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의 신학적 중도노선과, 촛불 두목 원불교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 (부제) 미국 민주당이 경상도만 1인독재 있다고 믿고, 전라도는 아시아적 야만인 다른 양식인 1당 독재 없다고 보는 이유
 
 
보수진영에는 윤석열 정죄하는 경상도 내부의 전라도 종족주의자 조갑제 세계관의 영화 건국전쟁이 필요가 없다. 윤석열씨의 비상계엄이 일정 부분은 민주주의 결격에 대한 문제지만, 그보다 필자가 지적하려는 것은 조갑제기자의 비판이 80% 이상이 전라도 종족주의를 깔고 하는 비판이라는 점이다. 조갑제기자의 경상도 사투리는 fake라는 것이다.
 
조갑제기자의 윤석열 비판 어법은 김무성씨의 제왕적 대통령제 비판30년 받아쓰는 광주일고 조선일보 문제에 성격이 같다.
 
원래의 권력분산은 ‘1인 독재‘1당 독재모두 부정이다. 그러나, 원불교(사탄교)교리로 읽고 권력분산 법리라고 호소하는 과정에서, <전라도 귀족의 경상도 증오주의>가 마치 서양법적 권력분산이라는 궤변과 연결된다.
 
지난 30년은 한 동안은 김무성씨의 제왕적 대통령제드립에 대하여 정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발언으로 보았으나, 차츰 경상도 동학 내부의 호남향우회 소속회원으로 경상도 사투리쓰는 뼛속 전라도 종족주의자의, 토박이 경상도 양반에 대한 자의적이며 주관적 증오논리로 보여지게 됐다.
 
필자는 김건희씨 안 좋아한다. 윤석열씨에 팬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을 둘러싸고 형평성에 심각하게 어긋난 지점을 비판한다. 조갑제기자가 윤석열씨에 잘못된 점을 지적할 때, 전라도 종족주의 씨족종교를 박고 바라본다. 이는 정확하게 말해서, 윤석열 비상계엄에 국방부장관의 어리석은 신념과 같은 성격이자, 같은 패턴인데 색깔이 다른 것이다.
 
모든 이런 혼란의 시작은 이 장면에서 발생했다.
 
군사정권 유신체제는 영남 유교 왕권제에 서양민주주의를 덧 씌웠다.
 
김대중과 김영삼 조직은 이것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리고, 그 김대중과 김영삼 연합조직은 실제는 <똥물에튀겨죽을 똥학신앙>의 동학조직인데, <해방신학 호소인>을 하는 조직이 나타났다.
 
<요약하자>
 
한국의 최근에 법치 문란은 전라도종족주의, 혹은 경상도 내부의 전라도종족주의를 법치라고 보는 시각 때문이다.
윤석열씨의 비상계엄은 이런 점을 비판안하고, 과거의 경상도종족주의를 법치라고 논하는 어법을 잠시 소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모든 현재의 법치주의 문란의 뿌리는 ]]
 
군사정권 유신체제가 영남왕권제에 서양민주주의 덧 씌웠다. 일본 국왕신앙에 서양민주주의 닮아가려는 명치유신을 모방하려 했다.
 
이를 깨뜨리려 했던 김대중 김영삼 조직은,
 
국민과 국제사회에 서양민주주의 한다고 하고, 실제는 전라도 동학조직을 구사했다. 일반국민에게 민주화=자유민주라고 주장하고 민주화=민족해방’(공산마을 갑질)이란 것을 행사한 것과 연결된다. 이는 민법상에서 지역주택조합사기 논리와 적확하게 같은 것이다. 계속된 거짓은 공소시효 중단이기에, 국민은 국민취소권으로 이 부분을 무효화하고 부당이득과 불법원인급여를 논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법치주의 존재는 법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교회에서 신앙의 존재는 신앙대로 사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과 같다. 실제로 한다고 국민과 국제사회에 약속한 영역과 그에 연결된 부분을 유효, 나머지는 모두 국민취소권 행사로 무효로 돌려야 한다.
 
, 윤석열씨가 민주주의에 대한 결격에 대하여만 문제이지, 전라도 종족주의 기준으로 조선시대 붕당정쟁 어법으로 박해받는 부분에 한해서는 필자는 반대한다. 그것을 동의한 역사가 없다.
 
