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대 주게……”

 

군용 트럭이 심하게 덜컹거릴 때였다. 연대장은 말없이 시커먼 천막 천장을 바라보다가, 무거운 침묵 끝에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나는 당황한 채로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손목을 튕겨 한 개비를 빼내어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라이터 부싯돌을 몇 번 돌려 불을 붙이자, 연대장은 힘없는 손으로 담배를 쥐고는 배고픈 갓난아기처럼 한 모금을 깊이 들이마셨다. 긴 숨을 내쉬며 연기를 뿜어낸 그는, “담배 맛 참 좋군.” 하고 말하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7월, 장마철 같지도 않은 장마와 무더운 여름이 뒤섞인 어느 날. 나는 연천 민통선 부근에서 근무 중인 신참 소위였다. 부대에 적응할 시간도 부족했고, 병사들과도 아직 어색한 상태라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날 선임을 통해 연대장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부대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대대적인 정비에 돌입했다. 그러나 연대장은 정작 부대 시찰엔 관심 없이, 인근 농민들이 제기한 민원을 살피러 온 것이었다.

 

문제는 장마로 유실된 토사가 민간 농지로 흘러들어간 일이었다. 원래는 대대장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연대장과 친분 있는 마을 조합원의 연락으로 일이 커진 셈이었다. 연대장은 작전장교, 대대장, 그리고 막내였던 나와 함께 피해 지역을 먼저 점검하기로 했다. 우리는 군토나를 타고 좁은 농로를 따라 10여 분간 달려 피해 지역에 도착했지만, 곧 진창으로 변한 길에 차량이 멈춰 섰다. 바퀴는 헛돌기만 했고, 연대장은 차에서 내려 걸어가자며 지휘봉을 들고 앞장섰다. 대대장은 나에게 차량을 빼놓으라는 말만 남긴 채 그들을 따라 떠났다.

 

나는 운전병과 함께 진창 속에서 차량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투화는 진흙 속에 잠기고, 군용 양말 사이로 흙탕물이 스며들었다. 타이어 아래 깔아둘 나뭇가지 하나 없던 그곳에서 차량은 미동도 없었다. 결국 나는 대대에 연락해 포차를 요청하려 했고, 그 말에 운전병은 군기교육대로 끌려갈까 두려워 애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고위 간부들까지 진흙탕에서 차를 끌어내게 만든다면, 나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게 뻔했다.

 

나는 소리쳤다. “지금 군기교육대가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상황 보고를 마친 뒤, 멀리 수로를 따라 걸어오는 연대장 일행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뛰어가 설명하려 했고, 바로 그 순간,

 

꽝!

 

엄청난 폭음과 함께 황토빛 흙먼지가 하늘로 치솟았다. 무릎을 굽힌 채 몸을 숙이고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전방 50미터 앞에 쓰러져 있는 연대장을 보곤 정신없이 달려갔다. 수로 아래쪽엔 작전장교와 대대장이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연대장은 두 무릎 위가 절단된 채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뒤이어 달려온 운전병이 작전장교와 대대장을 살폈고, 나는 연대장 앞에서 말문이 막힌 채 “어… 어…”만 되뇌었다. 곧 포차가 덜컹이며 도착했고, 운전병이 말했다. “작전장교와 대대장… 죽은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리 와! 연대장부터 모시자!”

 

운전병과 나는 연대장의 겨드랑이와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포차로 향했다. 피는 흙탕 속에서도 붉게 번졌고, 나는 포차 운전병에게 소리쳤다. “사단 병원으로 전속력으로 가!”

 

포차는 지옥 같은 현장을 탈출하듯 덜컹이며 속력을 냈다. 연대장은 정신을 잃은 채 조용히 바닥에 누워 있었고, 그의 끊어진 두 다리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터져 나왔다.

 

핏물은 포차 바닥을 덮치듯 퍼져나가 덜컹거림이 있을때마다 작은 파도를 만들었고, 나는 그 피바다 위에서 얼어붙은 사람처럼 멍하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놓치면, 이 사람은 죽는다.

그 단순하고도 절박한 생각이 번갯불처럼 뇌리를 때렸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두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내 가슴팍에 힘껏 눌러 지혈을 시도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스며들고, 군복 가슴까지 붉게 번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 순간, 연대장이 가늘게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고, 서서히 초점을 잡아가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내가… 살아 있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대장은 조용히 팔을 양옆으로 벌린 채 피로에 지친 몸을 맡겼다. 눈빛은 흐려졌지만, 그 안엔 뚜렷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후회인지, 안도인지, 아니면 그저 남은 생에 대한 작별의 인사인지.

 

그 침묵의 눈맞춤 속에서, 우리는 단 한 마디 없이 모든 걸 나눴다. 그러곤 연대장은 멍하니 시커먼 천막 위를 바라보다가, 내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담배 한 대 주게.”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충격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왼팔로 다리를 눌러 지혈을 유지한 채, 오른손으로 전투복 주머니를 뒤졌다. 손목을 튕겨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그의 입에 물려주고, 라이터를 몇 차례 그어 불을 붙였다. 피 묻은 손으로 장초를 쥐고,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듯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리곤 천천히 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담배 맛… 참 좋군.”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마치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떠올리듯, 담배 끝이 빨갛게 타들어가는 걸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용히 한마디를 더 남겼다.

 

“……오늘부로 난 담배를 끊을 생각이네.”

 

그 말과 동시에 손끝에서 담배가 툭, 바닥에 떨어졌고—

 

그 담배처럼, 그의 생명도 조용히 꺼져갔다.

 

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