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에도시대의 정치역학 관계를 설명할 때,

막부vs조정 관계에서
줄곧 막부가 우세했다가
조정이 역전한 것을 메이지 유신(1868~, 왕정복고)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히 막부와 조정 일대일 관계에서,
그 사이에 낀 새로운 세력에 대해 주목하고 있음


막부 vs ?? vs 조정
이러한 삼파전으로 에도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

아니 주목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아예 (삼파전이 맞다고)정설이 된 주인공, 

알면 알수록 '와 이 새끼들 뭐지?' 흥미로워지는

섭가(摂家)에 대해 알아보자




0. 섭가란 무엇인가?

섭가는 오(五)섭가를 줄인 말로, 
가마쿠라 시대의 후지와라씨(藤原氏)를 이은 5개 귀족 혈통,
고노에(近衛)
구조(九条)
니조(二条)
이치조(一条)
다카쓰카사(鷹司)
이 5개의 가문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 에도시대 후기 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가문, 
다카쓰카사의 이름을 따로 기억해두면 좋다.


이 섭가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천황을 바로 곁에서 모시는 조정의 관직
관백(関白)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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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fmkorea.com/8621258595)
에서도 설명했다시피,
조정이란 천황과 공가로 구성된 교토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공가는 당상공가, 즉 여러 공가들 중에서도 특히 높은 애들만 의미하는 경우가 많고,

바로 이 섭가 역시 당상공가의 일원으로서
천황의 최측근 역할을 맡았다고 보면 된다.


IMG_0335.jpg [에도시대] 막부vs조정 사이의 3세력? 호레키 사건을 알아보자
"응?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관백이라고 부르잖음?
걔도 섭가 출신인거임?"


맞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관백에 올랐다.
당연히 그의 시대에도 관백은 오직 섭가 출신만 될 수 있다는 전통은 유효했기에,
히데요시는 오섭가 중 고노에 가문의 조카로 들어가는 방법으로 관백에 오르게 되었다.

Toyotomi_Hideyoshi_c1598_Kodai-ji_Temple.png [에도시대] 막부vs조정 사이의 3세력? 호레키 사건을 알아보자
(히데요시: 나, 나도 섭가...? ㅎㅎ)


그게 말이 되나 싶지만,
일본은 유달리 그런 방법만으로 후손이 맞다고 인정해주는 전통이 있다는 것만 이해하고 넘어가보자.



여기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고,
본격적으로 그동안 메이지유신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호레키 사건(1758)'의 전개와 달라진 해석에 대해 알아보자.

(호레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섭가를 반드시 알아야한다.)
1) 조정 = 천황 + 공가
2) (오)섭가 = 공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다섯 가문
3) 관백 등의 최상위 관직은 오직 섭가만 가능



1. 다케노우치 시키부의 등장

조선시대에도 일본에 대한 관심은 아주 많았다.
오늘날처럼
와 진격의 거인! 
와 귀멸의 칼날!
이런 문화적인 호의에 의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임진왜란(1592~)으로 쑥대밭이 된 것에 대한
분노와 경계에 의해서였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본을 이해했을까?

"교토에 가서 출세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데, 막부에서 못하게 한다네. 걔넨 쇼군이 자기들 멋대로 하는 걸 억울해하고 아예 반란까지 일으키려 한다는데?"
-조명채(1700~1764), <봉사일본시문견록>

"교토 조정에 야마자키 안사이 학파들 중에 존나 똑똑한 애들이 있는데, 맨날 자기들을 악비로 비유하는 걸 보니 조만간 뭔 일 낼 듯?"
-홍경해(1725~1759), <수사일록>

"들어보니 막부는 쎄고 조정이 약한 거에 빡쳐있는 애들이 많대. 특히 야마자키 안사이 제자들이 과격하다카더라."
-이익(1681~1763), 《성호사설》 중 <일본충의> 편


그렇다.
당대 조선의 학자들 역시
직접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온 사람들의 보고에 의해
일본은 18세기에도 막부와 조정 간의 대립이 있었고,
막부를 타파하고 조정을 일으키려는 놈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조선국왕과 막부의 쇼군이 동등한 위치였는데,
알고보니 일본엔 쇼군보다 높은 천황이 있었으니

'천황이 정권 되찾으면, 
쇼군과 동등한 우리 주상전하가 천황보다 낮은거임?'
'그럼 쟤네가 권력을 되찾으면 안되는거 아녀?'

