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고위 공직자들은 왜 하나같이 부자일까




 
  • 기자명 이양승
  • 군산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 자유일보 2025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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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승

이양승




한국 정부는 가난한데 그 관료들은 부자다.

최근 임명직 공직자들의 재산 규모를 보면 그렇다.
그들이 공직을 맡았던 나라의 재정 상태는 엉망인데, 개인은 어떻게 그토록 큰 부를 축적했을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번 건 자랑이다.
문제는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다.

속담도 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 아둔한 소리다. 개처럼 벌 필요가 없다.
정승이 되면 큰 돈을 쉽게 벌 수 있다.

기득권 카르텔을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그걸 ‘렌트추구’ 기회로 활용하면 된다. 렌트추구란 경제주체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는 ‘관료 자본’(bureaucratic capital) 덕분이다.

관료 자본이란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해 관료 체제 내 만들어진 비공식적 막강 영향력을 의미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스노우 볼’(snowball)이 된다.
작은 눈덩이가 비탈을 구르며 주변의 눈들을 집어삼키고 불어나 커다란 눈뭉치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인적 자본의 한 형태로 보이지만, 실은 잠재적 인적 자본이 싹트는 것을 막는다.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아예 인적 자본의 싹을 자른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건 정경유착과 관료 자본의 사유화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문제는 한국의 좁은 신뢰 반경이다. 신뢰 반경이란 학연·지연·혈연의 범위 내를 말한다.
저신뢰 사회 한국은 기관·조직을 불문하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물론 개인 간에도 일반화되고 있는 수많은 녹취들이 그 증거다.

이런 나라에서는 신뢰 반경 내 사람들이 중용될 수밖에 없다.
그들 중심으로 이너 서클을 형성, 관료 자본을 동원하면 밑천없이 큰 이윤을 챙길 수 있다.
그게 횡재다.

관료 자본의 외연은 학벌이다. 그러니 유년시절부터 공부에 ‘환장’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총리 후보자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서울대 갯수가 아니라 동문회가 지향하는 한국의 ‘부족화’(部族化)다.

원시시대 부족은 수렵과 채집을 같이하는 공동체였다. 지금은 권력과 이윤을 같이 추구한다.
원시시대엔 부족 구성원 자격이 태생적으로 주어졌지만, 지금은 시험에 의해 획득되는 걸로 바뀌었다.
입시열 사교육, 공교육 황폐화는 부족 구성원 자격을 얻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엘리트 집단일수록 부족주의가 더 심하다.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한국 엘리트의 본질을 부족주의라고 파악했다.

전관예우나 관피아(관료+마피아)는 부족 본능이 기득권 카르텔로 살아남은 경우다.
그 본능은 원시시대보다 더 원시적이다. 이들은 비구성원 약자에 대한 공격을 가차없이 해댄다.
황당한 건, 그런 사례들을 목도하고도 문제 제기 없이 부족주의를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며 또 하나의 부족이 생겨났다. ‘운동권 부족’이다.
그들은 엘리트 관료 부족의 횡포에 맞서 방어적 차원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운동권 부족은 권력을 장악해 스스로 이권 카르텔이 되고 있다.
만약에 현 정부가 정말 진보를 자처한다면, 이 카르텔 해체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다. 오히려 카르텔에 의지하는 것 같다.

한국 보수와 진보는 서로 미워하면서 닮았다. 바로 부족주의다. 부족은 ‘줄’ ‘빽’ ‘끈’을 상징한다.
영화 ‘내부자’에서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연기)가 말한 ‘족보’인 것이다.
이 족보가 없는 서민들만 불쌍하다.

한국의 서민은 돈도 없지만 보호받을 부족 테두리를 찾지 못한다.
때론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이것이 폴 크루그만이 우려한 ‘족벌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기득권 카르텔이다.
우선 관료 자본을 통한 횡재 기회를 줄여야만 한다.
그게 정상적인 자본주의이고, 자유시장 원리에도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