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및 유럽 진보세력의 생각은 이렇다. 부르주아 지배체제인 미국 보수를 뺀 나머지를 공동체주의로 보며, 한국, 일본 및 중국을 그 영역에 확대해서 본다. 이 분들 생각은 근본적 착각이 있다. <양반 지배체제>에서 나타난 엽기적 기득권 행사에 기인한 사회부작용을 알려는 노력이 없다.
중국은 공산당 이전에 ‘양반지배체제’와 연결된 꼭지점에 있다. 중국 베이징은 양반지배체제의 중심을 의미한다. 달러 지배체제에서 벗어나서 베이징 권력에 종속되는 것은, 동북아 토착지배계급의 모든 악행의 출구를 활짝 여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윤석열씨는 ‘구치소’에서 역시 상황 파악이 안되도 너무 너무 안되는 글을 남겼다. 윤석열씨의 수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러하다.
①. 유신시대 색깔론이라 하여 영남 동학 귀족만 권력독점하는 논리가 있었다.
②. 김대중 지지자들은 전라도식 유교 복수를 꿈꾸었다.
③. 촛불의 공세 앞에서 필자는 1당독재 중앙을 깨는 법적 공방을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를 허락하기 힘든 영역이다. 역시 윤석열씨는 조선일보 말은 잘 들었다. 그래서, 1인독재 색깔론을 소환하는 비상계엄을 했다.
④. 김대중지지층은 전라도 유교~전라도 동학신앙을 기준으로 마르크시스트 계급이론을 구사한 일제 강점기부터 역사가 있다. 이는 글로벌 좌파와 완전히 전혀 다른 세계관이다.
한마디로 말하자.
<노론독재 300년>~<조선공산당>~<남로당>에 이어지는 씨족적 전통을 가진 이들에 대하여, 공권력을 움켜쥔 군사정권은 정죄했었고, 이를 불만스럽게 여긴 이들에, 윤석열씨의 <비상계엄>은 유교 행위의 복수의 떡밥을 줬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 김대중지지층이 영화인으로 복수영화로 살떨리게 만든 작품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구경북 동학노인만 모른다. 전라도사람이 읽는 중국경전은 중국경전 자체가 마르크시즘이다. 전라도 귀족일부에는 마르크시즘과 주체사상이 필요없고, 원불교(사탄교)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호남의 원불교(사탄교)인들은 절대, 절대, 절대 글로벌리스트가 아니다. 68년 혁명 때 글로벌 좌파가 모택동주의를 선망했던 역사가 있고, 호남의 원불교(사탄교)는 모택동주의 이념을 반영하는 모택동 신민주주의를 반영한 역사가 있는 수준이다. 대순진리교 이재명 대통령은 외국에 보여주기 용으로 온 우주가 중국경전 연장편인 증산교계열 세계관에 있는데, 진보 기독교를 하는 체 하는 시늉을 한다. 윤석열씨는 비상계엄에 이어서 또 또 또 자살골 마인드를 지향한다.
원시교회 공동체를 그리워하면서 초국가적인 권력주권을 구사하는 진보 기독교이든, 국가 건국세력 기독교귀족 연합의 권력주권을 구사하는 보수기독교이든, ..... 적어도 이 두 국가는 유신체제와 김대중체제에서 있는 두 가지 현상은 없다.
유신체제는 김대중 지지층 유권자에 부담 전가되는 영역, 즉 저임금 근로자들에 대하여 무조건 침묵했다. 이들의 고난을 알지만, 고난을 도와주면 시스템이 부서진다면서, 매스미디어에 시스템 유지를 위한 상징의 쳇바퀴 돌렸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면 다 알지만, 1인독재의 교본은 분명히 있었다.
유신체제는 소외계층을 외면하고 1인 권력을 주장했다.
김대중체제는 사회시스템이 시스템적으로 꼬였음을 논하지 않는다. 유신체제는 1인독재라는 경상도식 봉건제가 실제이며, 서양민주주의가 명분(허구)이면, 김대중 체제는 ‘노론독재’에서 ‘조선공산당’ 사이가 실제이며, 호남식 귀족연합 봉건독재가 실제이다. 그리고, 서양민주주의가 명분상 허구이다.
유신체제의 상징은 전태일 박종철을 외면하는 매스미디어이고,
김대중체제의 상징은 ‘경제유튜버’마다 대공황이나 사회시스템 붕괴를 예고하는데,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머릿속은 전라도식 붕당정쟁 마인드로 꽉 차있는 <쓰레기 중에 쓰레기>마인드로 찼다.
유신체제는 법 위의 초월자 박정희 전두환이 다 할꺼니까, 국민을 생각하지 말자. 김대중체제는 법위의 초월자로 지성을 독점한 경제관료가 다 할꺼니까, 시스템을 생각하지 말자.
