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문재앙 재산세’를 잊어버린 서울시민은 일차원 인간-
중국역사학은 씨족의 족보지만, 서양역사학은 ‘사회 변화’를 둘러싼 체험의 기록이다. (기독교역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 역사변화에 어떻게 역사했나 하는 신앙 체험 기록)
70년생 내 또래들은 유신체제 막판의 붕괴과정 때에 김대중지지자들이 했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나란히 비교가 될 것이다. 유신체제에서 김대중체제로 지난 30년이 바뀐 모습에 대한 기록은, 그 자체로 ‘역사의 기록’이다. 이재명 정부 독재체제에서 근사한 스타일로 책으로 ‘일베 판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를 쓸만도 하지만, 그렇게 하여 탄압을 자처당하는 지만원식 자살골을 할 의미는 없다고 본다.
유신체제는 인플레이션 시대와 겹쳤다. 세계에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할 때, 저가 상품 수출로 가난의 시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상황과 이어졌다. 저가 상품을 수출하려고, 정부가 기업의 원가 관리에 개입했다. 정상적인 급여 지급을 하면 그 급여를 맞출 수 없다. 인플레이션이 세계가 심했지만, 한국이 더 심했다. “수요 측”-“공급 측” 양쪽에서 문제가 됐을 것임은 일반인도 쉽게 생각가능하다.
그 때 김대중대통령(필자는 모든 대통령에 존칭안함이 생활속에서 기본값이다. 민주당 집권기에 어떤 예의?표시)이 이때 이러한 논리의 발언을 했다.
8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는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했지만, 진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보다 ‘돈 왜 제대로 안 줘!’하는 원망이 자리했다. 운동권은 “돈 왜 제대로 안 줘!”를 말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헤겔을 읽고, 특히 헤겔의 대논리학을 읽고, 그래서 ‘가치론’을 몇 명이나 그랬겠나? 결국 운동권의 95%는 ‘흥부전’에서 ‘흥부’-자기들, 놀부-보수층 이분법으로 돌아섰다. 근로자들에게 돈을 제대로 안 줘야만 가능한 수출지향경제에 대하여, 이에 반대하면 강력한 권위주의 통제가 있었다.
지금의 경제는 어떠한가?
김대중 대통령의 카드대란에 공식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이의 문재앙 확장, 그리고 이재명정부에 이어진다.
부동산 공급측에서는 10배~20배 자기자본 대출이 나타난다. 그래서, 남의 돈으로 건설을 짓는다.
시행사 보증은 시공사, 시공사 보증은 지방자치, 지방자치 보증은 정부. 결국은 건설은 원불교 지배층과 무관한 일반국민에 최종적으로 부담을 전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수요측에서는 가계부채를 동원하여 부동산 매입이 들어간다.
공급측에서 남의 돈(은행돈)으로 건설하고 안되면 국민세금 전가하고, 수요측에서는 국민이 부채를 안고 뛰어들게 했다.
실제 부동산 가치가 아니라 3배 이상 올리니, 수도권 자영업자들은 임대료등과 이에 연결된 기타 비용증가로 다수가 붕괴한다. 뿐만 아니다. 문재앙 재산세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 가치’가 아닌 3배 이상으로 부푸려진 가치가 과표의 기준이 된다. 이는 시장에서 소비 붕괴로 나타난다.
유신경제학의 저가 상품으로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을 기준으로 돈 복사 들어가는 것과, 김대중 경제학에서 수요측과 공급 측 모두에 부채를 동원하여 몇 차례 돌아가면서 돈 복사 들어가는 것은 게임이 안된다. 그러면, 김대중 경제학으로 부풀린 국민소득은 ‘진짜 부’일까?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세계 대공황은 그 자본시장을 뿌러뜨릴 것이다.
아직은 세계가 유동성이 있어보이지만, 하반기 어느 시점에서는 줄줄이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 곡소리가 난다.
물이 빠져야 누가 헤엄치는지 안다는 경제계의 말처럼, 물이 빠지면 이렇게 보인다.
유신체제에서 저임금근로자 전태일이,
김대중체제에서 부채경제에 정부 지자체의 공신력 파는 투자사기 형태로 나타나는 부동산 투자 피해자다.
유신체제는 왕 중심에 줄선 기득권에 상당한 증오가 있다. 필자가 일베에 이렇게 글을 적는 것은 89학번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읽었을 법한 자료를 90년대생도 확인해주길 바라는 측면이 있다. 필자의 시선은 보수측도 아니고 진보측도 아니고, 그 시대 “꼬진대 국문과 비운동권”의 시선이다.
그 기득권 그룹이....
이재명/이완용 현상으로 노론 일당독재로 당파로 선다.
국민의 힘은 정치인들에게 ‘한자’로 잘난체 하기 금지령 내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노론양반들이 노론이라고 자랑한다면, 동전의 양면으로 이분들은 ‘노비의 힘’을 국민의 힘이라고 생각함이 드러난다.
부채버블을 싹다 뿌러뜨리는 것이 대공황이다.
전국민을 동학신앙이 노비들을 전투에 참여시키는 어법으로 시장에 위험을 잔뜩 쥐고 참여하게 하여, 그에 기반하여 성장을 하는 것은, 유신시대에 돈 제대로 안 줬다고 비도덕적이라는 그 때보다, 도덕적인 경제가 맞나?
어쩌면, 두 시대의 지배층은 동일하며 유신시대가 영남 정권이란 생각과 달리, 그 때도 분명히 영호남 엘리트는 합작 영역을 기억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기독교조직은 부동산 부채경제 수혜에 거의 전부가 맛이 갔다. 80년대 후반의 저항적 기독교조직은 한 개도 빠짐없이 전부 타락했다. 국민이 모르면 세상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르시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