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 점령해가던 경상도가 홀라당 고려로 넘어가게 되었고 옛백제의 중심지이자 곡창지대였던 충청도도 고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호남평야가 존재하지 않아서 충청도의 평야면적이 전라도보다 넓었다고 한다. 호남평야는 밀물때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었다고 한다.
결국 영토면적, 생산력, 군사력 모든 면에서 고려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기에 성격이 불같았던 후백제 견훤왕은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 역시 신라였다. 고려에게 빼앗긴 경상도 지역 영향력을 되찾아오겠다는 명분으로 서기 933년 장남 견신검에게 최정예 갑사(갑병) 수천명을 주어 서라벌을 직공하게 하였다.

당시 신라는 군사력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다. 그나마 남아있던 군사적 기반(훈련소 및 병기공장)을 927년 견훤왕이 서라벌을 점령했을때 모두 파괴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견신검의 후백제군이 서라벌 근처의 혜산성(槥山城), 아불진(阿弗鎭) 등지에 이르러 사람과 재물을 약탈한다고 하니 고려의 태조 왕건이 유금필에게 군사를 이끌고 서라벌로 가서 신라를 구원하도록 하였다.

당시 유금필은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이 되어 의성부(경북 의성군)를 지키고 있었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침략을 미리 예견했던 것이다.
유금필은 북방에서 끌고온 정예기병 80기를 이끌고 남하하여 경주 근처의 사탄(沙灘) 이라는 곳에서 후백제군과 맞닥뜨렸다.

당시 후백제의 태자 신검은 수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있었음에도 유금필이 이끄는 80기의 기병을 보고 겁을 먹고 줄행랑을 쳤다. 그만큼 유금필이 이끄는 북방기병이 무서웠던 것이다. 결국 사탄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후백제군을 물리친 후 유금필군이 서라벌에 입성하자 경애왕 시해의 악몽을 똑똑히 기억하던 서라벌 사람들이 성 밖까지 나와 유금필을 눈물로 영접하고 절을 했다고 한다. "뜻밖에 오늘 대광을 뵈옵게 되었습니다. 대광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백제군들에게 살육당했을 것입니다."
후백제의 태자 신검은 전공을 세우기 위해 유금필군을 다시 공격하려고 하였다.

결국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은 유금필군이 의성부로 돌아가는 길에 자도(子道)라는 곳에서 기습공격을 가하지만 유금필군은 후백제군을 가볍게 박살내고 금달과 환궁 등 후백제의 고위 지휘관 7명을 생포했다고 한다.
- 934년 운주성 전투
유금필이 이끄는 기병 80기에 의해 서라벌 공략 시도가 좌절되자, 이듬해 견훤왕이 노구의 몸을 이끌고 운주성(충남 홍성군) 공략에 나섰다. 충청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이에 고려의 태조 왕건은 대군을 이끌고 남진하여 운주성 전투를 지휘하였다. 후삼국 통일 쟁탈전에서 잡은 우세의 쐐기를 박기 위해서였다.

전투가 벌어지자 고려군의 군세와 위세가 대단하여 후백제군이 상대가 되지 못했다. 특히 유금필의 기병대가 기습을 가해 후백제군이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전의를 상실한 후백제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후백제는 견훤왕이 자랑하던 경기병 5천의 절반 이상인 3천을 잃었고, 동시에 용장 상달과 최필, 군의 훈겸, 술사 종훈이 포로로 잡히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견훤왕은 태조 왕건에게 화친을 청하고 철수하였다.
이후 전의를 상실한 후백제는 후계자 자리로 인해 내분까지 일어나게 된다.
당시 고려는 한반도(삼한)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후백제와의 남쪽전선 외에도 평양 이북으로 북진하고 있었다. 고려군의 위세에 북방의 여진족들이 설설 기기 시작했으며, 거란(요나라)도 위협을 느끼고 화친을 청하며 선물을 보내왔다.

게다가 서기 926년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당하자 발해의 왕족 대광현(大光顯)이 20만명에 달하는 발해유민들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하였다.

이때문에 고려의 인적 스펙트럼은 후백제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넓었다. 인재(人才)의 양과 질에서 후백제를 압도했다. 특히 태조 왕건은 상인집안 출신으로 개방성과 실용성을 가지고 있어서 지역과 신분에 관계없이 실력있는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고려의 국력은 강성해질 수밖에 없었다.
운주성 전투 2년 후인 서기 936년 고려의 태조 왕건은 9만 대군(기병 5만 기, 보병 4만 명)을 동원하여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삼국 통일을 완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