게 신앙을 믿으라는 의도로 퍼뜨린 말을, 고스란히 담아서 전하는 기독교언론은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야 맞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