김대중은 가톨릭교적을 강조했고, 김영삼은 개신교 신앙을 강조했다. 여기서, 기독교의 신학적 중도노선과 촛불 두목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노선이 어떻게 다른가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본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후원한 김대중 후원회장 민중신학 두목님 목사님이 이끄는 조직은, 신학적 중도노선과 원불교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노선이 사실상 같다고 지적했다. 민중신학 책자는 유럽대륙에 유교 대동이 있고, 그게 기독교에큐메니칼인양 논하는 엽기적 논리로 나타났다.
 
필자는 챗 지피티 5”가 이런 부분이 합의된 가치인양 인식하는 것에서 깜짝 놀랐다.
 
지금 미국 민주당과 미국 공화당은 서로 적대적 대립으로 가 있다. 보수기독교와 진보 기독교에는 공통된 성경본문이라는 것도 있고, 그 모든 논리 이면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신학적 저변의 공통도 있다. 다른 기독교신학 노선이면서도 세상속에서 겹쳐 있는 장면에서, 대부분의 기독교국가는 신학적 중도노선으로 원만한 대화를 이끈다.
 
영국이 노동당이 여당이다. 영국 노동당 유튜브는 집권당이 보수경제학까지 포괄하는 것이 굉장히 불만이다. 한국은 사도신경 신앙 공동체와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앙공동체에 중립이 편한 편이다. 니케아 신조 유형의 해설서를 보면, 해방신학류 및 민중혁명론과 연결지점이 쉽게 발견된다. 사도신경 신앙고백보다 자아에 대한 인정의 폭이 크다.
 
보수 경제학이나 진보경제학이나 결국은 성경에 대한 해석방식의 차이일 뿐이고, 그 바탕에는 성경본문이 놓여 있다.
 
원불교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조상신이 중심에 놓여 있다.
 
기독교신학에서 신학적 중도노선은 성령 하나님을 보는 신학적 차이(철학적 차이)를 크게 그리는 성령공동체로서 교회에 녹이려는 시도이고, 원불교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권력독점 욕구 안에서 나머지를 녹이려는 시도.
 
필자가 2010년 이후 복음통일이 변질됐다고 하는 것은, 원불교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 논리의 꼭두각시 의혹을 지적한 것이다.
 
보수진영에 없는 것은,
 
결국은 투명한 이성 논리가 없다.
 
그것을 구사하는 전문인력이 우선하지 못하는데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전라도 귀족의 경상도 권력 비판은 많은데, 전라도 종족종교 기반 지배체제의 비판이 제도권에 발도 못 붙인다.
 
미국 민주당은 미국 공화당 백인보수 비판 빼고는 모든 아시아 관점이 매우 엉성하다. 전라도의 종족종교는 민주주의, 경상도의 종족종교는 파시즘. 같은 사태에 다른 잣대를 들이댐은, 알면서 그런 의미보다는 미국의 권력정치 중심에 아시아는 그들의 잣대로 보지 실제의 모습을 안 보려한 문제.
 
기독교신앙의 신학적 중도노선의 경우는, 결국은 보수 진보 양측 신학을 다 이해하는 귀족이 중심하되, 그 귀족이 갑질안하고 정보만 제시하는 경우에서 나타난다. 반면에 촛불 두목 원불교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주의는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권력독점이 먼저다.
 
한국의 경제유튜브가 진지하게 부동산폭락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경제유튜브가 경박한 측면이 있다. 폭락이 문제가 아니라, ......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새살이 쌓일 때까지 토대하는 건전한 문화를 어떻게 채우는가 문제다.
 
2008년 이전으로 되돌아가는게 세계경제위기의 출구전략이란 말은 진심으로 공감한다. 한국은 노무현의 국토균형발전 이전의 문화로 돌아감이다. 쉽게 저절로 거기로 돌아가지 못한다. 지금의 부채는 노무현이 진인 정도령이다. 문재인이 진인 정도령이다. 등등 지도자가 진인 정도령이란 믿음을 가진 동학신자의 움직임과 연결된다.
 
여기에서도 또 갈라진다.
 
<법치주의 해법><법치주의를 호소하는 전라도 동학의 해법.>
 
그리고, 여기서 법치주의 해법도 싫고, 전라도 동학도 싫다면서, 영남 노인의 윤석열씨 비상계엄 유사논리의 퇴보도 열려 있다.
 
법치주의를 호소하는 전라도 동학의 해법을 법적 처벌을 해야, 법치주의가 살아난다. 이걸 안하려고하니까 되는게 없다.
 
경제위기가 무서운게 아니다.
 
경제위기는 결국 법치주의가 투명해야 극복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가치가 불명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