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에는 소련군(북한)과 미군(남한)이 주둔하였다. 

소련군과 미군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1945년 8월 말 평안북도 강계에 소련군이 들어왔다. 

 



소련군은 민가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여러 물건들 중 시계와 만년필을 가장 먼저 가져갔다. 주민들이 술은 땅속에 묻어서 모두 숨겼다. 소련군에게 술을 줬다가 취하면 행패를 부리고 폭행, 살인, 강간, 방화까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련군 한 무리가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나 이불과 담요를 가져갔고 나중에는 소련여군들이 취사도구까지 다 털어갔다. 

 



1945년 8월 말 평안북도 곽산에서 목격된 소련군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조선인들이 소련군을 환영했지만 소련군은 조선인들에게 약탈과 폭행을 자행하였다. 소련군 행렬 뒷쪽에는 보급마차가 따라갔는데 약탈한 가축들(양과 닭)이 즐비했고 마차 위에는 취사를 위한 부뚜막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길거리에 개들이 보이면 바로 총을 쏴서 잡아먹었다. 

소련군은 무기와 탄약을 제외한 모든 물품들을 현지 조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가약탈 외에도 공장의 기계와 설비도 모두 뜯어갔다.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댐이었던 수풍댐의 발전기도 뜯어갔다. 



일제시대 압록강 수풍댐: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댐이었다. 수풍댐의 발전량은 70만 kW2으로 당시 한반도(인구 2000만명) 전기수요량의 85%를 충당할 수 있었다. 

<수풍댐 발전기>


소련 군정 내내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군에 의한 강간, 폭행, 약탈이 끊이지 않았다. 소련군 중령 페트로프는 소련군이 1945년 8월부터 이후 5개월간 북한지역에서 벌인 행태를 기록했는데, 12월 29일 작성된 해당 문서에는 "우리 군인(소련군)의 비도덕적인 작태는 실로 끔찍한 수준이다. 사병 장교 할 것 없이 매일 곳곳에서 약탈과 폭력을 일삼고 비행(非行)을 자행하는 것은 (그렇게 해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우리 부대가 배치된 시나 군 어디서나 밤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범죄도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신의주 반공학생의거는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소련군 장교들 모습>



치스차코프는 이에 대항하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면 "조선인의 절반을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극언을 서슴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련군 사단장인 드미트리예프 대령은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500년 동안 노예(노비)였다. 좀 더 노예생활을 지속해도 괜찮지 않은가?"라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노획한 문서 가운데는 이른바 '체포인 명부'도 존재한다. 소련군에 대항하다 체포된 이들의 명단인데, '쏘군 감옥 이송'으로 표기된 이들의 행방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쏘군 감옥 이송'으로 표기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군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미군은 최신식 무기를 모두 갖추었고 무기가 손실되면 바로바로 보급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개인 화기 및 장비>
 



또한 남한의 산골오지에 주둔할때도 침구류, 식량, 식수(정수제)까지 휴대하고 있었다. 

C-레이션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에서 쓰인 미군을 대표하는 전투식량이다. C레이션, C랫, 찰리 랫 등으로도 불렀다. 1938년에서 1945년 동안 사용되었는데 좀 더 맛있고 영양이 고루 배분되었으며 보존이 용이한 식단 구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1945년에는 C-레이션 개량판이 나와 한국전쟁을 지나 1958년까지 전투식량을 책임졌다. 보급량도 충분해서 한 명의 병사가 하루에 M-유닛 세 개와 B-유닛 세 개, 악세사리 팩 한 개씩 지급 받았다고 한다. 

 


M-유닛은 12온스(340g)의 고기 통조림으로, 메뉴가 1파운드(16온스, 450g)의 고기&콩(meat and beans), 고기&으깬 감자(meat and potato hash), 고기&채소 스튜(meat and vegetable stew) 세 가지 였다. 여기서 고기 스튜는 소금, 후추, 양파를 뿌린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토마토 소스로 버무린 미트 스파게티도 있었다고 한다.

1944년에는 다진 햄과 달걀과 감자, 고기&국수, 돼지고기&쌀, 프랑크푸르트(소시지)&콩, 돼지고기&콩, 햄과 리마 콩, 닭고기와 야채 메뉴, 채소를 넣은 쇠고기 스튜 등이 추가되고 으깬 감자는 짤렸다. 병사들이 맛없다고 건의한 메뉴는 없앴다고 한다.


 


B-유닛(bread and dessert portion)은 하드택 비스킷과 비슷한 소금 크래커 5장, 설탕 알약 3개, 포도당 알약 3개와 음료수 분말로 구성되어 있다. 음료수 분말은 커피와 레몬 주스 가루, 비타민 C 또는 육수 수프(부용)이다. 음료수 분말은 1944년에는 오렌지 주스 분말 또는 달콤한 코코아 분말, 1945년에는 포도 주스 가루로 바뀐다.

포도당 알약도 1941년에는 땅콩이나 건포도 사탕, 참스 사탕 또는 브라취 초콜릿 캐러멜 등 다양한 종류의 사탕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1944년에는 원형 초콜릿이나 쿠키 샌드위치로 바뀌고 크래커가 4장으로 줄어들었다.

 


이게 끝이아니고 악세서리 팩이 추가된다. 최초에는 12온스(340g) 통조림으로 포장되었지만, 나중에는 갈색 포장지로 싼 패키지 형태로 바뀌었다. 악세서리 팩 안에는 설탕 알약, 정수제, 평평한 나무 숟가락, 사탕 입힌 츄잉껌 한 조각, 3개씩 포장된 담배 3개 또는 9개가 포장된 담배 1개, 방수 성냥 20개, 종이로 싼 P-38 캔따개, 화장실용 휴지가 들어있었다. 


이로인해 미군이 주둔한 곳에서는 약탈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들이 미군들을 따라다니면서 초콜릿과 C-레이션을 달라고 졸랐다. 

 




또한 미군은 상대적으로 기강과 규율이 잘 잡혀있어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은 치안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