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에는 제대로된 反共도 없고 제대로 된 反中도 없고, 자릿싸움 경쟁자 낙인찍는 의미만 있다. -‘강제 단일화의 불편한 진실. 보수층에 왜곡된 시스템의 부담을 떠넘겨야 하는데 보수층을 대변하다니-
 

한국사회는 조선후기 사회상의 변장된 복원이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에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30여년 전의 한국교회와 살짝 바뀌었다. 오늘 떠 있는 기독교언론 기사도 동학이 지배하는 세상 신문과 똑같다. 목회와 정치의 균형을 이룬 분이라고 어떤 기독교언론 기사에서 균형이란 용어는, 세상적 정치에서 동학신앙 기득권자의 중도 중용 조화 균형 상생 화해용어를 가져다 쓰는게 아니냐고 의문한다. 필자가 가장 의문하는 것은 ‘*** 선비는 탁월한 儒家이며 文武一體를 이루고 균형을 이뤘다는 세계관의 연장이지, 기독교 세계관 표현이 맞냐?
 
이렇게 세상에서 말하고 다니면 안된다. 필자는 머리가 나빠서 민주화신화를 정말 곧이곧대로 믿었다. 필자의 도시락 싸갖고 다니는 말리는 심정으로 비판함은 그 의미. 신앙에서 시험들어서 교회 안 나가, 하지 않는다. 어느 교회나 비슷하겠지만, 유신시대에 교회에 권력을 차지하고자 들어온 양반조직이 있다. 이들을 불편하게 함은 사회생활을 못해도 너무 못하는 것이다. 알아서 덕담하고 살살 굴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포기하되 손해도 보지 말자는 입장이면 스탠스가 다를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아예 거론자체도 말아야 한다.
 
비상계엄에서 일당독재가 1인독재를 권력분산 문제로 정죄하는 모습은, 서양법재판이 아니라 조선후기 방식임을 느끼게 한다.
 
일베에서 제일 낯설어질 때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기준으로 한국은 엽기적 컨텐츠 결여 사회다. 꼭 있어야 할 게 하나도 없다. 국민의 힘 열성당원으로 추정되는 노인집단들은, 숭상해야 될 조선시대 선비후손들을 하나가득 소개한다. 그 생각은 공자 맹자를 둘러싼 동학파 양반가문 종교세계관에서는 자연스럽다.
 
이 분들을 향해서 줄 서서 살살 거리고, 이분들 불편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놈! 해주고,... 그게 조선시대 씨족의 삶이다. 기독교인은 신앙으로 이런 일(종속의 삶=노예의 삶)은 못할 짓이고, 책을 많이 본 사람들은 더 못한다.
 
유신체제의 반공어법 중에 상당부분이 공산당을 알고 반대하는게 아니다. 정적 낙인찍기용이다, 라고 30여년 전인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사이에 김대중 김영삼 지지자들은 논했다. 여전히 그때와 모든게 똑같다.
 
민정당 때 배운게 없는 중졸이하 40-50대는 30년이 지나서 70-80대가 되도 더 추가적으로 책을 본게 있는게 없다. 그런데, 그 시절 20대는 얼마나 많은 책을 보았나?
 
트럼프 지지층이 유튜브로 전 세계에 반공주의 복원을 의도한다. 레이건 시대의 반공어법과 달라진게 없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1인 독재든 1당독재든 모든 형태의 권력집중 부정이다. 민법, 교회법, 보통법이 민생을 판가름 하는 공간에 보충적 질서로서 공법국가다.
 
트럼프 지지층의 反共 은 바이든/해리스 까지도 코뮤니스트로 몰아가는 것이다. 자유진영의 자본주의 문명이 교회법 제사장 그룹의 몫이며, 모든 자본주의 문명의 질서가 그 귀족 지배질서이니 이를 깨는게 무엄하다는 게 반공논리의 이면이다.
 
미국민주당이 미국 정치를 고스란히 한국에 적용해서 보니 황당하게 한국을 자주 분석한다.
 
한국은 노론 일당독재 사회로 일제에 나라가 팔렸다.
 
노론 소수파가 친일파요
 
노론 다수파가 친중파였다. 그 친중파-친 소련파가 공산파다.
 
