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학 지배세력’이 결사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글로벌한 대공황 속에서 ‘로컬’한 의미로 경제위기가 다가오는 본질적 이유에 대하여 - ‘박정희·전두환’ 지도자 이미지에서 ‘문재인·이재명’ 이미지의 차이에 관하여-
 
 

세계의 자본주의는 똑같지 않으며, 한국의 자본주의는 명백히 ‘로컬’하다. 글로벌한 사상지형으로서 ‘자본주의=백인보수=자유주의’,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유럽적 민중연대 공식은 한국에서는 대단히 무력해진다.
 
일베 정게에 의하면 강준만 교수는 미국의 진보의 예수 신앙의 용어를 적용하여 비평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한국에 그 비판대상(유럽문명 기독교제사장의 지위를 사용하는 경제갑질 존재)이 ‘부존재’한다. 한국의 자본가들은 모두 ‘노론’이며, 전라도 유교나 전라도 동학신앙이거나, 경상도에서는 전라도 유교 추종집단을 의미한다. 강준만교수가 진보의 예수신앙 용어 사용은 NCCK의 진보의 예수신앙을 동학신앙과 같다고 자의적으로 번안한 버전의 사용이다.
 
‘기독교 진보진영’이 한국에 추종자를 찾을 때 가장 일반 기독교국민이 당혹해하는 일이 있다면, 사회 불의와 부정의는 ‘원불교’(사탄교) 등 중국식 씨족종교집단의 경제 시스템에 있지, 미국의 보수기독교나 진보기독교 어느 족에도 있지 않다고 느낀다는 데, 유럽 진보의 생활 맥락을 강요당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진보진영이 논하는 보수기독교 영역과 얽혀진 기독교 제사장 가문과 얽혀진 경제갑질이 영어권 유럽 문명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수기독교이든, 진보기독교이든 어느 쪽이든 한국의 사회 불의에 대하여 고치는 대안적 가치가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본질적 계기는 이재명 정부가 트럼프 정부에 협상을 잘했다는 일베 정게의 여론에서, 유신시대를 떠올리게 되는 생각 때문이다.
 
유신체제의 지도자 이미지 – 박정희 전두환 성리학적 군주신앙. 왕을 우주정점에 두고 왕중심의 성리학적 유교 예의정치를 구사하고, 제일 꼭지점에 배치한다.
 
박정희, 전두환은 ‘질서의 정점’이다. 그만큼, 박정희 전두환 시대는 권력은 음지를 소외시켰어도, 민중영역은 결코 음지를 소외시키지 않았다.
 
원불교 백낙청사단이 주도한 사회구성체논쟁의 결과물은 소련공산주의적인 언사를 거두어 내고, 해당되는 다수의 그 당시에 기성세대가 체험했던 실체만을 논하면, 6.25 참전용사 및 영남 동학(군부)만 공감하는 내용의 질서로서 존재했다.
 
김대중체제의 지도자 이미지 = 관직을 독점하여 나눌 수 있는 우리 씨족 족장의 이미지.
 
김영삼 때부터 동학신앙은 한국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 때 대학가는 프랑스 철학의 욕망이론이 지배했다. 물론, 서양철학 전공 레벨로 설명하면 길고 복잡하다. 그러나,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개똥이는 문재인을 응원했다.
개똥이가 응원하는 문재인이 박근혜 정권 무너뜨렸다.
문재인이 청와대 들어간다.
개똥이는 문재인을 응원했다.
 
영희는 이재명을 응원했다.
영희가 응원하는 이재명이 윤석열 정권 무너뜨렸다.
이재명이 용산대통령실 들어간다.(청와대는 수리한 이후 갈모양)
영희는 이재명을 응원했다.
 
지도자 응원이 이렇게 동학신앙은 자기를 출세시켜주거나 이익을 준다는 이해관계로서 욕망이 된다.
 
