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석 평론가·전 KBS 이사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한국 지식사회를 배회하는 유령 셋이 있다. 1980년대부터 좌편향의 꽃이 거대하게 피어났지만, 그걸 키워 온 무시무시한 유령 셋을 필자는 ‘좌파 문화권력 삼인방’으로 지목해 왔다. 구체적으로 문학평론가 백낙청·전 한양대 교수 리영희·소설가 조정래가 그들인데, 10여 년 전에 죽은 리영희의 이름을 최근 들어 거푸 들었다.
 
얼마 전 MBC 사장 선임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그걸 좌우하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권태선의 행적을 들여다보다가 느닷없이 리영희란 존재를 재확인했다. 권태선이 리영희재단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다. 권태선은 좌파 동네의 숨은 실세 중 하나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다시 리영희 이름을 발견한 건 뜻밖에도 전직 대통령 문재인 때문이다.
 
문재인이 자신이 사는 평산마을에 내달 초 곧 서점을 차린다는 소식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 소식을 추적하다가 아니나 다를까 그가 리영희란 유령에 아직도 사로잡혀 산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그는 연초 한겨레와 했던 인터뷰에서 리영희가 1970년대에 썼던 책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을 언급하며 대학 시절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또 한 번 털어놓은 것이다.
 
물론 문재인은 리영희 짝사랑을 전에 고백한 바 있다. 자기 책 ‘운명’에서 두 페이지 분량으로 리영희로부터 받은 의식화 영향을 털어놓았고, 리영희가 암시했던 자유 월남의 패망 소식에 희열을 느꼈다고 고백한 그 악명 높은 대목 말이다. 그런 리영희를 진즉 도마에 올리고 싶었다. 문재인·권태선이 보여 주듯 리영희는 아직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숨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왜 저들이 중요할까. 백낙청·리영희·조정래 등 문화권력 3인방은 지금 좌파 세계의 뿌리이고 자궁이며 숙주(宿主)다. 그들을 원형으로 지금의 막강 좌파세계가 형성됐다. 그럼 왜 지금 리영희를 언급하는가. 그는 국내 종북주의자 제1호에 해당한다. 그래서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 크게 보아 리영희는 두 번 변신했다. 멀쩡히 제도권 기자로 활동하던 중 1960년대 이후 마오이즘 추종자로 출발했던 게 처음이다.
 
당시 그는 적성국가 중공에 대한 정보 공백을 메우려 노력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공산주의 현대중국을 미화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부터 북한과 김일성을 떠받드는 쪽으로 방향을 한 번 더 틀었다. 좌익 본색과 함께 드디어 종북주의자 제1호의 깃발을 든 셈인데 그게 안타깝다. 그때 그가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지식인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던가.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마오쩌둥 사망 이후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노선을 바꾸고, 이후 옛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하는 변화 앞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정상이었다. 당시 그도 멈칫했다. 그때 심경을 한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는데, 그의 생애 가장 겸손하고 진솔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 거대한 역사적 변혁 앞에서 지적 갈등을 겪고 있고, 지적 오류와 단견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이미 객관적 검증으로 부정된 부분(옛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을 지칭)을 사상적 일관성이라는 허위의식으로 고수하려는 것은 지식인다운 태도가 아닙니다.”(한국일보 1991년 6월25일)
 
실제로 당시 경제학계의 원로인 안병직 서울대 교수, 그의 제자 이영훈 교수 등이 얼치기 변혁이론인 마오이즘을 내려놓은 채 학문적 개종을 단행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그때 전향했다. 반면 리영희는 마오이스트에서 종북주의자로 말을 냉큼 갈아탔던 인간이다. 그때 리영희는 사실상 죽었고, 한국 지식사회도 망가졌다. 진리 앞에 겸허해야 할 지식인이 퇴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는 주사파로부터 사상의 은사라고 떠받들어지지만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서는 완전 실패한 존재다. 그 결과 한국 사회가 얻은 것은 우상이고, 결정적으로 잃은 건 이성이었다. 그만의 실패가 아니고 그때 죽었어야 했던 주사파는 지금도 기승을 부리고 있고, 실제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열어 오늘에 이른다.
 
그런 리영희가 죽은 지 10년을 훌쩍 넘겨 권태선과 문재인의 행적과 말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건 한국사회의 비극을 거듭 확인하게 해 준다. 그게 주사파 권력의 종말을 알리는 역설일지 아니면, 좌파 지식권력·문화권력의 권토중래일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한다. 분명한 것은 저들이야말로 역사의 퇴행세력 내지 반동세력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