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영어를 너무 공부하다보니 이제는 우리말도 영어식으로 한다.

1) ~들 : 복수의 남용 

"우리은 모자을 쓰고 자전거을 타고 학교에가서 친구을 만났다."

틀린것은 아니지만 매우 어색한 표현이다.

영어는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단수/ 복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 왜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특별히 단수/복수 개념이 없다. 우리는 하나인지 둘 이상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 문화라서 굳이 따진다면 복수가 기본이다. "나" 보다 "우리" 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증거다. 심지어 우리 남편 이라고까지 한다.

솔직히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것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이 복수라고 보는게 맞다. 하나인지 둘이상인지 따지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굳이 논리적인 문제를 따진다면, 집합 개념을 볼 수 있는데,

한국인의 사고는 집합개념이다. 그룹을 묶어 하나로 본다. 그룹을 여러 존재들의 합으로 보지 않는다. 이것이 효율적이다. 개별적 단수의 합으로 보는 것이 비합리적이다. 한국인은 효율적인 민족이다. 반복되는 요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것은 생략하는게 한국문화다.

그냥 "~들"자 다 빼고 한번 말해보라.

전혀 이상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반복되는 단어는 생략하는게 문장 법칙에도 맞기 때문에 , 복수란 의미의 "들" 은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만 한두개 정도 쓰면 다 이해한다. 본래 한국어에서 "들" 은 2개 이상이 아니라 "많은" 수를 표현할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였다.

2) ~ 중의 하나는 : 어색한 단수의 강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는 .......

최상급 "가장" 까지 넣어서 쓰는데 이거야말로 넌센스다. 최상급은 하나 이기 때문에 복수가 될 수 없다고 영문법 시간에도 배웠다.

그냥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 " 이렇게 말하면 된다.

당연히 여러개 중의 하나지.

좋아하는게 오직 한개뿐인 사람도 있나?

아무도 네가 좋아하는게 그것뿐이냐? 두개냐? 세개냐? 따지지 않는다.

최상급을 넣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000야" 라고 표현한다해도, 당연히 여러개 중에서 이 시점에서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제일 좋아하는게 00뿐이야? 다른 거는 안좋아하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법정이라면 몰라도 , 일상 대화에서는 하나인지 두개인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 하나" 를 붙이는 것과 안붙이는 경우의 차이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 되지만 , 사실상 차이가 없다.

* 내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는 000

** 내가 좋아하는 것은 000

이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설명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냥 잘못된 습관일 뿐이다.

게다가 한개인지 두개인지 알수 없는 경우도 많고 그게 별 의미도 없는데 한개냐 두개냐 따지는 건 너무 피곤하다.

3) 가지다 : 소유격의 남용 

그녀는 예쁜 눈을 가졌다. 

그것은 아름다운 외관을 가졌다.

영어권 사람들은 사물의 속성(형용사) 을 그 사물에 속한 성질, 즉 "소유하는" 것으로 본다.

(be 형용사 ==> have + 형용사+명사)

그러나 우리말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눈이 예쁘다. (사람)

그것은 아름답다. (사물)

이게 본래 우리말 표현이다.

아름다움(형용사)는 가질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다. (be + 형용사)

아래 방송을 보면

소유를 의미하는 동사 have , get , take 중에서

have 는 소유의 강도가 가장 약한,

사실상 "갖고 있다" 라기 보다는 , 그냥 "있다" 에 가까운 단어라고 한다.

본래 "가지다" 라는 표현은

가질 수있는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수단에, 

가질 수 있는 대상을 가진다. 

이렇게 쓰는 표현이다. 

즉, 어떤 사람이 가지려는 의지를 가지고 어떤 수단에 어떤 물건을 가졌다. 이렇게 쓰는 것이다.

 지갑 가지고 있다. 

마음 ~한 생각 갖다. 

눈을 어디에 갖고 태어났는가? 손에? 주머니에? 눈을 얼굴에 담는 것은 아니다.

