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중국의 정치경제 분석이 황당한 이유는, 글로벌 사회가 ‘백인 보수 기독교’에만 고통받고 있다는 잘못된 가정 때문이다. - ‘막스베버’와 ‘토인비’는 아는데, ‘제프리삭스’와 ‘레이달리오’는 모르는 진실에 관하여
 
 

필자는 미국인이 아니다. 한국인이기에 미국 공화당원도 민주당원도 아니고, 한국인이기에 어느 정당을 응원하지도 않는다. (두 정당 모두를 응원한다) 이 글의 ‘부제’에도 걸었듯이, ‘막스베버’와 ‘토인비’는 아는데, ‘제프리삭스’와 ‘레이달리오’는 모르는 진실을 논하고자 한다.
 
미국 민주당의 중국 분석의 한계점은, 미국 민주당이 한국에 ‘차별금지법’을 수출하려는 의도에 전부 담겨 있다고 본다.
 
한국에는 차별 행위의 주체는 ‘원불교’(사탄교)이지 백인 기독교가 전혀 아니다. 일제 강점기 민족해방운동(소련공산주의 및 중국공산주의) 관련자들의 조상숭배 발 자의적 차별이지, 복음주의 기독교가 아니다.
 
미국 민주당에는 전 지구적으로 백인기독교에 고통받는 피해자만 있으며, 아시아 토착귀족이 자국의 일반인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은 쏙 빠졌다. 80년대 후반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깔린 팔레스타인 계 미국인의 아시아 강조가, 교조주의적 종교 도그마로 아시아에 강요돼서 나타나는 왜곡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팔레스타인(성경의 블레셋)과, 한국-일본-중국-대만의 문화가 닮은 구석은 매우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레이 달리오’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대단한 사상가가 ‘중국문명’은 종교와 사회문화 이해를 못해도 너무 못한다. ‘레이 달리오’와 ‘제프리 삭스’ 교수도 낭만적으로 중국을 긍정평가하는 데 손꼽힌다. 앞서 밝힌 바처럼, 온 세계가 백인 보수 기독교에 상처받고 있다는 전제로, 그 반대편을 자의적으로 뭉뚱그리고 온 세계에 보편타당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국, 일본, 중국의 근대화”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이해하면, 제프리삭스 교수와 레이달리오의 낭만적 중국 긍정이 왜 잘못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성리학적 세계관은 조선후기와 청나라 후기에 양명학 세계관으로 바뀐다. 일본은 양명학 세계관으로 서양근대성을 번역하여 ‘메이지 유신’이 나타났다. 중국 공산당은 1920년대에 양명학 세계관으로 공산진영 문화를 번역했고, 개혁개방 이후에는 서양진영을 번역했다. 한국은 박정희 시대에는 경상도 유교를 일본유교와 퉁치고 일본식 근대화로 나아갔고, 지난 30년은 중국식 근대화도 덧입히는 일을 했다.
 
영어권 사람들이 한국, 일본, 중국 사회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가장 가깝게 이해하는 모델은, 서방기독교의 ‘양태론 이단’, 동방기독교의 ‘종속론 이단’일 것이다. 번역-번안해야 할 기독교의 히브리적 신앙 체험이 아니라, 그 번역언어인 헬라인본주의 언어가 압도할 경우가 그렇다. 양명학은 아시아를 아는 사람은 알지만, 씨족주의 언어다. 기독교신앙에 조직신학이 인본주의 언어로 기록되어도, 성서적 신앙 중심으로 비판하여 원래의 신앙이 고수가 된다. 미국 사회에 있는 아시아 사람들이 정말 미국 백인보다 우월한 지적 성과물을 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동시에 ‘타인’을 고려하며 ‘씨족주의’언어를 제어할 경우다.
 
미국 민주당이 전혀 이해 못하는 한국 사회의 진정한 모순은 친중파 촛불 부대 두목인 ‘원불교’ 백낙청이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출신이라는 것이다. 서양문명을 번역하는데 번역대상이 아니라, 씨족문화로 친중 친소련 친북마을의 종족주의가 압도하면 이렇게 된다.
 
필자는 영남에 지역연고를 둔 국민의 힘을 찍어왔다. 그런데, 정말 멍청한 것 같다. 호남 동학을 한없이 키워주고, 자신들은 귀족의 기득권패권을 뺀 나머지 전부를 양보한다. 이 모델 그대로 미국 민주당이 중국을 키워주고, 훗날 미국 민주당 귀족의 인정을 바라면 어떻게 될까? 이 주제는 원불교 박지원이 충분히 답을 해왔다고 본다. 지금의 모든 약속은 권력의 무게추가 넘어간 이후에는 ‘없었던 말’이 된다. 영남 동학은 “어찌 그런다요, 어찌 그런다요,”하는 분위기나, 바라보는 지지층의 입에서 저절로 ‘병신’이란 말이 나올만하다.
 
