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종족주의 청산은 87년 보수민주화 노선 계승에서만 가능-

유신체제 비판할 때, 국가주의가 우상이라고 그랬다. 영남 왕권제 유교의 정교일치 구현이 우상이다.
“반일종족주의”는 민중민주주의 민족해방사상의 구현이며, 원불교 박지원-원불교 백낙청이 짱을 먹는 전라도식 유교 씨족주의를 말한다. 이를 우상이라고 논할 수 있어야 한다. 유신시대에 전라도 교회는 경상도교회등에 1인 지도자 부정을 요구했다. 이젠 경상도 및 비전라도 교회가, 전라도 교회에 민족해방주의에 연결되는 모든 형태에 일본제국주의 숭배와 동급의 예수님 앞에 우상숭배라고 배척하는 일을 주장해야 할 때다.
그러나, 아직도 보수우파 사회에서는 <영남종족주의>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와 공산주의 구분을 이성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쿠라 조갑제 기자 유형의 “가짜 반공”이 득세하고 있다.
우리 마을은 모두 용공 아니고, 저짝 마을은 모두 용공이다. 이 종족주의 기반 가짜 반공은, 조갑제 유형의 행위로서 보수정당 안에서 불법행위에 손발 묶어 버린다. 조갑제기자의 ‘내부총질금지’라는 종족주의 규율이 그렇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또 부족주의적인 표현으로 민주당 지지자들만 합리적이고, 보수층은 멍청하다는 이분법을 강조한다. 이것이 일베 노인들에겐 일베노인만 이성을 가졌고, 좌파는 아니라는 이분법이 강조된다. 사실을 기반으로 명료하게 드러내어 조목조목 비판하는 일이 없다.
유신체제에서 정치재판에서 영남종족주의에 휘인 재판을 의심의 논리를 기억하는 분들은, 윤석열씨 재판에서 굉장히 익숙한 어법을 접한다. 전라도 공산파 민족해방종족주의를 본다. 그 전제의 씨족적 판단이며 서양법 판단 자체가 아니다. 김대중지지자들은 유신체제에 경상도 종족주의를 터잡아서 유신체제 전부를 해체 시켰다. 필자는 윤석열씨 재판에서 똑같이 모방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이 놈의 조선왕조 붕당게임이 지겨워 넌더리가 나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이명박 구속이후의 적폐몰이
윤석열 탄핵 이후 내란죄 재판
일제 강점기 조선공산당 전통에 의한 모두 반동분자 재판이 실제 의미한다.
6.25 참전용사들이 주로 영남 지방이다. 이 영향으로 반공에 공산당에 대한 실제 반공보다는, 영남종족주의 색깔이 짙었다. 윤석열씨의 비상계엄에 이 부분의 다시 소환은 정말 유감스럽다.
영남종족주의를 악으로 정죄하며, 영남종족주의를 사탄이라고 정죄하는 쪽이, 호남 동학 씨족주의에 기반하여 민중민주주의 민족해방 통일전선주의에 기초한 부족주의를 구사할 수 있는가?
이럴 의도로 했으니까,
일반국민은 민주화신화 상당부분을 ‘사기’에 기반한 부당이득죄 형성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영훈 교수의 반일종족주의는, 옷갈아입은 영남종족주의로 구현되는 가짜 반공의 재탕이다. 지금 한명도 사쿠라 조갑제기자가 반공전문가가 안 남게 씨를 말려 버렸다. 중졸 이하 동학노인이 알고 있는 반공은, 그리고 그 논리의 세대계승은 전부 ‘공산주의’에 대한 실제 반대가 아니다.
지만원씨처럼 없는 사료 찾을 이유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인된 어록집에서도, 씨족주의 내포한 구절이 대량으로 발견된다. 김대중 지지자들이 영남 군사정권의 씨족적 왜곡을 지적했던 쪽이니까, 당연히 문제가 된다.
반일종족주의 청산은 호남에 민족복음화운동에 기반된 “그리스도의 계절”에 찬양에 걸맞는 행위가 있느냐를 묻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지금, 유신시대와 다르면서 똑같게,
큰 의미로서 원불교가 지배하면서, 김무성 종족, 박지원종족 합체 모델이 지배하고, 민법적 횡적 의사소통이 참혹할만큼 붕괴됐다.
한자를 좋아하고 조상숭배를 좋아하고, 연고자들에 뒤봐주는 연고온정주의가 뜨면, 무조건 부족주의와 파시즘 걸면 100% 아니라 518% 걸린다. 다시 말해서, 반일종족주의를 지적하며 전라도 파시즘, 전라도 동학공산파의 상층의 자신씨족 권력 독점론을 지적하는 자는, 조갑제기자의 이승만 동상주의자가 아니어야 한다.
대부분의 일반인은 씨족적 자아를 넘어서지 못한다.
전라도 유교로 읽는 大學경전 어법의 일반인 버전.은 여전히 종족적이다. 씨족적 자아를 넘어서는 것은 그렇게 파악된 결과물이 꾸준히 생산되고, 그것을 통해서 일반인이 영향 받는 속에서 나타난다.
원불교(사탄교) 백낙청의 87체제를 뒤엎자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 시절의 약속을 함부로 끊지 마라! 이게 답이다. 원불교 백낙청 어법으로 “후천개뻑다구” 담론에 기초하여 법치를 바라볼 수 있다는 모든 구성원은(자유일보에서 광주일고 조선일보까지) 모두 종족주의자이다.
지금은 사쿠라 조갑제기자와 그 추종자들의 행복을 위한 보수진영 인문사회학이 처참하게 말살당한지 30년이다.
유신국가주의 때에 김대중지지자들은 학문의 자유 외쳤다.
왕에 충성하는 닭대가리 대학교 교수가 너무 많다. 왕에 충성. 그 누가 못하나?
전라도식 버전은 종족주의로 지역에 지역 사대부 떠받드세. 이러는 닭대가리가 많다. 단 한 개의 개념도 정확하지 않은데, 그 지역씨족주의 전제로 옳다 옳다 한다. 이는 거시적으로 한국사회에 시장경제에서 단 한 개의 시장 시그널도 믿을 게 없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씨족주의 극복은 예수의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한 민중신학 읽기가 아니라, 삼위일체 계시로 읽기에서만 가능하다. 그 계시가 소통되는 공동체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의미로 2010년 이후의 복음통일은 민족복음화운동에 엿먹어라하는 차원의 배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