하고 따지려고 저런 글들을 썼던 것이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볼드체로 강조되어있는,
어찌나 유명한지 바다를 건너 조선인들도 이름을 알고 있었던
야마자키 안사이(1618~1682)라는 사람이다.


Yamazaki_Ansai.jpg [에도시대] 막부vs조정 사이의 3세력? 호레키 사건을 알아보자
(안사이: '신토'불이ㅎㅎ)

야마자키 안사이에 대해 다룰 내용도 많지만,
아무래도 그는 사상가이고
역사에서 사상은 ㅈㄴ 재미없다는 건 팩트이므로 간략하게만 설명하면,

쉽게 말해
중국의 주자학과 일본의 전통적인 신앙인 신도를 섞은
스이카 신도를 제창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야 우리 신도가 주자학으로도 설명이 되네?'
'신도에 따르면 우리 천황님은 ㅈㄴ 대단한 사람이잖아'
'캬 역시 우리 일본은 천황이 다스리는 대단한 나라'
하고 새로운 인식(국뽕)을 선물해줬다고 보면 된다.

안그래도 에도시대 유학자들이
'중화인 중국 최고, 그 다음으로는 소중화인 조선 최고, 그 다음이 일본'
이딴 식으로 자국을 까내리고 있었으니 벼르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아닌데? 주자학으로 신도 설명되는데? 우리 일본이 중국보다 대단함ㅋ'하고 말해주니
당연히 열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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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역시 갓본ㅋㅋ")


그리고 당연히
'야 너 ㅈㄴ 대단한 사람이래'라고 말해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없으니,

모모조노 천황(1741~1762, 재위가 아니라 생몰 기간이다) 역시 그걸 듣고 좋아하게 된다.


??:  님 ㅈㄴ 대단한 사람인거 앎?

모모조노 천황: 왜?

??:  스이카 신도 배워보셈. 성리학으로도 님 개쩌는 사람이라는게 증명됨ㄷㄷ

모모조노 천황: ㄹㅇ?


그렇게 스이카 신도라는 약(?)을 모모조노 천황에게 먹인 사람이 바로 야마자키 안사이 학파의 후계자, 다케노우치 시키부가 되시겠다.


Sikibu_Takeuchi.jpg [에도시대] 막부vs조정 사이의 3세력? 호레키 사건을 알아보자
(시키부: 천황 최고)


다케노우치 시키부는 본래 평범한 의사 출신이었으나,
어째선지 갑자기 교토로 가서 스이카 신도를 배우고
국뽕에 취해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강의는 조정의 공가들에게까지 전해졌고...


공가: 너 대체 뭐라고 씨부리고 다니는거냐?

시키부: 들어보셈. 스이카 신도에 따르면 천황은 개쩌는 사람임ㄷㄷ

공가: 그게 왜

시키부: 그럼 개쩌는 천황을 모시는 님들도 개쩌는 사람들 아니겠음?ㄷㄷ

공가: (솔깃)


그렇게 시키부는 아예 공가 가문의 가신이 되었고,
자그마치 7~800명에 달하는 제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즉, 당시 공가들은 거의 다 시키부의 말빨에 홀렸다고 보면 됨.


공가는 항상 번갈아가며 천황궁에 지내며 천황을 모실 의무가 있었고,


공가1: 천황님 님 개쩌는 사람이었음ㄷㄷ

모모조노 천황: 그러냐

공가2: 천황님 개쩐다 숭배합니다 GOAT

모모조노 천황: 그런가?

공가3: 세상에 1명의 천황님팬이 남아있다면 그건 나일 것이다 

모모조노 천황: ...


