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는가의 ‘믿음’의 본질적 문제가 중요한 때다. 히브리서 11장 1절이 그 내용을 제공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바라다’는 곧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인 트친의 각주에 의하면, ‘믿음의 전승, 계승, 기업, 유산’등의 의미라고 한다. 필자는 장로교 통합교단에 속한 기독교신자다. 한국교회사에서 지겨운 WCC/反WCC 논지로 의제화를 하려는 듯 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와 명백히 차원을 달리 하는 교파 교단을 넘어서는, “성서적 원리 자체를 완전히 완벽히 씹어먹는 배도앞”에 있다. 김은구 대표가 反WCC에 속한 교단의 믿음의 전승을 따르며, 이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 이를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 논리로, 필자가 김은구 대표의 비판이 옳기에 들을 이유가 없고, 성서적 원리에 토대된 영어권 기독교인보기에도 긍정적인 경우에 수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차원을 달리하는 ‘성서적 원리 자체를 완전히 씹어먹는 배도 앞’에 다다르고 있다. 민족복음화 운동 믿음의 유산을 믿는다고 할 때, 이를 동학의 후천개벽에 입각하여 교회 지도부가 벗어날 때, 신앙적 동일성을 사수하는게 성경의 예수님을 진리로 고백하는 기독교신자라고 필자는 믿는다.
한국교회 출석 노인중 절대 대다수는 과거에 동학신자였다. 과거에 믿던 믿음으로 슬금슬금 돌아가는 것은, <다른 복음>이다. 사도바울이 ‘다른 복음은 없다’고 얼마나 외쳤나? 지금과 똑같은 부채버블로 폭발할 때에, 지금과 똑같이 자유진영은 나르시시즘으로 분열됐다. 그래서,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1930년대에 나왔고, 지금은 중국 위안화 패권의 세계장악 위기에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신학의 출범에는 신앙적 긍정적인 게 있다고 보나, 또 한국에는 베트남전 이후에 세계교회협의회 내부의 좌파를 부정비판하는 신학 흐름도 수입된 바 있다. 문제는 그렇다. SNS에서 영어권 기독교인 접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해하지만, 신학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어떤 신학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필자의 페이스북은 자주, 종종, 흑인 기독교인의 춤과, 거의 한국의 트로트를 연상시키는 흑인기독교인의 찬양이 올라온다. 알고리즘은 개인 유저의 분석대로 AI가 따라와서, 이런 내용을 필자만 보는게 매우 안타깝다. 이 역시 이 신앙 공동체에서는 정결하다고 논해야 한다.
영남의 시골 노인 정서로 70대 이상인분들이며 학력이 낮은 분들은, “복음통일 담론과 세계관”이 상당수가 거의 비슷하게 간다. 문제는 삼위일체 신앙을 포기하고 조상숭배 신앙의 유불선 동학 세계관에 얹혀서 볼 때 다가오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동학신앙에는 무속신앙이 깔려 있고, 무속신앙은 중국공산당식의 고대 공동체를 향유하는 그런 정치이데올로기 효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70대 중반 이상 저학력 노인들은 대부분 <무속신앙>과 연결된 자아의식과 이에 연결된 행위 연구를 모른다.
이제는 ‘복음통일’담론의 기원을 이해할 거 같다.
민족공산당운동의 신간회 운동이 그 뿌리이며, 남한에서는 남로당과 인민공화국,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연대했던 조만식 세력(김일성에 순교당한 측면에 방점이 아닌)의 입장인 것이다. ‘통일’이 헌법 4조라고 논하는 거 같지만, 실제는 부족연합으로 동학군의 궐기를 의미한다. 삼위일체 신앙을 포기하고, 원불교 동학신앙의 종말론으로서 부족연합 <일원상진리>로 끝나도, 억지로 교횟말 씌워서 일반인 평신도 눈속임한 NCCK자료물들은 아주 많다.
성경의 교회관 대신에, 이렇게 민족유일당(민족공산당)운동으로 가는 조직으로 가게 하는 데, 지역주택조합 사기극 비슷한 어법으로 실제는 건설의사가 없는데 근사한 건설한다는 지주택홍보관 어법처럼 나오는게 반복되고 있다.
