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 칼럼] 장동혁의 두번째 걸음은 목을 치는 일이다





정재학 칼럼니스트
 경기데일리: 2025/08/31 
  •  
  •  
  •  
  •  
  •  
  •  
  •  


▲ 정재학 시인 칼럼니스트   
 

장동혁의 두번째 걸음은 목을 치는 일이다 

 

황룡사 9층목탑에 관한 이야기다.
국힘당 장동혁 대표 문제에 어인 까닭으로 황룡사9층목탑이 등장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사연을 모르는 소리다.

 

황룡사는 서기 566년 진흥왕 때 세워진 신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호국사찰이다.
그 황룡사에 645년 선덕여왕 14년 때 9층 목탑이 세워진다. 그 유명한 황룡사 9층목탑이다.
각층마다 여러 국가를 상징하며, 1층 일본을 비롯한 모든 나라를 복속시키고자 하는
정복의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 자장율사가 등장한다. 자장율사는 선덕여왕이 등극하자, 이내 여왕의 운명을 걱정하고 고심하였다. 


 

알려지다시피 영국이나 스페인 등 근대역사에서 여왕이 지배했던 나라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는 역사가 인정한다.
권위의 실종 때문이다. 그래서 지시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신하들로 인해 여왕은 국가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결국 타협과 협상을 위한 은밀한 거래가 있었다.



선덕여왕 시절에도 내부혼란에 이어 백제의 침략까지 겹쳐 더욱 힘들었다.
이에 자장율사는 여왕에게는 '덕은 있으나 존엄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9층탑을 세워 여왕의 존엄을 돕기로 한다.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阿非支)의 도움을 받아 완공한 이 목탑은 높이가 약 80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탑이었다.
아파트 20층 높이를 능가한다. 특히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비한 뛰어난 내진 설계까지 적용되었을 정도였으니,
그 웅장함에 더하여 가히 신라 건축기술의 정수가 담긴 탑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장의 건의로 세워진 9층목탑은 신라 주변 9개국으로부터 침략을 막아내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장엄한 목탑은 덕은 있으나 존엄이 부족했던 선덕여왕의 권위를 세워주는 의미가 되었다.
실제로 탑 건축 이후 신라는 안정되었고, 마침내 삼국통일을 이루게 된다.

 

장동혁 대표는 바로 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지난 시절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덕은 있으나 존엄이 없었다.
오죽하면 최근 교육부 장관에 물망에 오른 최교진 같은 자가 '병신년'이라고 했을 것인가.
귀태라 부르여 존엄을 짓밟았던 현 민주당 좌파세력들의 지난날을 잊어서는 안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량은 넓었으나 인덕도 없고 존엄도 없었던 분이다.
그래서 그토록 아끼던 한동훈으로부터 배신을 당했고, 존엄이 없으니 국힘당이 흩어지고 분열하면서 수없이 탄핵을 요구 받은 것이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빨갱이들로부터 그토록 험한 꼴을 당했어도, 청계천이라는 위대한 공사로 인해 그 명예를 보전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도 알다시피 작금의 대한민국은 빨갱이들과 자유민주 체제를 놓고 전쟁 중이다.
그러므로 덕을 베풀고 인의를 논할 때가 아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인 이 시기에 장동혁은 당대표일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를 향한 수천만 국민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태종은 말하였다.
 

"여기 10명의 신하가 있다 하자, 그 중의 1인은 충신이 분명하다.
그러나 10명 중에 한 명은 역신(逆臣)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8인의 신하는 누구겠는가?"

 

태종은 이렇게 스스로 답하였다.

"나머지 8인은 내가 강하면 충신이 되고, 내가 약해지면 역신이 된다."

 

태종은 왕권을 위협할 공신부터 처치했다. 처남들도 예외가 없었다.
그리고 탄탄한 왕권 위에 세종대왕의 치세가 시작되는 것이다.
세종대왕, 이 한 분이 이룩한 업적은 세계사적인 것이다. 태종이 용서가 되는 대목이다.


 

윤석열은 강해지는 법을 몰랐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재명은 도덕적이며 인간적인 부분에서는 아예 개차반일지라도 강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장동혁 대표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차이를 깨닫고 있어야 한다.

 

휘하 당소속 의원들과 지도부에게 복종을 명령할 줄 알아야 한다.
복종, 그걸 알고 행하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해내야 한다.
그동안 국힘당을 속속들이 썩게 한 무리들이 장동혁을 쉽게  따르지 않을 것이란 점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자신의 뜻에 반한 자는 과감하게 목을 쳐야 한다.
그래야 권위가 생기는 법이고 복종이 따르는 것이다.
복종이 보이면 그땐 관용도 가능한 법이다. 명심하라. 복종 없는 관용은 호구를 잡힐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대가 역신(逆臣)의 목을 칠 줄 모르는 지도자라면, 그리고 칼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선봉을 달리는 장수가 되지 못한다면,
장동혁 대표 당신도 윤석열의 최후를 맞을 것이다.

 

국민의 뜻은 윤대통령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그분의 명예회복없이는 국힘당 역시 내란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주당이 가당치도 않는 내란프레임으로 국힘당을 짓누르는 이유를 모른다면, 그자는 국힘당원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윤대통령의 명예를 돌보지 않는 자들은 목을쳐라!

 

다음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복종'이란 시이다.

어인 까닭인지 오늘은 이 시를 읊어보고 싶어진다.


 

복종

-만해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2025. 9. 1.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