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운동自滅이 다가올 경제위기의 요인 중 하나가 되는 이유 조기 대선이 끝나면 보수진영 갱신을 위해 반드시 논의할 주제는 이것.
 
 
교회사 논문은 민족복음화운동1965년 시작됐다고 기록한다.
4.19 이후 5년째 지속되는 데모의 핵심이 유교붕당이며 이것이 망국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 한국교회는 캘빈주의 기독교신앙에 입각한 회개론으로 끊임없이, , 규칙, 규범위에서 놀고 싶다는 원불교(사탄교) 계보의 노론 양반 및 그의 직계존속 가부장적 남성들의 욕망을 억눌렀다.
. ncck 민중신학집단은 여기서, ‘어이구 답답해했다.(성경 본문에서 복음은 유대인에게 무엇이고, 헬라인에게 뭐다 본문에서, 한국의 원불교-사탄교-인들에겐 답답해 속터지는 것이라고 연장해서 볼 수 있다.
. 문익환 목사는 원불교(사탄교)에 깔린 무속신앙으로 계명 해체론(기독교에는 없는 후천개벽 종교심리)를 주장했다.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기자는 전위분자자유민주주의 전사대립구조로, 이렇게 여야 양쪽에서 법 규칙 규범위에서 놀아나는 노론양반들의 구조를 세운다.
. 보수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게 아니라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기자(이분은 동학교단 좌파정치스탠스를 따라가고)를 따라 투항했다.
 
여기서, 핵심적 쟁점이 되는 사항이 이것이다.
 
원불교(사탄교)같은 동학신자들의 한 마을에서 망자 제사를 다 치루는 방식으로, 동학교단 지도부에 개신교가 종속되는게 성경에 타당하느냐 이것이다.
 
진보 예수님은 구약 본문을 보수의 예수님보다 상당히 폭 넓게 인정한다. 삼위일체 사고방식도 다르다. 미국 보수층이 극혐하는 타종교가 민법적이며 유대법적 관계에 있다고 상상한다. , 예수그리스도 진리의 독점성을 불인정하고 상대화하여, 지난 미국 대선 때 미국민주당 대선 연설장에서 지저스 이즈 더 로드!’하는 선언관중이 쫓겨난게 그 예. 그래서, 구약성경이 동시성으로 존재하나, 서방기독교문명이 포용하기 어려운 신앙유형과 민법 관계로 존재한다는 상상을, 유럽사회에서 개신교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이는 별개의 논의로 하자. 어쨌든, 신앙 유형을 초래하는 진보의 예수님 신앙 유형과, 원불교(사탄교)신앙 유형이 동일한게 맞냐 이것이다.
 
유대기독교적 사유에서 신약을 강조하면서 현상학적 관계를 강조하느냐, 구약을 강조하면서 존재론적이며 해석학적 관계를 강조하느냐는 다른 신앙유형으로 나타난다. 어찌됐던 그 관계를 신앙 공동체로 각각 성경의 하나님의 신앙고백으로 나타난다.
 
한국개신교 교단들은 87년 이후 에큐메니칼 국제운동에서 서구에서 근사한 신앙고백들은 다 카피+복사붙임 했다. 그리고는 실제로 하는 것은 원불교’(사탄교)중심의 법 위의 존재로 돌아가는 다른 복음아니냐는게 본인의 문제제기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심플하게 문제제기한다.
 
한국은 양반사회였다.
양반의 다수파이며 패권자는 노론이다.
. 노론은 권력중심적으로 바라보며 파벌과 씨족별로 각각 너는 너대로-나는 나대로불통을 즐겼다.
노론에서 다른 사람으로 본질적으로 인지구조가 바뀌는 형태로서, <회개행위>가 없다면, 복음준행은 노론 후손에서는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뛰는 문제가 아닌가?
 
 
결국 복음과 동학신앙의 잡탕밥이 돼서,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게 아니라, 우리는 100주인 1000주인을 원불교(사탄교) 일원상진리로 섬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지언정, .... 그래서, 전라도 사대부는 그게 다 돼!라고 여길 지언정, 그게 시점이 바뀌는 일반적인 서양인들에겐, 또 양반후손 아닌 일반국민에겐 <한국의 동학노인은 미친거 아이가?>라는 답변을 받는다.
 
이재명의 화천대유도 로직이 똑같다. 서양법과 중국사상을 아우르는 이재명이라지만, 실제로는 <쓱싹 지향적>으로 나타난다.
 