중국공산당이 서방자유진영에 자유적인 외형을 띠고, 뒷면에서 중국자국민 상대에서만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웃기다. 한국에서 ‘노자 장자’적인 규제해제는 순식간에 한순간에 없던 일로 말 바꾸는게 나온다.
 
『차이나 언센더드』 유튜버 크리스채플은 아시아를 정확히 이해한다. 미국 민주당 성향의 경제유튜버들은 중국인들이 서양경제학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는 가정의 분석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의 중국은 미중패권전쟁을 하는 준비과정에서의 ‘도광양회’(그때를 기다리며 발톱 감춤)일 수 있다. 반공기독교에 세뇌된 동북아시아 대한민국의 서울 사는 한명의 소시민의 착각이라고 할 수 없다. 레닌의 ‘목적의식’ 같은 논리가, 전라도 유교에서는 매우 흔하다. 서양개념은 하나의 명분적 허구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은 그 명분적 허구를 사실화하여 추인해버린다.
 
이재명 정부는 노무현의 국토균형 발전을 계승한다. 남로당 인민공화국 중심으로 한반도가 모두 소련의 종속이어야 한다고 총력 투쟁했던 그 씨족 중심의 우주중심론(중화사상)의 구현이다. 이 우주중심론의 적용은 서양정치학 논리로, 히틀러 파시즘의 ‘초 울트라’ 형태다. 히틀러파시즘이 유럽시스템의 붕괴로 나타난 예외적 형태라면, 중국문명은 야만적인 시대일 때는 매우 흔하게 나타난 형태다.
 
이재명 촛불 세력에 끌어내려진 윤석열 지지집단은 중국경전에서 몰락한 군주를 부족내의 거주민은 버리면 안된다는 어법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나가도 너무 나갔다. 이분들도 역시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주장할 것이다.
한국인 눈에는 조선후기 300년 1당독재체제를 미국 민주당이 후원해서 부활시키고, 그래서 조선왕조 정쟁(중국경전속 부족싸움)에 당한 피해자 문제가 보인다.
 
윤석열 정부에서 참모들이 경상도 유교를 구사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해서 민주주의 원칙 위반은 정당한 비판이다. 그러나, 그래놓고는 전라도 유교와 전라도 동학을 민주주의 이름으로 품어 버린다. 더 세고 더 많이 위반한 자가 약한 위반을 비판하는 모양새다.
 
레이 달리오와 제프리 삭스 교수는 미국 공화당 지배체제에 가장 타격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아군이라고 주관적으로 믿고, 그것을 경제분석에 그대로 적용한다.
 
원래, 중국문명 사대부는 헤겔이 정당하게 비판했듯이, 제일 꼭대기 위에서 소작인들을 노예부리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다. 이러한 지배양식을 세계가 믿고 의존해야 하며, 미국 백인보수는 못 믿겠다는 식의 제프리삭스 교수와 레이달리오의 시각은 진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결국, 한국, 일본, 중국은 자유진영에서 서양문화 번역어로 덧씌워진 조선시대 후기 노론독재 사대부, 일본은 메이지 유신 사무라이, 중국은 청나라 귀족의 후예일 것이다.
 
국민의 힘의 윤석열씨지지 정치인들의 문제는, 사쿠라 조갑제기자처럼 원불교 박지원을 안 따르는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영역이 문제다. 그야말로 춘추공양전이나 춘추좌전의 로직을 위로 올리고, 서양문명을 보조언어로 쓸 때,... 일반국민에겐 법을 믿고 따르면 손해 안 본다는 믿음은 박살난다. 정상적인 서양문명 사람들에게는 원불교 백낙청 원불교 박지원조직을 뿌러뜨려서 법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 손해를 안줘야 한다.
 
막스베버는 씨족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씨족마다 각각 다른 원리로 적용하는 한국에서, 아무것도 가능한게 없다. 그런데, 미국 민주당은 미국 공화당에만 멀어지면 긍정하는 분위기다.
 
미국 통화패권 인정은 서방자유진영에 냉전체제 동화나, 미국 백인질서에 세뇌 등등 미국 민주당의 전형적 어법은 아무 상관이 없고, 미국 민주당이 과연 씨족주의에 의한 시스템 왜곡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게 문제다. 미국 사회에서 만나는 아시아사람들은 미국인들이 코어에 있어서 시스템을 자의로 못하는 상황이다. 과연, 일당독재 중국공산당이 세계패권을 쥘 때도 그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