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로 번역해도 외국인이 알아들을 만큼, 한국 사회의 문제를 명료하게 설명해보겠다.
기독교신학의 발생은 ‘히브리적 신앙체험’을 헬라인본주의로 기록함이다. 그러나, 서방기독교에서는 그쪽의 인본주의에 방점이 찍히고 신앙체험이 허무화될 때 ‘양태론’으로 빠진다. 동방기독교에서는 그쪽의 인본주의에 방점이 찍히고 신앙체험이 허무화될 때 ‘종속론’으로 빠진다.
아시아는 헬라 인본주의가 없다. 이와 연결되는 종교유형이 부재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는 양명학 언어로 서양근대지식을 기록했다. 일본기독교도 역시 양명학적 언어로 기록했다. 중국공산당의 공산주의 지식도 일본과 다른 색깔의 양명학 언어로 기록했다. 한국은 영남에는 상대적으로 일본 유교 영향의 서양식 근대화가 자리할 수 있었고, 그 여파로 서양문화가 소개가 됐다. 호남에는 중국공산당 및 진보진영을 상대적으로 베이징 유교에 매우 가까운 유형으로 해석했다.
(동성애 문제는 의외로 쉽게 서구 교회에 알아듣기 쉽게 이해시킬 수 있다고 본다. 동성애 친화적인 내용으로 해석된 조직신학으로 빡시게 공부한 한국인이 도저히 그 부분을 이해하는게 불가능해서 이해 못하는 부분이다. 유럽 진보진영의 공자 맹자 해석 들어줄 내용이 1개도 없는 현실과 역 데칼코마니 관계다.)
‘국민교육헌장’에 한국의 지성층이 양명학적 언어를 사용함을 전국민이 알고 있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그 표현이 그런 의미를 가졌다.
문제는 양태론 이단, 종속론 이단이 가능한 것처럼, 영남이 서양문명을 소개할 때 유사한 패턴으로 ‘이단’에 빠질 수 있다.
서양민주주의를 영남 유교에 비추어 해석할 때, 그 은유에 해당되는 영남유교가 서양민주주의를 압도할 때 → 군사정권 근대화체제 (자유민주주의의 영남식 이단 어법)
서양민주주의를 호남 원불교(사탄교)에 비추어 해석할 때, 그 은유에 해당되는 호남 원불교(사탄교)가 서양민주주의를 압도할 때 → 김대중체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호남식 이단)
거듭, 거듭 강조하지만, 필자는 70년생이다. 사람의 성격이 형성됨이 20세 전후라고 할 때, 민주정의당 전두환체제 붕괴과정과 김대중지지자들의 저항과정을 가장 똑똑하게 기억하는 세대라는 의미의 표현이다.
80년대 대학가에서 이런 유형의 강의가 유행했다.
대학가에서 2시간 강의에서 65분에 강의가 끝나는 강좌가 있다. 그것도 강사가 하고싶은 말은 진작에 20분안에 끝나고, 나머지 45분을 어거지로 때운다. 실력이 없는데,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충성맹세로 대학에 자리한 것이다. 군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의 동력은 이렇게 대학가에서 엄청난 인원으로 충성맹세를 통해서 꽂혀진 실력없는 대학강사를 어떻게 할것인가 문제와 같았다.
필자와 동연배 비운동권은 이 상황을 다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 2시간 강좌에서 최소 1시간 40분. 어떤 때는 1시간 50분 꽉 채우는 대학강의를 듣고 싶다는 욕망을 채워줄 대학강사의 존재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을 활용하여 원불교 백낙청 사단이 대학을 장악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개략]등에 해석된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문명 이해를 보면, 저 서양사상을 그냥 일본 유교로 해석함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서양민주주의를 가려버리면 그냥 군사정권 나오는 것이다.
지금 한국정치와 연관돼서 미국 민주당과 연결된 미국 미디어가 제일 당혹할 것이다.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공적 정보를 받아서 방송해도, 한국에서는 영 아니라는 판단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나오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더불어 민주당의 정보가, 유신시대가 군사정권의 자유민주주의의 영남식 이단이었다면, 김대중체제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호남식 이단이었다.
한국은 소련공산주의를 결코 소련 기독교 동방정교회로 해석한 버전이 있지 않았다. 원불교(사탄교)를 통하여 모택동 중공이 번역한 소련공산주의를 번안해서 수용했다. 일본 메이지 유신을 수용한 영남 동학파도 있다면, 호남동학파는 색깔이 다르게 양명학 세계관으로 소련공산주의를 수용했다.
일베정게에서 꾸준히 반론이 일었고, 20대남자에서 여성가족부 문제로 폭발한 문제가 있다.
군사정권은 강해도 너무 강한 1인 지도자 문제지만, 김대중체제는 강해도 너무 강한 잇권을 독식하는 1당파 권력 문제다.
유신체제가 고문수사 및 공권력 남용의 체제를 자연적인양 알고 포기하게 하려했고, 김대중체제는 잇권을 독식하는 기득권 연합이 존재하고 나머지는 이에 개기지 못하고 자포자기 하도록 유도했다.
유신체제는 꾸준히 반론의 통로로서 경쟁자 김대중을 뿌러뜨리려 했고, 김대중체제는 꾸준히 반대진영에 누군가 들어가서 들이엎어버려서 일당독재를 유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유신체제에서는 박정희, 전두환 말 잘들어서 실력없는 사람이 대학강사가 됐다.
김대중체제에서는 원불교(사탄교) 박지원, 원불교(사탄교) 백낙청, 원불교(사탄교) 김무성 의도대로 말잘듣는 사람들이 권력을 쥔다.
