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이후 30여년간 존속된 인문사회학 생태계가 버블 붕괴와 함께 처참하게 망하게 되는 이유 - ‘민주화세력의 습관적 거짓말을 보여준 이재명 발언.
 
 

필자는 서울 광진구 사는 70년생이다. 교보문고가 사업을 시작할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넓고 넓은 서점터에 책은 없어서, 여기도 삼중당 문고, 저기도 삼중당 문고, 가도 가도 삼중당 문고였다. 필자와 윤희숙 전 의원은 동갑이다. 윤희숙씨는 빠른 70년생인지 88학번이고, 707월생(음력 6)인 필자는 89학번이다. 대부분의 서양고대사상은 김대중 정부 이후에 번역됐다. 따라서 경제이론의 사상적 배경은 필자보다 조금 윗연배는 당연히 몰랐고, 모르는게 당연했다.
 
필자는 풍문으로만 듣던 영어권 서양 책과 그것이 번역돼 나오는 것의 수혜를 겪었다. 필자는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은 이 책이 번역되는 게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여기면서, 무조건 읽었다. 본회퍼 책도 마찬가지다. 아주 긴 시간동안 번역이 안되고 풍문으로만 거론됐다. 어느 외국인은 한국인은 영어 몰라도 돼라고 이야기했다. 필자는 89학번 꼬진대학 국문과 출신이다. 70년생의 89학번 대입 당시에 백분위로 1~3%가 인재라고 여겨지는데, 대학 입학 성적은 15%-16%였다. 필자는 번역이 안된 원서를 두 번 사보았다. 두 번 다 읽지 못하고 포기했다. 순수한 한글 독서문화로서 미국 경제유튜브를 구글 번역지원 누르고 무난하게 이해한다고 보면, 어느 외국인이 한국인은 영어 몰라도 돼! 하는 것은 과장은 있더라도 무리한 발언이란 판단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쌓여온 모든 펀더멘탈은 부서지고 있다. 한국인이 영어를 안 배워도 외국지식을 한글로 수용가능한 시대는 곧 끝날 수 있다.
 
필자는 김대중 정부 때 지방자치 확대하려 할 때, 어린이회관 무지개도서관 및 정독도서관 단골 애용자로서 도서관 확대를 제언했었다. 그 이후에 서울/경기 지역에 도서관 문화는 가득 찼다. 그러나, 지금 도서관 문화는 점점 70년대 부잣집의 읽지도 않는 데 쌓아두는 허장성세 문화와 같다.
 
부르스 커밍스는 친북좌파이자 남로당 파를 위했지만, 그 책의 서두에는 여느 한국인 못지 않은 성찰의 힘을 보여준다. 한국사회는 200년전 사회에 비해서 달라진게 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국학책에도 나타난 조상숭배 문화의 악습이다.
 
필자는 윤석열씨의 비상계엄을 내란죄로 판단하는 것은 원불교’(사탄교) 호남종족주의 판결이며, 서양법 판결이 아니라고 본다. , 미국 공화당이 의문하듯 국가긴급권을 죄악시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윤석열씨를 비상계엄을 실시하고 유튜버에 의견을 물을 만큼, 대통령실 공무원들이 국민이 믿어볼만한 지성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동시에, 정말 보수유권자에게도 경악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오랫동안 있고 있었던 유신시대 기득권자들의 양반귀족 행위의 복원이다.
 
국힘은 이승만 박정희 조상신 숭배의 붕당 집단, 민주당은 원불교(사탄교)중심의 일당독재로 일제 강점기 조선공산당 중심의 붕당 집단으로 구사하게 되는 순간, 군사정권 유신체제 못지 않게 <아부로 뭉쳐진 가짜 지식인 풍년>을 맞게 된다.
 
유신체제는 공권력 남용을 둘러싼 ‘6.25 참전용사하나회기득권자와 이에 연결된 조선전기 문화의 소환이었다. 이렇게 씨족 습속을 소환하여, 공권력 남용을 정당화하는 속에서 이성적 합리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대중체제는 노론독재와 조선공산당 및 남로당으로 이어지는 기득권자와 이에 연결된 조선후기 및 일제 강점기 문화 소환이다.
 
