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용서할수 없는 계엄을 막은건
" 광주 정신 " 이랑께 잉 ~~
아따 대선이 다가 온당께잉 !
암 그라제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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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광주 매일 신문
http://www.kjdaily.com/article.php?aid=1747221492656142005
‘푸른 눈의 시민군’ 데이비드 리 돌린저 “용납할 수 없는 계엄 막은 국민이 ‘광주정신’”
2025. 05.14(수) 20:18
80년 당시 광주 참상 세계에 알려
회고록 발간·광주 명예시민증 받아
“옛 전남도청 상공서 헬기 봐” 밝혀
16일 영암서 ‘5·18 특별 증언’ 행사

“지난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로 달려가는 국민의 모습을 보며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떠올랐다. 그게 바로 ‘광주정신’이다.”
14일 오후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 4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데이비드 리 돌린저(David L. Dolinger·69·임대운)는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전일빌딩에서 오픈된 기획전 ‘증인: 국경을 넘어(Witness: Beyond Borders)’ 개막식에 맞춰 광주를 찾은 돌린저는 간담회에 앞서 전시를 둘러봤다.
이후 그는 간담회에서 “지난해 12월3일 인도에서 화상회의 중이었는데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속보를 듣고 분노했다”며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이 바로 ‘광주정신’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상공에서 헬기를 봤다고도 증언했다.
돌린저는 “부처님 오신 날 버스 운행이 중단돼 걸어서 시내로 들어가던 중 도청 주변 상공에서 헬기가 선회하고 있었다”며 “동행하던 친구가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상점 안으로 끌어당길 정도로 상황은 긴박했다”고 말했다.
헬기 사격 장면을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당시 광주 한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보여준 총상 환자의 X-ray 사진을 통해 상공에서의 직접 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돌린저는 “어깨에서 엉덩이까지 관통한 총상 흔적이 있었고 당시 의사는 ‘연성탄(덤덤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며 “이러한 부상 흔적은 당시 광주의 건물 구조나 지형상 발생할 수 없는 각도”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엑스레이 사진은 당시 한 선교사를 통해 서울로 전달된 이후 행방이 묘연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자료가 남아 있었다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입증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언론 간담회 후 돌린저는 광주시로부터 ‘광주 명예시민증’을 받았으며 5·18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오는 16일에는 영암군청 앞 광장에서 열리는 ‘제4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며 ‘푸른 눈의 증언자 데이비드 돌린저 특별 증언’을 갖고 영암군민들에게 자신의 영암 생활과 5·18 체험을 들려줄 예정이다.
한편 데이비드 리 돌린저는 1978년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파견돼 영암보건소에서 결핵 환자 진료를 도왔다.
1980년 5월16일 동료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찾은 광주에서 그는 계엄군의 시민 폭행 장면을 목격한 이후 시민군에 합류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인 위르겐 힌츠페터 등 외신 기자들의 통역을 도우며 계엄군 무전기 감청 등의 활동도 벌였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화봉사단원 자격이 박탈됐지만, 그는 병원과 영안실을 돌며 참상의 현장을 기록했다.
이 때 기록된 필름이 해외에 전해지면서 같은 해 7월 프랑스, 미국, 스웨덴 등에서 광주의 진실이 보도됐다.
지난 2022년에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을 펴내 5·18의 의미를 후세에 전하기도 했다./주성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