조갑제 기자의 언어에서 레닌 서적 읽어본 사람들은 이해하는 공산혁명가식의 언어를 본다. 아니라고 해도 전라도 사대부의 언어이지 경상도 유교의 언어는 아니다. 레닌 및 중국 공산당 언어가 쭉 이런 식이다. 반대정파의 몰락을 앙망한다. 그게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조선시대 붕당정쟁 언어도 같다.
조갑제기자 사이트의 거의 100% 자료가 유신시대와 다른 형태의 권력 줄서기(유신시대는 박정희 전두환인데, 전라도 동학의 두목 원불교 박지원으로 추정되는) 형태의 저질 저급 정보에 헷갈리는 내용이 투성이다.
대학강사로 120분 강의를 65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만땅구 채우는 성실한 강사를 기대하는 마음은, 그때 대학생들은 진실 탐구하는 사람을 존중했다는 이야기다.
이제 진짜 조갑제기자의 문제를 따져볼 때가 됐다.
조갑제기자는 대학교수를 조롱한다.(이 유형의 조갑제 과거글 분량 많음) 도덕을 조롱한다.(이 유형의 조갑제 과거글 많음) 인문학을 조롱한다.(이 유형의 조갑제 과거글 많음) 그리고, 무속신앙으로 자기들의 쾌감유도에 따라오는 멍청한 노인을 사랑한다.
지금의 보수진영 문제는 원불교 박지원-원불교 김무성 줄 탄 유신시대로 치면 65분 강의 때우는 실력없는 정신나간 곰팡내나는 사람의 문제이다. 그때와 달라진 점은 영원히 영구히 종신토록 <곰팡내 독재>를 위해서 경쟁자를 씨를 말리려 발버둥치는 것이다.
유신시대는 공권력 남용에서 이게 아니다. 과잉금지의 원칙을 논했다. 공권력남용은 전체의 진실을 감추는 의도가 가장 셌다고 본다.
지금에 본질적인 문제는 김문수씨가 또 차기지도자라는 미디어다. <이재명 개새끼>가 벌써 시작했다. (미국 민주당아! 윤석열 탄핵이 민주항쟁 아니라, 원불교로 소련 볼셰비키 혁명 모방해서, 6.25 때 동족상잔 흐름의 한 유형이었을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아시아해석이 믿겨지지 않는다. 물론, 진보기독교 맥락에서 얼마나 신앙적 선의로 동반자로 하려는지 이해한다.) 이재명 개새끼 몰아가고, 반대편에 펌프질하는 것은 유신시대 공권력 남용과 같은 효과다. 전체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남로~북로와 연결된 귀족들을 돈 벌어주기 위해서, 부채를 부동산 매수하게 하여 지탱되온 현 체제의 구조악을 감추는 문제다.
사실, 보수의 기독교로 본 시장경제이거나, 진보의 기독교로 본 시장경제이거나 답은 똑같다. 시장경제의 바탕은 ‘노동’이다. 『자본론』 읽어본 놈들은 알겠지만, 『국부론』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화폐는 곧 노동에 대한 어떤 가치에 대한 뭐뭐 해준다는 그런 부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야 모두가 조선시대 양반놀음으로 권력에 줄서서 권력잡으면 우덜 무릉도원? 이 지랄 하고 있다.
필자는 유튜브에서 영어권 진보 콘텐츠도 자주 본다. 번역이 지원 안되더라도, 어플을 깔면 모든 유튜브 영어 콘텐츠가 번역이 돼서 이해가 된다.
이미 한국에는 영어권 진보 콘텐츠가 상당히 번역됐다. 소련이나 북한, 중공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진보는 서방자유진영에서 교회법 주도에 반대를 한 로마민법에 강조를 둔 기독교귀족분파와 연결이 돼 있다.
문제는 더불어 민주당이 ‘전라도식 이단’이 95% 훨씬 이상이고, 더불어 민주당은 현저히 히틀러 파시즘보다 더 파시즘을 구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영어권 진보콘텐츠나 보수콘텐츠나, 어디가 우선이냐일 뿐이지 서방자유진영 인맥 결합의 문제다. 여기서 중국인들의 1인독재 혹은 1당독재가 불가능한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충성맹세로 들어온 실력없는 사람을 관변인사로,
원불교 박지원, 원불교 백낙청등에 충성맹세로 들어온 실력 없는 사람은 신관변인사일 것이다.
영어권 진보 세력에 한국인은 부정적 평가를 하기 어렵다. 사실 제3세계 가난한 국가에서 선진국 말단까지는 컸던 원인도 영어권 진보세력의 신앙적 호의가 중심을 차지했다. 그러나, 구한말 노론들의 지배법으로 백성들에 무책임한 부채를 유발하여, 재벌들의 성장동력으로 쓴 체제는 세계경제위기와 함께 뿌러질 조짐이다.
최근에 [이혼숙려캠프] 예능을 자주 본다.
한국귀족의 다수파는 아, 씨발 하면서 욕지껄이하고 본능대로 산다. 그런데, 꼭 그 가정에는 내가 포기하면 이 가정 망해요!하는 반대편의 분이 있다.
유신체제가 공권력남용으로 전체 진실을 가려도, 전체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했었다. 지금도 똑같다. 산상수훈 본문을 보수의 기독교, 진보의 기독교 각각의 유형의 신앙고백으로 바라볼 때다.
(사족)
필자의 성격이 형성될 즈음에 보았던 풍경. 그때는 먹물이 다른 먹물들이 얼마나 힘들었나? 그렇게 유지하느라 힘들었나? 바라본다. 대한민국 육군의 행군이 혼자가면 낙오할 길이, 병사들이 연합하여 전부 숙영지로 가듯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에 비운동권은 전교조를 혐오했다. 진리를 추구함이 어찌 교환가치냐? 그렇다. 일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진리 추구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추구는, 금전으로 바뀔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