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분의 민주화신화처럼 ‘양반연합’ 세금독식 프로그램처럼-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나타나기 이전에 한국은 어땠나?
“장남에 제사권=유교의 남아선호사상”, 여기에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신약성경의 액면그대로 기술을 원하는데, 남자 선호로 여성차별이 주어졌다.
미국 복음주의는 교회법 제사장 그룹에 대한 도전으로 ‘진보의 예수님 신앙’을 비난하고, 그 무렵에 영남의 남아 선호 사상이 붕괴된다고 남성인권이 일어났다.
과거 군사정권 때는 남성의 임금에 비해서 여성에는 형편없이 주는 게 관행화됐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민 남성은 혼자벌어서는 가정을 이끌 수 없는 지경에 달했다. 둘이 같이 벌면 과거보다는 소비가 낫지만, 혼자벌면 과거보다 소비력은 계속 낮아졌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는게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시작될 때까지도 ‘나쁜 의미’의 <오직 성경>(즉, 후진국 대다수처럼,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 참고서가 없어서 오직 성경)이었던 시대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초창기 스피커들이 요즘 봐도 미녀급에 속한다는 사실에 크게 도움 받았다. 소설가 공지영씨의 직계 선배는 소설가 이경자씨겠지만, 그렇게 페미니즘이 뜨지 않았다. 소설가 공지영씨나 최영미 시인은 남들이 바라볼 만한 스피커였다. 문제는 딱 거기서 멈추어졌다. 이 분들은 모두 할머니가 됐다.
필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필자가 20대 때 한국의 이름난 한학자분께서, 젊은 여성에 대하여 매우 인격적 대접은 하지만, 말은 일베식 정서(요즘 한걸레 취향은 여성혐오로 읽는)가 와닿는다. 90년대에 이미 70대 중반을 넘긴 한학자께서 여성 혐오를 하면 뭘 하겠나? 모쏠아다로 일베에서도 랭킹 1위를 지키는 차원에서, 여성과 생활관계가 없는 데 페미니스트요 하는게 웃기는 모습일 것이다.
필자는 백낙청계 페미니스트 이론수입업자를 통해서 대학 때 반복에 반복으로 여성학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여성계에 오야붕이 누구이고, 그리고 어떻게 권력지도가 있는지 알고 있으나, 거론하지 않는다. 보수진영에서 “이승만 이용사업회” “박정희 이용사업회”같은 느낌이다.
필자는 헬쓰장에서 JTBC 이혼숙려캠프를 자주 본다. 헬쓰장 러닝기구에 붙은 케이블티브이에서 ‘이혼숙려캠프’나 ‘한블리’보거나 안하면 ‘엠스플 하이라이트’를 본다. 한국에 페미니스트 스피커가 존재한다면, 당연히 논할 만한 내용이 많아도 너무 많다.
90년대 페미니즘은 영남 유교 권위주의와 그 피해자로서 여성을 논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구도인데, ‘원불교’(사탄교)에 붙은 1차원적 무속신앙 레퍼토리로 남자들이 ‘한풀이’ 모드로 가정에서 동반자역할을 전혀 못하는 가정이 계속 나온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한마디로 말하면, ‘신학대’에서 여성으로 신학교수로 정년 맞은 분들이 “여성학 수업”에서 말하는 한국 여성계의 잇권 지도를 깨고, 원래 페미니즘은 진보의 예수님 신앙 안에서만 이해되는 것이었어! 라고 논할 수 있을까?
보수진영은 민주정의당 때 그 낡은 해석을 신주단지처럼 유지하는 노장층이 있다. 그 해석을 유지하고 형태화시켜서 후손에 길들이는 조상숭배 신앙의 밥줄 테크닉을 유지한다. 여성계도 이런 레퍼토리로 꽉 조여 있는 것으로 본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필자는 90년대에 여성학 수업 듣고, 2000년대 중반까지 따라잡은 게 공부의 전부다. 여성계에 밥줄이나 잇권 이런게 없다.
한국 페미니즘은 진보신학의 예수님 신앙으로 해설될 것을, 영웅 신화의 부록편인 여성영웅신화(대감마님 신성화)로 확장됐다. 대감마님-몸종의 권력화 문제로 나타나고, 말은 ‘진보’라지만 서양 진보사상과는 거리가 먼 ‘원불교’(사탄교)종교정치 프로그램으로 이미 변질됐다.
여성의 아랫도리를 찢는 출마자와, 여성 아랫도리에 뭘 꽂고 싶은 출마자의 아들, 이 정당이 내보이는 정책에서 그야말로 잘 따라간다면, <대감마님 이데올로기>의 원색적 작동이다.
미국 민주당 페미니스트와 정면 대질심문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 페미니즘의 뿌리부터 이단 현상이 있다.
동학가문이 고종황제에 충성하여 일제 타도하면 감투준다는 믿음은, 소련에 의존하여 줄 서면서 그 연장선으로 잇권을 바라보는 차원으로 소련의 여성주의로 이어졌다. 일베 20대 남자의 여성가족부 비토심리는 원래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세금따먹기 권력기구에 몸종 줄세우기 어법의 권력화가 국민에 빚어지는 <자의적 차별>의 현상 때문이다.
유신시대에 국가주의로 1인 권력자에 줄 서면 관을 이용하는 기득권자가 된다는 가치관은, 김대중체제에서는 일제 강점기 공산가문 씨족연합에 줄서면 관을 이용하는 기득권자가 된다는 가치관으로 바뀌었다.
군사정권은 국가중심의 도구주의라고 논했던 부분이, 딱 당골무당으로 여성영역에서 당골 굿하는 그런 세금 따먹기 창구로 변질된 게 한국의 페미니즘이다.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모든 근대성”은 “다시 생각하기”다.
군사정권을 저항하는 김대중지지자분들은 세금 도둑으로서 국가주의를 이야기했었다. 지금은 남북문제로 종족권력을 크게세우고 여기에 줄 세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유신시대에 1인권력에 깨뜨리는 차원의 발언을 회피했듯이, 지금은 원불교(사탄교)중심의 공산씨족의 일반국민 약탈관계를 드러냄을 회피한다.
서양의 미국 민주당 성향의 진보세력과, 한국의 자칭 진보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 대선토론에서 <수준!>을 생각하게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명백히 틀린 발언을 하는 데 선배라고 그것을 따라간다.
필자는 성경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 가정 만들기가, 곧 한국에서 구현되는 페미니즘이라고 믿는다.
군사정권은 국정교육 중심에 세뇌된 이들에 <다시 쓰기> <다시 생각하기>가 어려움을 느꼈다면, 지금은 씨족주의에 세뇌된 이들에 <다시 쓰기> <다시 생각하기>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필자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모쏠 아다로 70년생인데, 필자의 눈에는 90년대생 아이 엄마를 따라다니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본다. 이분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이 잘 보호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차원으로 정년을 맞이한 여성신학자들이, ‘새로 쓰기’를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는 고인물들이 상상초월하게 안 나가는 것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 국정교육과는 또다른 질곡. 씨족주의로 나타나서 아무리 좋은 성과도 너는 떠들어라. 이 분위기다.
여성에게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통해서 하나님은 성경대로 역사하실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처럼 여성에게도 예수님은 성경대로 다시 부활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90년대는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성문인의 “예쁨”이 승부수였다. 지금도 이 수준이면 세계에 부끄러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