일베정게조차도 지금 지배세력에 지배당한 흔적으로, 이재명 정부가 협상을 잘했다고 보는게 생뚱맞으면서도, 지금 이 시대의 본질을 말해준다.
 
이재명은 윤석열 정부를 끌어내렸다. 레닌의 볼쎼비키혁명 및 똥물에튀겨죽을 동학신앙 공식으로, 이재명은 윤석열에 최대한 잔인하게 지배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래서, ‘국힘측’을 꼼짝 못하게 하고---이 작업에 연동하는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친윤’ 비판은, 조갑제기자의 박정희 책장사 수익 올려준 지지층에 이재명정부가 부담을 전가하는 것을 적극 환영한다는 속내다--, 지지층에 선물 장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유신체제는 1인 지도자의 안녕 이외에는 국민이 생각을 안한다.
 
김대중체제는 귀족들의 이익 독점과 거기에 개평먹는 계층빼면, 부채 어디서 안되나? 하는 일로만 나타나고 생각을 안한다.
 
유신체제의 지도자는 6.25전쟁 때 참전한 영남군부가 공감할 질서, 그 자체였다.
 
김대중체제의 지도자는 진인 정도령의 살아 있는 구현으로, 소련식 혹은 중공식 공산당에서 국민이 정신 줄 놔도 하나 하나 케어하고 다 봐준다는 지성의 엽기적 초월자 문제다. 일베정게조차도 이런 ‘만화’(영웅신화) 세계를 믿는다는게 문제다.
 
현실은 ‘소고기’와 ‘쌀’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이 의도한데로 따라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어차피, 대중매체의 정치신화 속에 있는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 문제는 별개의 논의로 하자.
 
프로젝트 파이낸싱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시행사 보증은 시공사, 시공사 보증은 지방자치, 지방자치 보증은 정부다. 그런데, 그 지도자가 귀족에 봐주고 국민에 손실을 전가한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를 부려먹다가, 일 못한다고 세도가문 후예의 자본가들이 새롭게 세운 층이라고 본다.
 
수요측면에서 국민의 가계부채는 부동산이고, 정부와 지방자치 정치인만 믿은 것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정부와 지방자치는 이익은 자기화 손실은 사회 전가로 간다.
 
1997년 아임에프는 김영삼이 필요 이상으로 난도질 당했다. 김영삼 정권을 김대중체제의 시작으로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IMF 발생의 원인은 세도가문 후예들의, 경제원리를 벗어난 ‘공유지의 비극’ 스타일의 욕망의 대방출 때문이다.
 
이 욕망의 대방출이 과거에도 있었다. 제1-제2공화국 때다. 그때는 그냥 서로 싸우며 경제 발전 없음으로 그쳤다. 김영삼 때 IMF 때는 경제영역은 김대중세력이 장악하고, 국민의 마음은 유신체제에 잡혀 있는 상태였다. 김대중세력은 남북관계 세우려고 하니 군부 잔존파를 청산해야 하고,
 
군부 잔존파를 청산하고 노무현 때 부동산을 매개로 제대로 부채 레버리지로 국민소득을 확산시켰다. 이익은 귀족, 손실은 국민전가. 일부를 개평 뜯듯, 국민에 페이백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이 노선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조선시대 노론독재처럼 알차게 국가기구를 노론양반가문 이익확산의 문제로 했다. 여기에, 영남 정파의 국가기구 적용은 무엄하다고 본다.
 
문제는 이제 부채 레버리지로 어마어마하게 노론양반 후손들의 욕망을 해소하도록 자본시장을 부풀렸다. 이를 유지할 인구가 없다. 이를 유지할 국제적 조건이 없다.
 
‘세계교회’에 묻고 싶다.
 
강준만 교수가 기독교에 속하지 않은 세계관인데 진보의 예수 믿는 것처럼 신호를 보내고, 그것을 국제진보세력이 인정했다.
 
