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인간의 권리와,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과 싸울 수 있는 것 등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단지 폭력에 의한 압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상의 사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무엇에로의 자유”이며, 사물이나 사람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러한 자유가 아니라, 풍요하게 될 수 있는 자유이다>(에리히 프롬, 진덕규 역,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 1980, 230쪽)
에리히 프롬은 사회민주주의 좌파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이며 민정당 때는 ‘읽지 마’ 목록일 수 있다.
필자는 ‘꼬진대학 국문과’로 광진구 자양고등학교 선생님의 일제 36년 기독교신앙으로 버틴 사람들의 허구적 내러티브 교육에 속아서 입학하여, 하나님께 사명 받았다고 생각하고 당시에 박종철 주제로 교회의 교회됨. 유신국가주의를 넘어선 법치국가 바라보는 지평 문제에, 정말로 사명 있게 몰두했다.
필자는 꼬진대학 국문과에서 좌파에 노이로제를 당하면서도 항시 한편에서는 교회됨으로서 모두가 속할 수 있는 전망을 생각했다.
필자는 농부가 씨를 뿌려 한 사람만 나오세요 저와 함께 춤춰요 노래를 부르는 극심한 고독 속에서도, 늘 모두가 하나님 앞에 존엄하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꿨다.
필자는 기독교적 건국론을 진짜로 믿고 서양법 국가논리로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되길 바랬던 한명의 꼬진대 국문과로 아이큐 100 언저리에 머물던 1970년생에 본적 서울, 원적 함경도에 함경도 선주의 손자인 ‘필자’ 자신, 여기로 돌아간다.
지금 필자의 모든 주장은 1980년대 한국교회의 교파 연합을 강조하되, 토착신앙으로 빠지는 것의 경계심을 가진 그때 설교문 듣고 자란 세대의식으로 겹쳐진다.
그런 의미로 2010년 이후의 복음통일도 아니오!
원불교 백낙청도 48년 건국 대한민국 부정해서 아니오!
내가 믿고 살아온 가치를 필자는 수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