유신체제에서 서민외면이, 김대중체제에서는 시스템 관련한 이성적 합리성의 외면으로 바뀌었다.
미국 민주당 성향의 경제유튜버들은 기독교문화의 상상 세계에 갇혀진 은밀한 문제로 왜곡된 경제를 비판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직수입이 안된다. 왜냐하면, 한국경제의 근본 모델은 제1-제2공화국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법 위에서 양반가문이 재정 따먹기 모델로 가고 있다.
한국경제문제는 부채문제, 부채문제는 부동산 문제는 부채전문가로 유명했던 어느 애널리스트 발언이다. 여기에 필자는 부동산문제는 남북문제와 얽힌 지방자치 문제로 설명했다.
미국 민주당이 시스템 이면에서 부르주아 세력의 부의 독점 자리에는, 한국의 김대중체제는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귀족 후손들이 부의 독점으로 나타난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은 이 흐름의 빙산의 일각)
시행사는 시공사보증,
시공사는 지방자치보증
지방자치는 정부보증
이런 식으로 귀족이익의 보장은 결국은 정부이고, 귀족은 이익은 자기꺼 손실은 사회화한다. 한국사의 19세기를 아는 사람만 잘 이해한다.
보수주의 세력의 보수기독교이든, 진보주의 세력의 진보기독교이든, 결국은 경제원리에도 자신이 믿는 기독교신앙의 경제학 버전이 간다. 그런데, 한국은 김대중경제학이 여야 모두 지배하고,....
김대중경제학의 뿌리는 농업에 있다. 변형윤 박현채 등은 농업 기반의 경제를 꿈꾼다. 종족주의가 머리에 장착된 사람들은 소비쿠폰이 경제살리기다라면서, 이재명=경제살리기 무당을 띄우지만, 그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신앙 없는 이들에겐 비효율적 세금살포일 뿐이다. 일반국민이 이를 알면서도, 외면안하는 이유는,..... 어차피, 안 받든 받든 경제위기로 붕괴되면, 받는게 낫다는 심리 때문이다.
공자 맹자 믿는 귀족층 세계관에는 자기 객관화가 없다. 종법제라하여 신분제 중심으로 평민전가가 다반사이고, 씨족이 나뉘면 그 씨족 밖에 전가한다.
달러체제가 설령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전가되더라도,.... 위안화 중국 패권에 줄 서면 안되는 이유는, 미국과 중국 때문이 아니라,..... “원불교”(사탄교) 귀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신시대도 똑같은 논리다. 김대중 지지자들이 경상도종족주의에 갇힌 정부를 어떻게 믿느냐고 했다. 지금은 전라도 종족주의에 갇힌 민주당과 그 꼭두각시 연합(사쿠라 조갑제기자 등)을 어떻게 믿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세계경제사는 버블이 부풀었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게 반복된다. 그때에는 계산가능한 구조조정이 있다.
그러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나타난 디플레이션은 아시아만 겪는 문제가 있다. 일본도 모든 유동성 팽창은 정부만 믿은 것이다. 그 정부가 거의 어이 없어질 때, 모든 시장신뢰는 바닥이다. 부동산경제의 중심축은 군사정권 때 쌓인 정부와 공공기관 신뢰다. 그 신뢰가 박살이 곧 날 것이다. 그러면, 씨족주의 상호간의 상호불신으로 들어간다.
조선일보는 유신체제 민정당 지배이데올로기 수호자였다. 이때 국뽕 담론귀족도 있었다. 이들이 은근 슬쩍 전라도지배체제에 뒤 봐주면서, 유신체제를 그리워하는 노인에 장사하는 전략을 취한다.
유신체제가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불렀던 제1-제2공화국 체제는 버블이 붕괴되면, ‘불신의 악순환’으로 간다. 여기에서, 일본은 자유진영에 있었으니까 디플레이션만 있다. 여기서, 중국 베이징 줄에 서면, 일당독재 국가의 최고의 악마적인 요소로 ‘이익 수혜자 귀족연합’을 위해서 온갖 못할짓으로 인질과 노예가 된 일반국민에 못할 짓을 할 수 있다.
기독교문명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명제하에 이웃에 못할 짓을 하면 안된다는 가치관과, 공자 맹자 문명으로 아랫것과 다른 마을에는 못할 짓을 해도 돼! 이는 너무 너무 다른 것이다. 글로벌 진보를 미국 보수와 감정적동일시하여 폄하하면 안된다. 동시에, 사쿠라 조갑제처럼 그 세력을 우주중심 중화사상으로 놓는 정통 미치광이 세계관을 가져도 안된다.
공자, 맹자 세계관으로 씨족이 다른 이웃과 아랫것에 못할 짓 해도 돼! 하는 영역에 속해서 얻는 경제성장은, 모조리 일반인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