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유발형 경제성장의 절벽에서 ‘대출’을 외친 이재명
-‘빚’ 안 쓰면 바보에서, ‘빚’=국채보상운동으로 돌아간다면?-
 
 

기독교인은 지금 이 말을 못 알아들으면 안된다.
 
시장경제의 바탕 내러티브는 성경이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근로를 통해서 일해야 먹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속신앙에는 ‘근로’(부역)을 회피하려는 다양한 하층민 심리가 담겨 있다. 물론, 누구나 이런 일은 회피하고 싶을 수 있다.
 
군사정권의 유교자본주의 때는 영남유교에 표현만 경제용어 쓰고, 유신경제학이다. 김대중체제는 원불교(사탄교) 기반의 무속신앙에 경제용어쓰고 있다.
 
유신체제는 권위주의에 숨막힌다는 기성세대와 매스미디어의 서로 다른 길은 기억하는 한에서 최소 10년이고,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학에 대한 근본적, 근원적 의구심은 이명박 정부때이니 몇 년째인가? 물론, 이재명의 발언은 노무현 정부 때에 최용식이란 경제유튜버가 자신의 의도로 대출 땡겨서 국민소득 펌프질 시킨 것은 잘했다고 했다. 그 어법의 연장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노무현 경제학은 김대중의 카드대란의 부동산 확장판이라고 정리한다.
 
미국은 반성한다.
 
세계경제사에서 그 어느 나라도 ‘대출 지향형 경제성장’으로 이렇게 이룬 나라가 없다.
 
원불교 귀족들은 친미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미국을 비난하면서, 정부주도의 미래세대 부담안기는, 한국은 동학사상 주도의 미래세대의 부담안기로, 양적완화로 돈 찍어내기를 가계부채를 통해서 주도하는 국가가 됐다.
 
예언가가 아니라도, 예언이 가능할 것이다.
 
미국의 주택시장 뻥 터지고,
 
미국 주식시장은 반띵 되고,
 
미국의 금융에는 망할 업체 망하고, 큰 놈은 공적자금으로 살리겠고, 이게 세계를 휘돌며 세계 각국의 자본시장을 뻥뻥뻥 터뜨릴 것이다.
 
여기서, 미중 양갈래 타기의 한국포지션은 과연 한국이 발행하는 ‘국채’에 “채무불이행”(우리 쪼아대지마라, 수틀리면 브릭스 꽁무늬간다) 없다라는 말로 인식될 수 있을까?
 
대출 지향형 성장 미국에서, 모든 생산품을 전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하는 미국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대출지향형 성장 안하겠다는 의미다.
 
즉, 성서적 로직의 사회윤리와 경제윤리만 통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본시장 반띵화를 예상한다.
 
한국은 어떠할까?
 
부채버블이 안 낀 수도권 자본시장 가격은 누구나 잘 안다. 서울 강북지역 기준으로 평당 700-800만원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때의 상식이었는데, 이게 한번에 1500만원으로 재 계산됐다. 지금 현재 강북 부동산 가격이 얼마인가?
 
대출지향형 성장으로 운영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본계정 붕괴로 인해서 대출에 찡겨서 망할 것이다.
 
자본시장이 붕괴된다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공적자금으로 국가부채를 산더미처럼 쌓겠다는 게 아니다.
 
원불교(사탄교)인들의 조선조식 당파싸움에 젖어서 허송세월하고, 유신체제 독재 해법이 아닌 어법으로 이를 처리하는게 어려운게 무서운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보수의 예수님 신앙에 기초된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 까지, 진보의 예수님 신앙에 기초된 케인즈 이론등으로 설명하면서, 김대중 경제학에 깔린 무속신앙 발 지역 토호들 기득권 어법이 틀렸다고 말할 준비가 됐나?
 
동시에, 일본 부동산 붕괴 선례를 지켜보면, 자기자본 절반과 부채 절반으로 집을 산 강북의 서민들은 대부분 망할 것이다. 이분들은 정부만을 믿은 죄밖에 없다. 이재명은 미국경제유튜브는 보는지? 그냥, 정치인만 맹목적으로 믿은 죄밖에 없다. 물론, 행위는 원불교로 하는 귀족들은 이때만 시장경제 자기책임원리를 들이댈 것이다. 망하는 납세자 문제는 심각하다.
 
김대중경제학의 ‘대출 지향적 성장’.... 친미 친미 외치면서 뒤통수 깔 준비를 하면서, 우리도 미국처럼 대출이빠이 가능?
 
그런데, 미국이 현타 들고 더 이상 못가, 하고 룰을 다시 시장경제 본래의 성서적 룰로 바꾼다.
 
세계 자유진영이 전부 룰을 바꾸고, 대출 지향적 성장이 말이 되니? 하고 입을 모을 준비가 됐다.
 
지금 정치권은 중국식 노예제 근거로 일반국민의 부채로 만든 자본시장거품을 <진짜 부>로 이를 해하려는 외국의 음모로 보는 듯 하다. 이재명은 그것을 넘어서 ‘대출지향형 성장’으로 계속 가려는 듯 하다.
 
한국교회에서 지성의 언어로 업그레이드 되지 않고, 유신시대 한국교회의 이면의 언어가 다시 부활하는 게 씁쓸하다. 거듭 밝히지만, 필자는 꼬진대 국문과 출신이다. 필자가 본 모든 정보는 한글 정보다.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유명대학 출신 지성인 많다.
 
유신시대는 영남유교와 원래 경제학의 갭으로 지금 노인들(90년대 기성세대)은 분통터져 했다.
 
김대중체제 지난 30년은 천도교와 원불교(사탄교)에 깔린 무속신앙 기반 언어와 원래 경제학의 갭으로, 엑스세대 보수주의자들은 지난 30년 분통터져 했다.
 
김문수 캠프의 경제관이 괜찮다는 게 아니다. 김영삼 정권 이후 보수정당도 늘 똑같은 말. 이재명이 김대중 논리 확장한 노무현 이래의 어법을 무한반복하듯 똑같다.
 
무한반복의 이면. 권력을 쥔 특정층이 우리 안 물러나. 이것이다.
 
세계는 버블 붕괴가 되고, 그 이후에 시장경제에 깔린 본래의 성서적 로직이 살아난다.
 
복음선교의 영역도 아니고, ..... 물론 사회선교의 영역도 아니다. 한국교회 사이즈라면 당연히 이런 지성언어에 기독교인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