미국은 공산파가 사회의 기득권 아니었지만, 미국 민주당이 복원시켜준 지난 천년 이상의 전라도 사대부 기득권자는 전라도 유교특유의 씨족 종교 로직으로 공산주의다. 이는 한국인이 아는 공산주의와 달리 중국은 유교 자체가 공산주의로 해석하는데, 이 중국유교와 호남유교가 공통분모가 높다는 말이다.
 
미국의 반공주의는 백인보수우파의 기득권 유지의 산물이지만, 한국의 반공주의는 노론 세력 내부의 동학 공산파의 갑질 폭주로부터 서민들의 보존이다.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은 노동투입 없는 돈놀이만의 경제 굴리기를 의도한다. 미국 보수층은 이를 베네수엘라 유형으로 본다.
 
제대로 된 반공주의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뗐어야 한다. 마르크스 사상을 낳게 된 주변사상가는 다 뗐어야 한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통해서 백인보수의 불공정한 이익을 주장할지언정, 아담스미스가 생산물이 그 국가의 부라는 평가를 이어받았다.
 
80년대 후반에 대학입학했던 세대들은 좌파사상서들에 낑겨 살다시피 했다. 보수진영에서 한동훈 도우미였던 진중권이 더 잘알 것이다. 수유연구실 파벌 등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관 사상서 소개하는 박사학위자들이 많다.
 
이분들은 공산주의 서적에 소개되는 자본주의 내용을 타도할 대상으로 본다. 유신시대 반공서적이 글로벌 좌파의 맥락을 왜곡 소개했다. 미국 민주당 경제유튜버를 통해보니, 확실히 보수와 진보 구분에는 기독교 신앙의 구획선이 먼저 전제가 된다.
 
한국은 공산파의 다수가 원불교‘(사탄교). 오히려 진보기독교는 그 진영에서 지금 소외되고 따돌림당한다. 이유는 뻔하다.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세력 홍보용이고, 진보진영도(이들이 진보라 동의해서 부르는 표현 아니다) 힘들어 했던 것이다.
 
반공을 제대로 논하려면, 이 땅에 퍼진 전문서적을 정복한 전문세력과 고통이 되는 어법을 써야 한다.
 
트럼프의 차이나=코뮤니즘선언 이후에 반중을 일베노인은 무척 논하고 싶어하는데, 중국학 지식도 없다. 백기완 딸 백원담 교수도 쓴 공자=마르크스노선의 사실성에 대한 비판인식을 하려면, 조금 알아야 한다.
 
문자 그대로 보수층은 우민화가 완성됐다.
 
권력에 꽂혀야 할 양반집단에 대하여 정적에 낙인찍는 아무말 대잔치 수준이 벌어진다.
 
유신시대는 모든 권력을 다 가지면서 정적에 낙인찍는 아무말대잔치이면, 지금은 정반대로 아무것도 안가지면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미련의 세계관 속이다.
 
일베노인들은 저항은 민족신화의 세계로 간다.
 
그런데, 민주항쟁 서양 내용을 봐도, 기독교씨족집단의 연합이 기본인데 이성어법이 뿌리에 놓여야 한다. 자유민주체제 수호이든 저항이든 뭔가 연합을 이루는 그런 교육이 있어야 한다. 어떤 기계가 컴퓨터와 연결돼서 돌아가려고 해도, 먼저 프로그램이 깔려야 한다.
 
아무것도 안한다.
 
과연, 지금의 20대는 30년 뒤에 오늘의 현실을 고찰하면서, 오늘을 분석하면서 미래를 뚫을 게 가능한가?
 
<강제단일화>의 의미.
 
원불교 백낙청 진영에는 문화를 몰아주고,
 
보수측은 이승만 이용사업-박정희 이용사업을 뺀 모든 문화를 공백을 만든다.
 
보수측에서 억울함의 항변이 못 나오게 하는 그런 관리대상으로 머물게 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김문수는 보수유권자에겐 고맙고, 일당독재자들에겐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강제단일화를 끌면서, 이번 대선에서 국힘에서 이재명 민주당 공약의 엽기성 비판의 준비할 틈도 잃게 했다. 광주일고 조선일보와 탄핵종족주의 조갑제닷컴은 다 알고 이러는 것이다.
 
선진국은 문화전승이 있지만, 후진국은 없다.
 
강제단일화 뿐만 아니라,
자유당시절의 혼란문화도 강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