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 장군 표준영정-
현재 한국사 교과서의 강동6주 위치는 일제 관변 사학자로서 조선사 왜곡에 앞장섰던 "쓰다 소우키치"가
'서희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거짓말 쟁이들이기에 내가 그 역사를 다시 쓴다'라고 하면서 조작해낸 지도입니다.
그러나 각종 사료들을 참고하여 당시의 전쟁 기록을 복원해보면 실제 강동6주의 위치를 고증할 수 있습니다.
강동6주 (서희 개척 8주) 의 실제 위치↓↓↓


-『고려사절요』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이 지은 『동사강목』에는 서희 장군이 994년과 996년 사이에 장흥진(長興鎭)·귀화진(歸化鎭)
·곽주(郭州)·귀주(龜州)·안의진(安義鎭)·흥화진(興化鎭)·선주(宣州)·맹주(孟州) 등 8개 지역에 성을 쌓았다고 되어 있다. 우리 사학계에서는
『고려사절요』나 『동사강목』의 기록에 대하여 오기이거나 다른 이칭 중복 기재 등으로 보고, 중국 『宋史』의 기록을 근거로 6州를 정하였
다. 그런데 뒤에 자세히 다루거니와 우리나라의 기록을 부인할 특별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宋史』를 근거로 6주로 축소한 것은 문제가 있다.
··· 서희 장군은 거란과 담판하여 모두 8주를 개척하였으나 귀화진과 장흥진을 특별한 사유도 없이 오기로 보아 제외하고 흥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 등 6주를 이른바 '강동6주'라 이름 붙여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 지역으로 설명하여 왔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거란의 3차에 걸친 침략 시
의 군사 이동 상황과 평안도의 지명 지리를 비교하여 보면 서로 부합되지 않는다. 그런데 압록강 남쪽의 지명 다수가 요령성 요양과 개원 사이에서
같은 이름으로 있는데, 고려군과 거란군의 군사행동을 요령성으로 옮겨 보면 지리적으로 상당 부분 부합된다. 따라서 서희 장군이 개척한 8주는 현
재의 압록강 남쪽이 아니라 요령성 요하 상류의 남쪽 개원시 일대와 요양시 이북 일대에 위치하였다고 추정된다-
「남주성, 서희 개척 8주의 위치에 대한 재고찰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909
[강동 6주를 찾아서 ⑤] 강동 6주는 요하 동쪽에 있었다
[강동 6주를 찾아서 ①] 압록강 남쪽인데 강동 6주?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724
[강동 6주를 찾아서 ②] '맑은 압록강'과 '푸른 압록강'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725
[강동 6주를 찾아서 ③] '맑은 압록강'의 정체는 요하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800
[강동 6주를 찾아서 ④] 귀주대첩이 일어난 장소는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808
[강동 6주를 찾아서 ⑥] 고려 천리장성은 어디에?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993
<참고 논문>
「고려와 거란의 전쟁 기록 복원」 - 윤한택 (인하대학교 연구교수)
「고려 서북면 경계 재검토-강동 6주(江東六州)를 중심으로」 - 김영섭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희 개척 8주의 위치에 대한 재고찰」 - 남주성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수력원자력㈜ 상임감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