만나는 공가들마다 스이카 신도 이야기를 하니 당연히 천황 본인도 빠져들 수밖에.


Emperor_Momozono.jpg [에도시대] 막부vs조정 사이의 3세력? 호레키 사건을 알아보자

(모모조노 천황: 나 개쩌는 사람이었네...)


그렇게 조정은 거의 대부분이 시키부에게 홀려버리게 되었고,
결국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만다.




2. 강의의 중단과 대대적인 처벌

바로, 어느날 시키부가《일본서기》의 <신대권>을 스이카 신도에 따라 천황에게 강의했는데 이를 섭가에서 문제시 삼았던 것.

아무래도 막부체제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굉장히 위험한 내용이었던 듯하다.


IMG_0335.jpg [에도시대] 막부vs조정 사이의 3세력? 호레키 사건을 알아보자
"ㅇ? 섭가도 공가 아님? 그럼 천황 편 아님? 
근데 왜?"


그거에 대해선 조금 이따 설명해주도록 할테니 일단 넘어가보자.



여하튼 섭가는 이를 막부에 알렸고,
시키부와 그 문하 공가들 27명이 막부에게 처벌당하게 된다.

시키부는 공가는 아니므로 막부가 직접 조지고,
공가는 건드릴 수 없으니 형식상 천황의 명에 의해 처벌이 집행되는 형태로.

그리고 막부가 설명한 처벌 이유는

1. 왜 천황을 홀려서 감히 천하의 일을 도모함?
2. 강의 중단시킨 섭가는 매우 현명한 충신인데 왜 뒷담함?

이 2가지였다.


안그래도 자기 자신을 개쩌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던 모모조노 천황은 굉장히 분노했고.


모모조노 천황: 감히 개쩌는 GOAT인 나를 건드려? 
이렇게 나온다면...



그는 굉장히 무서운 수를 두게 된다.



모모조노 천황: 엄마

황태후: 왜

모모조노 천황: 일본서기는 일본의 근원이잖아요 그걸 막부가 못 읽게 하는게 말이 됨?ㅠㅠ



바로 엄마에게 꼰지르는 것ㄷㄷ(실화다)

그러나 황태후라고 막부의 처벌에 뭐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렇게 사태는 일단락된다.

바로 이 사건을 호레키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호레키인 이유는 걍 당시 연호가 호레키라서)


이를 두고,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일본제국 정부는 호레키 사건을
막부의 부당한 탄압에 조정이 최초로 저항한  
존왕양이 운동의 전조이자 왕정복고의 시발점으로 여겼고,

실제로 메이지 유신 이후 
호레키 사건 당시 처벌받았던 시키부와 공가들을 위인으로 여기고 추증해주게 된다.






그러나 요즘 학계에서는 이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중간에 의문에서 나왔듯,

막부에게 일본서기 신대권 강의를 처음으로 중단시킨 건 바로 섭가였기 때문이다.

초반에 설명한대로 공가의 일원이자
관백을 독점하며 천황을 모시는 그 섭가들 말이다.



지금부터 호레키 사건,
정확히는 시키부의 강의 중단과 처벌 과정을 다시 뜯어보자.


3. 호레키 사건 다시보기
1) 처음 시키부가 공가들을 현혹하는 것을 문제 삼은 건 무가전주였다.
(*무가전주 = 관백과 소사대를 연결하는 관직. 당상공가 2명이 임명된다. 즉 조정 측 사람이다.)
(*소사대 = 교토를 통치하는 막부의 부서. 천황과 막부 사이 교섭도 담당한다)
(즉, 천황과 쇼군 간의 네트워크는
천황 - 관백 - 무가전주  - 소사대 - 로주 - 쇼군
이렇게 연결된다고 보면 된다)


당상공가가 맡는 무가전주가 관백에게 
'이거 좀 위험하지 않음? 소사대에 말해야되는거 아님?'
하고 보고했고,

그 보고를 들은 관백(즉 섭가들)이 막부에 연락해서 
'님들 뭔가뭔가 일어나고 있음ㄷㄷ'하고 전달한 것.