미국 사상가 10명 이상과 맞먹는 한국의 너무 징그럽게 똑똑한 원불교 지식인들은 알면서 그러고, 일베정게에서 흔하게 겪는 중졸 이하 동학노인은 모르면서 그러는 요인이 있다.
 
앤터니 기든스 [3의 길] 방한 때 김대중 대통령이 보였던(이낙연씨가 김문수를 지지한 것에 대해서, 대응 차원의 존칭일 뿐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대통령은 그냥 내 삶에서 방해만 안하면 다행이야. 중립이다) 문제와 동일하다.
 
앤터니 기든스가 시민공론장 관계로 드러내는 몫을 김대중 대통령은 모두 자기 머릿속 안에서 성리학적 혹은 동학신앙적 태극이론으로 퉁쳐 버린다.
 
자유당 기득권자~유신기득권자~김대중세력에 줄 서서 얻은 기득권 연장. 여기에서 양반가문 족보사 안에 성경의 성령 하나님 문제가 있느냐 문제다.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기자가 쓰는 거의 대부분의 전문용어는 자의적으로 전라도 종족종교에 대충 덧붙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서울대학이나 꼬진대학이나 학적 진리에서는, 동일한 대상을 동일하게 쓰는 통일성이 있다.
 
원불교(사탄교)계열의 노론후예는 바른 교의 중심의 문제나, 학적 진리 문제로 지성인 상호간에 통함의 문제를 모른다.
 
본질적인 문제를 주장한다.
 
한국교회 지도부가 잘 들었으면 한다.
 
윤석열 탄핵 때에 한국에서는 원불교(사탄교)종족주의로 왜곡된 것이 나왔다.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전분야에서 경상도종족주의이든, 원불교(사탄교) 호남종족주의이든 자의적이다.
 
교회 공동체의 존재로서 성령교제라고 함의 기본은 결국은 바른 교의의 존속이다. , 이에 대한 일탈에 대한 권징이 필요하다. (이 작용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트럼프의 관세 불가피를 이해한다)
 
<유신독재처럼 전체주의로 의사소통 안하고, 의사소통이란 것을 좌우지간 한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 규칙, 규범을 세워야 한다. 성경 표현으로는 무너진 제단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원불교(사탄교)계열의 노론은, 제단 세우면서 향벽 설위가 되는 꼴을 못 본다.
 
지난 30여년간 계속 일관된게 전라도 유교 혹은 동학신앙으로 中庸을 판정하되, 시장경제의 수요-공급 균형점을 외면했다. 동학신앙 지배자 귀족연합 1당독재의 주관적 만족이 돌진한다. 군사정권 1인독재에 줄선 귀족연합폭주에서, 같은 세계관에서 기득권자 숫자만 엽기적으로 늘었다.
 
이 글을 적게 된 계기가 이점이다.
 
법 위에 원불교(사탄교)자아관을 놓는 것은, 민족복음화운동 때에 내내 금기였다. 자유당에서 제2공화국의 법치 혼란 사회로 돌아감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의 다시감으로 금기였다. 그런데, 보수기독교가 신앙 변질돼서 동학교단 지배권에 투항한쪽이 생겼다.
 
기독교신앙 제사장이 신앙 공동체에 중요함을 이해하는 이들은, 동시에 인문학에서 학문공동체의 개념정확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기자는 자신들의 박정희 책장사 위해서, 보수우파 영역에 인문학에 잔인하게 씨를 말렸다.
 
양반가문은 서양학문의 투명성을 모두 중국경전으로 의도적으로 오독하고 이단을 만들고, 그리고 그에 연결된 평민들은 더 엽기적으로 원칙에 일탈한다. 그리고, 남편이 자식과 똑같이 군다면서 남편을 자식으로 비유하는 어느 예능처럼, 한국사회에 귀족과 어르신들이 민주당 떼쟁이와 같이 군다고 같은 평가가 될 수 있다.
 
조상숭배 종교- 씨족 중심의 신분노예제
기독교문명 종교 , 규칙, 규범 중심의 수평적 신뢰관계.
한국의 문제는 기독교문명 한다면서 조상숭배 종교 정주행. --그 표현 외관을 믿은 미국 및 자유진영, 그리고 한국국민에 원불교 지도층은 민형사상 사기죄가 형성된다.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다음이다.
 