그런 눈을 갖고 싶은 의지에 따라 소유했는가?

쉽게 말해, 그런 눈을 갖고 싶으면 가질수 있는가?

욕구나 의지에 따라 바꿀수 있는게 아니라면 가진다는 표현을 쓰면 안된다.

우리는

너, 차 있어?/ 집 있어이렇게 말하지,

차를 / 집을 갖고 있어?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너 돈 좀 가지고 있어?

너 펜 갖고 있어? 

돈이나 펜은 손/ 주머니/ 가방에 소지할수 있는 물건이다. 이럴때 "갖고 있다" 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또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사물은 인격적 주체가 되지 않으므로 가지다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인격적 주체란 말은

가지려는 욕구나 의지, 가질수 있는 수단을 전제로 한다.

개가 돈이나 볼펜이나 스마트폰을 가질수 있는가? 가지려는 소유욕이나 의지나 수단을 갖고 있는가? 개는 무엇을 가질 수가 없다.

그 스마트폰은 매끈한 디자인을 가졌다

스마트폰이 뭔가 소유할수 있는 존재인가?

또 "디자인" 은 가질수 있는 대상인가?

=> 그 스마트폰은 디자인이 예쁘다.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

본래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이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가능하면 구어체로 번역하는게 바람직한데, 요즘은 구어체에 쓰이지 않는 문어체를 쓰는 경향이 너무 많아졌다.

4) ~로부터 : From 의 남용 

엄청나게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그는 미국으로부터 왔다. => 그는 미국에서 왔다

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 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너 어디서 왔니? 이렇게 말하지,

너 어디로부터 왔니? 이러지 않는다.

우리말 "에서" 는 in , from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는 단어다.

~에 있다. 와 ~에게서 를 비교해 보면

~에 는 장소를 (in)

~서 는 방향을 (from) 의미하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럼 사람일때에는 어떨까?

사람일 때에는 "에게(서)" 를 쓴다.

그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X)

그에게(서) 소식을 들었다. (O) 

그에게 말했다. To 사람 

그에게(서) 들었다. From 사람. 

5) 그 어떤 ~도 -- 하지 않다 :

not ~ any of ~~ 

그 어떤 ~ 발견되지 않았다

한글로 썼지만 이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다.

본래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하지 않았다. (사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물)

any = 아무 (사람, 물건, 동물, 사물) 

어느 쪽이 간단한가?

6) 그녀 : She 의 남용 

그녀는 ~~~ 

그녀라는 말을 처음 쓴것은 춘원 이광수라고 한다.

영어에는 성(性)이 있어서 꼭 지켜야 하는 절대 법칙이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본래 성이 없다.우리는 남자냐 여자냐 따지는 문화가 아니다. 본래 남녀를 따지지 않고 그냥 사람이다. (사람) 인 것이다. 이게 바로 남녀평등이다.

* 사족을 덧붙이자면,

서양 영어권에서는 여성을 성적인 Sexual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여성인지 아닌지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Sexy 하다는 말을 쓴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냥 남자든 여자든 사람의 하나로 본다. 다만 사회적 의미(나이와 결혼여부, 역할) 에 따라 딸, 아가씨, 어머니,아내, 아주머니, 할머니 등으로 부르는 것 뿐이다.

우리는 아기엄마가 유방을 드러내도 전혀 섹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냥 아기 엄마로 본다. 그래서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미개해서 그런 것인가? 그게 아니다. 젖먹이는 아기 엄마를 보고 섹시하다 느낀다면 이거야 말로 미개한 변태가 아닌가?

서양에서는 어리든 늙었든 관계 없이 여자는 성적인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유방을 드러내면 큰일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아버지 같은 남자와 손자같은 여자가 결혼하는 일도 흔하다. 남녀의 성적 결합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서양인들은 아기가 예쁘다고 쓰다듬어도 성추행으로 본다. 도대체 머리속에 그런 생각 밖에 없나?