2) 시키부와 공가에 대한 처벌을 주도한 건 섭가였다
모모조노 천황은 시키부와 공가를 처벌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섭가는 무려 천황의 뜻을 묵살하고 처벌을 그대로 집행한다.

오히려 막부가 답장을 주기도 전에 섭가가 먼저 강의를 중단하고 공가들을 연금시키자,
막부에선 '아니 그래도 우리하고 협의는 해야지;;'하고 당황스러움을 표할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3) 바로 막부가 취한 행동도 섭가의 요구에 거의 그대로 응한 것이라는 점.


막부: 시키부 점마 위험한 놈이긴 하네. 처분하겠음

섭가: ㅇㅇ

막부: ? 안가고 뭐함

섭가: ? 그걸로 끝내게?

막부: ??

섭가: 공가들도 조져야지ㅎ


막부 측은 관백이 '이거 문제 있으니 이렇게 처벌해야함'하고 요청한대로 한 것이고,
공가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으나
섭가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공가까지 천황의 이름을 빌려 처벌을 강행하게 된다.




즉, 호레키 사건은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해한대로
'천하를 도모한 조정과 그걸 탄압한 막부'가 아니라,

'천하를 도모한 조정과 그걸 탄압한 섭가'라는 것.




그렇다면 여기서 또다시 같은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 섭가도 공가의 일원인데 왜 조정을 탄압함?"

그리고 바로 그 이유는,

재미있게도 막부가 그렇게 의도한 시스템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도시대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2가지 법에는 <무가제법도>와 <금중병공가제법도>가 있고,

조정 내부의 규율을 규정한 <금중병공가제법도>에서 막부는 섭가들을 매우 우대해주게 된다.

어느 정도나면,
만약 천황이 방계(세습친왕가) 출신이라면
살아있는 천황의 친아버지보다 섭가가 서열이 더 높을 정도로.


실제로 후대의 고카쿠 천황은 방계 출신으로서
자신의 친부가 섭가보다 서열이 낮은 걸 견딜 수 없었고,
그런 고카쿠 천황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섭가 중 
다카쓰카사 가문은 막부의 신뢰에 힘입어
메이지 유신 전까지 혼자서 관백의 절반을 독점하게 된다.


즉, 막부는 일부러 조정 내 상호견제를 위해 
섭가들을 우대해왔고,

그러한 막부의 우대 속에서 특권을 지키고 싶었던 섭가는
막부가 나서기도 전에
천황과 공가들의 수상한 행동을 탄압한 것.

실제로
모모조노 천황의 불만에 섭가는

"막부가 통치하는 건 예전부터 해왔던 일임"
"애초에 가마쿠라 막부의 쇼군부터 천황이 임명해준거임"
"그러니까 막부가 통치한다고 쪽팔린 일은 아님ㅎ"

하고 오히려 천황을 나무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호레키 사건을 이해하는 
요즘 주류학계의 정설되시겠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후에는 오히려 막부가 너무 독단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니
섭가측 그것도 막부가 밀어준 다카쓰카사 가문에서 이번엔 조정에 힘을 실어주게 되고,
(조정과 막부가 균형을 이뤄야 양측 사이에서 영향력이 강해지기 때문)

그렇게 막부가 섭가들까지 처벌하게 되는 안세이의 대옥(1858)으로 이어지며 
조정내 친막부 세력이 힘을 잃자 
아이러니하게도 막부는 손을 쓸 수도 없이 명분에서 크게 밀리기 시작한다.





3줄 요약
1. 호레키 사건은 그동안 막부가 조정을 탄압한 것으로 여겨왔음
2. 근데 사실 막부의 우대를 받은 섭가가 먼저 나선거임. 즉 호레키 사건은 조정의 내부갈등임.
3. 에도시대 정치역학 관계는
조정-섭가-막부 이렇게 삼파전으로 이해하는 게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