한국이 인문사회학 생태계가 안 부서지고 존재한다면, 훗날 반드시 해보면 좋은 연구 자료물이 있다. 지금 정치유튜버들이 누구 사람 써서 자료수집 모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나, 투자 대비 바로 즉흥적 결과물을 얻으려 하기에 안한다.
 
유신체제의 1인 권력 미화하며 진리를 호도했던 어용지식인의 숫자보다, 지금 원불교(사탄교)주도의 1당독재 권력을 미화하며 진리를 호도하는 어용지식인의 숫자가 월등히 더 많다. 파이가 더 커지고 잇권이 더 많으니, 창녀처럼 내 아랫도리를 가져주세요, 하는 賣文업자 숫자가 월등히 늘었다.
 
월간조선 사쿠라 조갑제기자와 광주일고 조선일보 대장 김대중 주필의 조선일보 선배기자인 이규태 논설위원의 이규태 코너는 샤머니즘의 문제를 이렇게 비판했다. , 그거요, 일도 아닙니다. 바로 변신. 바로 변신.
 
이재명이 남미를 비판할 때는 서방기독교 포지션을 갖는다.
 
그리고 중국을 미화하며 셰셰할 때는 코민테른 연결됐던 호남동학파 전통을 이어간다.
 
동학신앙 신자들은
 
원관념=조상신에 대하여
 
보조관념으로 무한히 변주곡을 한다.
 
한국의 언론은 브릭스의 똥꼬 빨아야 하는데, 하는 행간의 의미로 이재명을 비판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원불교(사탄교) 백낙청 주도의 문화이래에 반복에 반복을 더하는 <복음으로 사기를 치는 정치문화>가 문제다.
 
비상계엄이 남미의 군부쿠데타와 닮았다면, 탄핵 세력은 원불교(사탄교)같은 동학신앙으로 주체사상 없이, 마르크수의 없이 레닌 스탈린주의를 차용하여, 순전한 100% 동학신앙만으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하는 것과 닮았다.
 
실제의 민주화민주주의의미는 소련식 민주주의로 <우리가 하면 뭐든지 민주주의야>, 전라도 중화사상 유교의리가 덧 씌워진 것이다. 그런데, 동학신앙은 조상신을 진리로 하여 유교와 비슷하나 같지 않고, 도교와 비슷하나 같지 않고, 불교아 비슷하나 같지 않다등 말장난으로 다양한 은유 어법을 댄다.
 
실제는 탄핵세력은 원불교(사탄교)백낙청과 박지원이 주도할 만큼, 일제 강점기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에서 루틴인 동학신앙 주도로 소련공산주의를 모방하는 국제사회의 이단공산주의(커밍스의 용어. 창비사 한국현대사 초반부)였다. 그래놓고, 남미를 비방하며 트럼프 지지층식의 도덕경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남미의 기독교는 서방기독교와 색깔이 다르다. 미국 민주당 기독교보다 더욱 감정중심으로 나아갔다. 이를 비하할만한 아무것도 없는데, 이규태 코너에서 샤머니즘 정치 비판한 것처럼 아무렇게나 하지도 않을 거짓 외형을 뒤집어 쓴다.
 
이재명은 화천대유나 억강부약의 대동세상 말할 때는 한국공산주의로 동학신앙으로 소련 공산주의 따라잡은 역사를 소환한다. 그래놓고, 그것을 철회안하고 서양민주주의를 수행하는 척 하면서 윤석열 비상계엄을 비방한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민족해방(공산마을 갑질)’1983년에 합의했다. 그래놓고, 양쪽 모두는 서양민주주의 한다며 민법 108조 가장표시를 내세운다.
 
김대중과 김영삼 중심으로, 이재명 중심으로, 다양한 로직이 원불교 (사탄교)일원상진리로 짜붙여지는 세상에서는 지도자와 연결된 귀족안에서 완전한 로직을 구사한다. 그러나, 조금만 떨어진 쪽에서 지금 뭐하는 것일까? 의문갖게 한다.
 
필자는 이석연 변호사의 개헌담론을 안 믿었다.
 
결국, 법치는 법, 규범, 규칙의 과거, 현재, 미래의 동일함으로 국민기본권 판단인데, 이는 동시에 귀족의 권력집중의 부정이다. 1호 헌법연구관이란 분이 원불교’(사탄교)세계관 제대로 정주행한다.
 