민족공산당으로 신간회운동에 줄 선 영남분파가 자유당에 줄 건너타서, 이승만 세력으로 남로당파에 폭력을 했다. 이는 너무 너무 반복됐다.
민주정의당 반공교육에 나왔으되, 지난 30년 김대중 지배체제에서는 은폐된 남로당파의 폭력도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동학신앙으로 자신들의 종족권력을 구사하자는 바탕에서 나왔다. 이 원리를 개신교 외투로 쓰고 가자. 즉, 4.3 항쟁의 지도자도 개신교 목사, 여순사건의 지도자도 개신교 목사, 대구폭동의 지도자도 개신교 목사, 이런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유형으로 들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믿음의 유산이냐...... 삼위일체 성령 하나님의 교회사에서 믿음의 조상을 그리스도를 통해 배우냐?
믿음의 선배냐? ---삼위일체 신앙은 조까는 소리고, 성서적 원리로 틀린 신앙이라도 우리씨족이니까 믿고 배우세.
완전히 가닥이 다르다.
기독교인에게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독교지도자를 기억하는게 상식인데, 복음통일은 조상신을 생각하며 조상신을 이은 영역에서 동학 비슷한 영역으로서 기독교지도자를 보는 관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은구 대표가 비판한 대부분의 신학은 독일 사회민주당, 미국 민주당 배경의 공산혁명을 포기한 사회민주주의 신학을 논한다. 그러나, 원불교 및 동학신앙과 종교혼합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 파괴가 줄을 잇게 된다. 그 차원이 아니다.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론은 성경의 예수님을 통해 자유진영에 미래의 대한민국이 있길 소망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겼다고 필자는 믿는다. 한국에서 이렇다 할 양반귀족님들은 성경의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나? 어떻게든 조상신 찾지?
귀족의 조상신신앙→족보→중국경전→중국공산당식 공산주의 호출.
이 원리가 개신교 성경 해석을 타고 들어온다.
필자는 동묘앞에 ‘사랑방서원’ 서점을 주로 이용한다. 과거에는 종로 5가 대한기독교서회 서점을 주로 이용했는데, 그 서점을 주로 이용한다. 거기에 출간된 성서적 신앙원리 토대의 대부분의 신앙 참고서들을 그 자체로 수용한다.
1968혁명 때 모택동주의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린 원인도, 자유민주주의 기준인 법치주의를 깨물어 먹어버리는 것이 중국경전의 사대부의식으로 있다는 것이, 그 당시의 폭력혁명세력에게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원이 다른 배도, 차원이 다른 하나님 나라 공동체 파괴는 왜 침묵하고, 사소한 영역이 본질인양 싸우나?
최근 20여년 한국의 신학대학이 수입한 신앙 꼭지는, 대부분 배울 가치가 있다. 몰트만의 경우는, 신학으로서 해방신학자로서 명망과 달리, 개인 몰트만이 한국이 자유주의 붕괴해도 돼 하는 개인 속내 본 것에서, 신학자로서 명망 아니라, 개인 몰트만에 대해서 ‘야, 이 개새끼!’ 하고 싶다. 한국에 대한 외신 뉴스 대부분이 한국의 이면세계를 모른다. 독일 사민당 배경의 기독교석학 정도로 제한된 해석이라면, 몰트만도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결국, 서구에서 급진적 신학 욕하기 앞서서, 한국에서 나타나는 차원이 다른 배도, 차원이 다른 하나님 나라 공동체 파괴에 어쩔꺼냐가 문제다.
독일 히틀러 사회는 중산층이나 근로자계급의 일탈이다. 한국은 모든 권력을 가진 동학노인이 그 역할을 한다. 주민증 최고 연령이니 말을 죽어도 안 듣고, 살아온 연륜이 편견으로 꽉 박혀서 안 듣는다. 이들을 후원받고 있으면, 진리가 설 땅이 없다.
이게, 진짜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