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히틀러 파시즘과 2025년 한국이 다른 측면은, 독일은 히틀러 단독 파시즘이고, 한국은 다양한 색깔로 약간씩 차이를 가진 파시스트들의 경연장이 됐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구의 입장에서 윤석열씨의 ‘비상 계엄’이 민주주의 결여로 보이는 것을 부정하는게 아니다. 충분히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보의 예수를 선호하는 국가들이 민주주의의 본래 모습이라고 보는 더불어 민주당이, 더 심각한 파시즘의 구현을 못 보는 점이 문제다.)
종교개혁 정신과 근대 계몽주의에 연결된 개인의 자유를 구현하는데 독일의 근로자계층과 연결된 중산층 일부가 어렵다고 느끼면서 단순한 권력 미화로 나아갔다.
반면에, 2025년 한국의 파시즘 현상에서 실증적 근거로도 자리하는 명백한 것이 있다. 필자는 미국 공화당에 심정적 동일시하면서, 미국 민주당을 비판하는 그런류 비판에 무관심하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입장에서, 미국 민주당도 한국의 호남동학에 사기를 당했든지, 아니면 자의적으로 개입을 했든지, 결론을 지어야 할 사항이 있다고 본다. 유튜브에서 미국 민주당 성향의 경제논객들이 대부분 똑같은 문제가 나타나는데, 아시아 원래 종교에 기반한 아시아 사람들이 느끼는 악행의 문제에 정말 무관심하다. 모든 것을 <미국백인우파 개새끼>라는 맥락으로 해석해버린다.
[k-자유로부터의 도피] 현상에는 문익환 목사의 민중신학 현상이 자리한다. 동학신앙에 교횟말만 씌우되 거의 대부분을 동학신앙 종교세계관으로 살아가는 일군의 집단을 말한다.
요점을 밝히자 :
《히틀러 파시즘 현상》 : 독일중산계급, 근로자 계층. 종교개혁 정신의 생활화로서 자유의 자기 책임. 더럽게 어렵다 이기야!
《한국의 파시즘 현상》 : 동학신앙으로 중국에 사대조공질서를 살아간 친중성향의 양반귀족의 족보나르시시즘의 세계. 원래, 동학양반은 법앞의 평등은 조까는 소리다. 권리는 누리지만 원래 의무는 안한다. 그게, 아시아적 정서다.
히틀러 파시즘은 <단독 파시즘>이다.
한국의 파시즘은 소련의 볼셰비키 혁명(내전)과 유사한 ‘파시즘 전쟁’의 상황이다. 소련 공산당의 볼셰비키가 집단귀족 이익의 행위를 위해 권력장악하는 어법을, 원불교(사탄교)동학신앙의 부족결속행위로 나타난다.
필자가 진보의 예수 신앙을 믿는 국가에 있어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때에 충분히 러시아 임시정부의 악행만 골라서 지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시각은 뭘 모르는 외국의 황당무계한 개입으로 볼 것이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때도 임시정부 세력의 악행은 명백히 있었다. 그러나, 볼셰비키 세력이 모든 방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마찬가지로, 원불교(사탄교)촛불마왕 백낙청 부대가 모든 방향에서 차원이 달랐다.
독일 파시즘은 독일 근로자 계층의 민주주의 후퇴다. 권력에 아부하며, 이익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바치리다.
그 심리 비슷하게 동학신앙은 자신의 씨족이 아닌 지배체제를 들이엎고, 들이엎는 것을 소련식 인민민주주의의 <엿장수 맘대로 민주주의>어법 유사하게, 전라도 씨족의리론으로 자신들이 하는 모든게 무조건 민주주의요, 다른 씨족은 반민주라고 규정한다.
유신체제의 국가주의가 권위주의의 지배이데올로기였듯이,
김대중체제의 통일담론은 개벽신앙과 연결돼서 지배층이 모조리 하나의 동학양반가문이 싹쓸이 해야 함을 반영한다. 이제, 권력을 쥐었으니 대순진리교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처럼,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때 반대파 진압의 어법으로 윤석열씨의 경제적 파산을 유도하는 논리로 이어진다.
자유진영 서양법 보다는 원불교(사탄교)에 깔린 호남종족주의가 사법부에서 정주행한다.
이제 이분들은 세계 금융위기 시작조짐에서,.... 거품이 쫙 빠져버리면 민주화체제의 김대중경제학의 동학신앙을 낀 경제범죄 행각이 다 드러남을 걱정한다.
한국의 모든 시스템은 ‘법, 규칙, 규범’을 통한 이성적 자유의 확장이 아니라, 농촌사회 씨족두레 공동체 주의로 ‘초고속 신용팽창’을 통한 국민소득 확장의 과도한 레버리지 열차를 탔다. 국민국가가 국민의 동의없이 빌황의 레버리지 투자 열차에 모두 탑승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 열차의 탈선을 막는데 급급했다.
한국 같은 아시아에서는 거듭 강조하지만,
미국 민주당의 미국 보수주의 비판의 디테일은 무의미하다. 미국 자유주의가 상상을 초월하는 기독교귀족의 역사와 연결되며, 이를 수용하지 말라는 측면은, 미국 민주당은 노론독재 300년과 그 계승자인 원불교(사탄교)의 악행에 대해서 뭘 아는지의 대꾸로 상쇄될 것이다. 미국 민주당 및 유럽의 진보세력은 아시아의 디테일에 대해서, 한국이 유럽문명의 디테일을 잘 모르는 것보다 솔직히 더 모르지 싶어진다.
히틀러 파시즘 때 민주주의 붕괴에 나타난 것이 ‘감정의 정치’였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동학신앙에 깔린 감정의 정치일 것이다. 어제 종편에서 여섯 살짜리가 트로트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부모가 돈 나올 구석이면 자식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은 유동성 팽창이 되는 길이 절대 정의라고 보며 못할 짓을 했다. 유신시대에 저가 상품 수출을 위해서 권위주의가 필수라고 보며 못할 짓을 한것에서 나아진게 없는 것이다.
결국, <승자 파시스트>가 <패자 파시스트>를 뜯어먹는 악순환이 무한대로 벌어지고,
그렇게 법은 불안정해지고,
승자가 되면 민심 매수를 위해 나눠주는 선물 보따리에 시장심리는 붕괴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