붕당별로 각각 다른 우주다.
 
대차대조표로 한국이 하나의 교회공동체로서 공동선(건전재정)을 위한 상호협력.... 은 원불교(사탄교)기반의 무속신앙 내 민족영웅신화 안에는 없다.
 
필자는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 노선 따라서 이승만 동상이 아니라, 자유진영의 법치, 시장경제,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등에 모두 기독교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게 이승만 노선이라고 믿는다. 이승만 동상은 이승만 노선이 아니라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노선이다.
 
한국교회는 신학박사급 수만명 고학력자 기르고, 어린세대 고학력자는 노인들의 어리광을 품을 의무가 있다.
 
한국사회는 인문학 고학력자 기르고, 어린세대 고학력자는 노인들의 어리광을 품을 의무가 있다.
 
필자는 전두환 노태우 중심으로 유교씨족을 구사하는 것은 무관심하다. 그 무렵에 한국교회는 변형윤 박현채 등 농민신앙에 경제학을 씌우는게 말도 안된다고 비판했었다. 지금은 아무도 안한다. 영남의 한 지자체장이 변형윤 노선으로 어떻게 이야기한다.
 
전라도 유교 특유의 유교명분론으로 공적 신호를 표현하고, 이를 특정인끼리 통정행위로 안다면 이는 모두 사기행위. 그러나, 씨족사회의 親親원리로는 아니라고 자기들끼리 말할 수 있다.
 
김성칠의 역사앞에서란 책은 북한 인민군이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와서 연구성과를 개무시하는 것의 경악이 나왔다. 일베정게에서 중졸 이하의 일베노인들이 꾸준히 원불교(사탄교)식 중용으로 품어야 한다고 바라보는 미치광이 어법을 본다.
 
여기서, 이렇게 중졸 노인들이 계속 50대 이하 고학력자 가스라이팅하며 아무것도 안하고 책임전가하는 사회가 기독교신앙에 배척되는 이유가 이렇다.
 
복음진리 자기 책임이 개혁신앙.
그 연장선에서 법 제도 장치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조선시대로 이 라인에 줄섰어요 이게 기독교가 아니라, 신앙원칙의 확장인 경제학과 법학의 실천이 맞다.
 
그런데, 자멸했다.
 
무한대로 혼란 유발하되 이기는 쪽에 붙는 그런 상태에서, 일반인들과 미국은 이 지겨운 굿판의 끝은 경제위기임을 안다.
 
성령에 조명된 이성.... 즉 복음주의 교단의 신론, 계시론 조직신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런 서양철학사가 있다면, 동시에 진보의 예수님 신앙을 서술하는 신론, 계시론 조직신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서양철학사가 있다.
 
중졸 이하의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노인들에게는 사회에서 쓰임받고자 30여년 준비한 엑스세대 보수주의자는 개차반이다. 눈앞에 사람들의 권리도 보장안하면서 북한인권 논함은 속에서 마음깊은 곳에서 치밀어오는 욕설이 안 나오기 어렵다.
 
핵심요지를 밝히자.
 
1) 유신시대 옵션인 권위주의 독재로 강제의사소통은 안된다.
2) 지성인들이 상호 경쟁구조로 컨센을 형성해야 한다.
3) 그러나, 현실은 원불교 (사탄교)중졸 이하 노인들 비위맞추는 구조를, 고학력자 불러서 포장해주는 구조다.
 
민주화체제의 신뢰의 팽창은 결국 민족복음화운동의 복음준행의 사회움직임이었고, 작금의 모든 문제는 원불교(사탄교)로 돌아가려는 개신교 및 가톨릭 소속의 노인들의 신앙 파탄의 문제다.
 
서로 사람마다 모두 개념을 달리 쓴다. 의사소통의 불통이 끝판왕이다. 중졸 이하 동학노인에게만 안 보인다. 안보이는 현실을 보게 해서 불편하다고 막 뭐라 한다. 이런 생각은 국민의 생각이 아니다.
 
교회 조직에서 목회자의 중요성처럼일반인들이 성경공부가 전문교육자에 게임이 되나?
 
전문학력 인문사회학 인사의 중요성도 중요하다.
 
, 권력을 몰아주면 특정인의 주관이 지배할까 경쟁구조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원불교 중졸 이하 동학노인을 외면한다는 30년 넘는 칭얼거림.
 
그냥, 경제위기로 다 끝나는게 맞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