성경 논리로 이렇게 귀족이익을 위해서 부채 들고 투자를 유도하고, 이익만 자기화, 손실은 무책임. 이건 정부가 ‘민형사상의 사기죄’로 봐야 하지 않나?
 
한국에는 보수의 예수와 진보의 예수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한국의 개신교를 후하게 잡아서 천만이라고 해보자. 4천 7백만에서 25%도 안된다. 그런데, 그 신앙인구의 최소 70%는 그냥 ‘교회출석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끼리 성서의 예수신앙을 제대로 믿는다면, 신학차이 넘어서 단결이 맞다.
 
유신체제를 대항하는 김대중지지자들은 영남유교 왕권제에 성경의 교회관이 어디있냐고 분통 터뜨렸다.
 
필자는 김대중체제에서 이렇게 부채버블로 부동산 부풀리고, 그 유동성으로 정치인 유동성 확장은 국가의 민형사상 사기 아닌가?
 
김대중지지자들은 유신체제에서 급여 제대로 안 줬어! 하며, 유신체제 정책설정자에 분노했다. 그랬던 분들이 더 심각하게 귀족영역에서 자의적 문제를 구사한다.
 
필자는 광주일고 조선일보의 중국 AI 행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기사에서, 큰 경제위기가 오는 이유를 느낀다. AI는 닷컴버블 만큼 과장됐다. 물론, 미래에 AI가 중심될 것은 맞다. 그러나,...... ‘파이’가 그렇게 클 거 같지 않다. 노령화되는 한국에서 과잉된 전자 문제는 ‘오버’일 수 있다. 세탁기 근대화로 노동력 절약해주는 낭만을 바라는 분들과 달리, 기계가 갑질하는 곳에 을당하는 악몽을 생각하는 분들은 싫어한다.
 
유신체제의 지도자 이미지는 6.25전쟁 참전한 군부 연결된 영남동학파가 볼 때 질서의 산물이다.
 
김대중체제의 지도자이미지는 자기들 파벌에 선물 퍼주는 자기종족의 아바타 지도자 이미지다. 지도자가 그 자체로 욕망이다. 귀족들의 욕망을 위해서 아낌없이 백성들의 재산을 투자 유도하게 됐다. 그리고 책임을 못 진다. 최대한도로 있는 끝까지, 지속불가능한 지경까지 백성의 몫을 소모하고 끌어쓸 모양이다.
 
거듭 강조하고 싶다.
 
한국에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제사장 지위를 악용한 경제갑질이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 <없는 기득권자>를 상대로 한 저항공식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 표현만 빌려서 덧입히는 강준만 교수 방법도 옳지 않다.
 
결국, 모든 협상은 한국에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자본시장 붕괴가 심각하고, 대공황도 심각할 것을 의미한다. 유신체제에서 자기들이 권위주의 질식하는데 애국심으로서 전두환 빨라는 것에 싫어하는 심리, 비슷할 것이다. 정작, 우리앞에 주어진 경제현실을 살리려 한다면 어떻게 가야 하나?
 
영웅신화는 1994년 최광식 교수가 강만길교수에 고대 건국신화 박사논문 받은 이후부터 강조가 됐다. 영웅신화는 그 자체로 부족끼리의 결합과, 그 나머지를 열외하는 자의적 불통구조를 전면화한다.
 
유신체제 권위주의 피해자들이, 정의의 하나님을 부르짖듯, ..... 부동산 문제로 얽힌 잘못된 정보로 인한 투자 피해자들이, 정의의 하나님을 부르는 게 지금의 한국이다.
 
유신시대는 서양말로 분식된 영남권위주의는 아니라는 주장이 김대중지지 민주당의 생각이다.
 
지금은 서양말로 분식된 노론 세도정치다.
 
보수기독교이든, 진보기독교이든, 기독교세계관이 대안이다.
 
사쿠라 조갑제기자처럼 원불교 일당독재에 줄 닿은 양반가문만이 희망이라는 소리는 미치광이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