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봄, 서울. 황사와 미세먼지가 섞인 뿌연 하늘 아래, 중년의 사내 이도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작은방 창가에 앉아 싸늘하게 식은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공간의 적막은 마치 그의 내면을 닮아 있었다. 아내가 떠난 지 두 달, 그가 세상과 단절되기 시작한 시간도 그즈음부터였다.


이 전화를 끊었을까. 그냥 칼국수 맛집 말고… 뭐라도 더, 무슨 말이든 더…"

 

"괜찮아. 당신 잘못 아냐. 나, 당신 목소리 오랜만에 들으니 정말 행복해."

 

도현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냈다. 서정과의 이 통화는 현실이 아니었지만, 그에겐 현실보다 더 절실했다.

 

그 후, 도현은 매일 밤 비슷한 시간에 그녀와 통화했다. 날씨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녀가 좋아했던 라디오 노래를 함께 들으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위안이 반복될수록, 그는 점점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회색이었고, 그는 하루 하루 그녀의 목소리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회사를 나가지 않자 그를 보다 못한 직장 동료가 그의 집을 찾아와 조심스레 말했다.

 

"도현 씨, 기억은 그 사람을 지켜주는 방식이지만, 지금은 당신 자신이 기억 속에 갇힌 겁니다. 서정 씨가 그걸 바랄까요?"

 

도현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봄이 한창이었다.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고,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거리에서 웃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오늘도 어제처럼 서정의 목소리를 불러냈다.

 

"서정아… 나, 이제 밖에 좀 나가보려고 해."

 

조용한 침묵 뒤, 그녀는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바지락 칼국수, 다른 사람이랑 먹어도 맛있을꺼야. 나, 괜찮아."

 

그날 이후, 도현은 조금씩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MemoryCall’ 앱의 자동연장도 더 이상 실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진짜 봄날의 냄새를 맡으며, 살아 있는 사람들과 마주하기로 했다.

 

수화기 너머, 봄날의 싱그러운 목소릴 마음 속에 간직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