우리말에서 아주머니는 여성이 아니다. 중성이다. 그래서 남자화장실도 아주머니가 청소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남자화장실은 남자가 청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러면 아주머니는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되는 것이다. "여성" 이 되는것은 좋은 것일까. 이게 과연 남녀평등인가.

모두 남녀차별을 싫어하는데 , "그녀"란 말을 쓰는 것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남녀차별의 문화라고 할수 있다.

7) 머물다 stay 

그는 00에 있는 집에 머물렀다.

영어 stay 란 말을 머물다로 번역하는데, 문제는 우리말에서도 "머물다" 란 표현을 쓰는 것이다. 실제 회화에서는 머물다는 표현은 잘 쓰이지 않으며, 정착문화인 한국에서 "머물다" 는 임시로 "잠깐동안 있었다" 는 의미로 쓰였다. (비슷한 말 체류하다)

"있다" 는 2가지 의미가 있는데,

1. 존재를 가리키는 경우 : 물건이 있다. ( be )

2. 장소에 있는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 나는 그날 집에 "있었다." (stay)

문제는 2번을 머물다로 표현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뭐했어?

집에 있었어.

아무도 "머물렀다" 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각종 기사나 영상 타이틀에서는 머물다로 표현하고 있다. 어색하다.

그냥 "있었다" 라고 하면 된다. 

머물다는 우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면 싼티가 느껴지는가?

요즘 사회가 안정되니 쎈소리 , 된발음을 피하고 부드러운 발음을 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 그래서 한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한자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경향도 많이 보이고 있다. 아무리 부드러운 발음이 좋아도 이상한 표현을 자꾸 만들어 쓰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라기보다는 전통적인 표현을 몰라서(무지해서) 생기는 현상이라 그리 좋은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뭐, 아무러면 어때, 무슨 뜻인지 알면 되지. 다 그렇게 쓰는데.. 

시대가 바뀌면 말도 바뀌는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맞다. 말은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문화가 바뀐다. 말을 틀리게 하면 생각도 틀리게 된다. 이빨 빠진 칼로 요리를 잘 할수는 없다. 

이런 영어가 더 효울적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 효율성 면에서는 한국어가 더 짱이다. 

생각해보자. 

일본어 단어에는 왜 그렇게 단어 하나에도 기절할듯이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영어에는 왜 그렇게 관대한가?... 미국에 지배당한 적이 없어서인가?

단어와 문장은 다르다.

일본어 단어를 쓴다고 해서 우리의 문화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말 문장을 영어식으로 쓴다는 것은 사고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미국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겉은 한국인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미국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한국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책임한 번역가들의 책임이 크다.

번역이란 외국어를 그에 맞는 한국어로 바꿔주는 일인데, 외국어만 알고 한국어는 잘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번역을 하는것이 오래 동안 굳어졌다. 자기의 번역에 자신이 없다보니 의역을 하지않고 단어 직역을 하다 보니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이상한 말을 만들어낸다.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 번역도 비슷한 현상이 있기는 하다. 외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그런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번역가라면 우리말을 잘 알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 너무 무책임한 경향이 있다.

학생들은 우리말로 된 책을 별로 읽지 않고 영어시험에 나오는 단어와 예문만 읽다보니 이런 이상한 번역만 접하게 되고, 이제는 그것에 익숙해져서 무심코 따라하고, 언론인도 그런 표현을 쓰고 있어 점점 확산 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영어 단어를 외우다보니 단편적인 의미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직역 단어로 기억하는 단어 중에 사실상 본래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단어도 많다. 외국 물을 먹은, 교포나 유학생 들이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걸 무심코 따라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전 새로 번역된 개역개정 성경도 이런 영어식 문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요즘 한국에 문화적으로 귀화하는 외국인이 늘면서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익힌 외국인과 토종 한국인을 비교하면, 외국인이 더 정확한 말을 쓰고, 한국인이 잘못된 말을 쓰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이것이 심각한 문제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을 정확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