서양문화로 연결된 지식에 연결된 부분에서 어용지식인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나, 이분들의 종족권력 안에 연결된 잇권 따먹기로는 진실의 구현이다.
 
유신체제의 국정교육을 임헌영씨 집단은 카아[역사란 무엇인가]로 뚫었다.
 
미래세대가 동학귀족의 노예로만 고정돼야 한다는 조상숭배 과거사에서, 임헌영씨 집단은 서양사학 기준으로 모든 역사는 현재사이며 현재와 과거의 대화로 보았다. 그러나, 임헌영씨 집단의 후계자 유시민은 유신권력을 부술 때 사용했던 어법을, 자기들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필자는 89학번이다. 같은 세대가 인격이 형성될 즈음. 중고등학교의 전인교육 인성교육의 힘이 얼마나 셌는지, 내또래 대부분이 장래희망이 선생님이었다. 지금의 애들의 장래희망은 아랫도리 흔들으라 이기야.(걸그룹 등) 그리고, 민주화신화에서 대중의 동의는 법, 규칙, 규범을 당연히 사회주도층이 따른다는 믿음에서 나타났다.
 
이재명은 권력을 잔인하게 행사해야 한다면서 1980년대 학생운동의 패러다임은 러시아볼셰비키혁명을 거론했다. (이 어법과 남미조롱의 미국 보수주의인체 함은 공존 불가능한데) 작심하고 권력에 종사하는 수준에서 나타나는 부대이익이 모든 것을 판가름할 때, 양심적 지식인의 자리는 사라진다.
 
김문수씨는 실언을 하지 않았다. 실언으로 모는 광주일고 조선일보는 이미 미치광이 반열이다. , 이 광주일고 조선일보 배경에서 브릭스를 미국 민주당의 아전인수 어법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더 광적인 유아적 아전인수로 보는 시점을 본다. 중국은 명백히 6.25 전쟁 때 남로당시점으로 개입한 역사 때문에, 한국에 애정을 갖는다고 명백히 했다.
 
사회를 이루는 공공성에 대한 기초적인 측면조차도, 원불교(사탄교)기업인들의 물량중심의 성장으로 파묻는다. 이게 말이 되나?
 
민주당은 박정희 근대화를 부정한다. 호남 서민들의 저임금 근로가 중추라는 의미다. 그러면, 민주화신화의 실체는 호남 정치인에서 있었단 말인가? ‘민주화=민족해방(공산마을 갑질)’은 있었어도, ‘민주화=자유민주는 보지 못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주장하는 민주화신화의 습관적 거짓말이 문제다.
 
이재명 후원회장 원불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그 이면에 사회구성체논쟁 주도한 민족문학 주체논쟁. 여기에 깔린 세계관이 미국중심의 자유진영의 남미를 비하할 도덕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제조업 생태계가 중국의 경제공세로 무너지는데, 인문사회학 생태계 무너지는 것은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런데 모든 게 유신시대의 어용지식인의 천만배를 능가해보이는 숫자의 어용지식인 문제. 유신시대는 유교권위주의 문제. 김대중체제는 무속신앙 기준으로 상대에 비합리적 부담 떠넘기는 것의 문제다.
 
민주화세력(이라 불리는 민족해방이념의 일제 강점기 공산마을 갑질)은 아무도 자신이 했던 약속도 안 지킨다. 아무것도 없다. 적당히 둘러붙이는 가치관이 절대진리를 구사할 수 없다.
 
미국 민주당이 미국 백인보수 개새끼라는 맥락을 앞뒤 안가리고 한국에 적용한 착각을 제외하면, 사실은 더불어 민주당의 탄핵 및 의회독재 자체가 남미보다 더 못한 가치일 수 있음이 팩트일 수 있다. 부동산 공화국에 깔린 부채중독증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이행하는게 없는 데 미국민주당을 이용해서, 굉장한 도덕과 규범 준수를 하는 것같은 가짜 외형이 문제다.
 
일제 강점기 공산가문 장악에서 모든 것이 멈춰어야 한다는 문화안에서, 모든 것은 의미가 없이 녹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