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당 독재‘1인 독재보다 도덕적 우위라는 한국 민주팔이 궤변에 왜 국제사회가 편을 들어주나? - (Feat. 세계 대공황 직전의 자본시장 범프질의 테크닉)
 
 
필자는 작금의 현실이 레이달리오의 달러패권의 종말이며 패권을 중국에 넘겨준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중국의 국가시스템은 히틀러 파시즘 체제와 이면의 로직은 같기 때문이다. 레이달리오의 그 주장은 자신들의 자유질서가 유지가 되면서, 히틀러 파시즘과 궁극적으로 같은 로직이 세계패권이 된다는 이야기다. 레이달리오는 그럴 때, 전체주의 국가의 세계패권으로 지속불가능한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지속된다는 조건으로 논하고 있다. 레이달리오는 미국 자국 내부의 공화당에 꽂혀 있는 로컬한 사상가로 봄이 타당해 보인다. 여전히 기독교문명이 힘을 합치면 중국의 도전은 가볍게 누를 수 있다. 문제는 기독교문명이 전부 각각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문제는 미국 민주당 성향의 국제자본은 일관되게 한국의 <일당독재 시스템>을 편들었다. 탄핵정국이 그 예다. 미국 민주당 성향의 국제자본은 버블을 키우는데, 한국의 <일당독재 시스템>은 좋은 친구였다. 미국의 러스트 벨트 근로자가 세계화체제에서 미국 내부의 음지였다면, 한국에서는 한미동맹파 법치주의 세력은 30년 내내 음지였다. 이는 미국 민주당의 친중파형성과 본질이 같다.
 
한국인의 <기독교 좌파> 음란기독교이해는 거의 90% 이상(거의 97-98%?)이 가짜. 한국은 로마문명이 아니다. 음란기독교를 긍정하는 조직신학을 보고, 동시에 서양철학에 바탕논리를 봐도, 해외에서 무슨 소리를 한다고 추정하는 논리를 얻을 뿐 신앙화에 모자르다.
 
미국의 친중파도 본질이 비슷하다. 한자로 읽는 중국이 아니라 영어 번역서로 읽는 중국, 특히 스토아주의로서 해석된 민법 질서 안에서 해석하는 중국이다. (현실의 중국은 아니올시다! 하는게 미국 공화당의 판단이다. 미국 공화당의 판단도 상당한 중국학 이해를 전제한다. ) 미국의 친중파는 조상숭배 샤머니즘 문명에서 신분노예제 지속 질서를 이해하는 친중파가 아니다. 한국의 음란기독교 이해처럼 대충 번역된 논리를 받아들이나, 번역의 한계로 상당부분을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버블을 안정적으로 부풀려줄 국가를 찾고, 그 내부 현실은 무조건 덮어줬다.
 
이번 탄핵정국에서 “BBC 코리아와 미국 공화당 트럼프 국무부의 시선이 완전히 갈린다. ‘bbc코리아는 한걸레신문처럼 호남좌파종족주의 그 자체이고, 미국 트럼프 공화당 국무부는 여야 양당에 중립시선을 유지했다. 글로벌리스트 미디어는 습관적으로 한국인들이 다 보는 모습을, 한국의 일당독재 미디어처럼 은폐했다.
 
이재명의 대장동일당독재 경제의 하나의 상징이다. 부동산버블 경제로 부풀린 자본이득을 기득권층이 나누는 차원이다. 이재명은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주장한다.
 
대동세상은 시진핑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 미화하는 당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이면서, 광주민중항쟁 단체의 메인이 만드는 기억 논리다.
 
이재명 같은 제후귀족 연합의 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익을 보장하는 무한보증의 정부가 노무현의 국토균형발전이고 문재앙의 평화경제. , 이재명은 자신의 슬로건 자체가 그러한 미래를 겨냥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은 전라도가 지역 배경이다. 전라도는 노론독재의 본고장이다. 노론독재에서 귀족이 모든 이익을 독점하고, 노론독재 가장 바깥 외연에 부담을 전가한다.
 
주체사상의 짜도 없이, 마르크스의 짜도 없이, 순전한 100%의 노론독재 통치기술은 레닌 스탈린 볼셰비즘과 모택동 인민민주주의의 본질을 이미 구현했다.
 
이분들은 유신시대 1인독재 때를 벗어남을 굉장히 자랑한다.
 
사실은 유신시대 1인독재나 김대중체제의 1당독재나 작동원리는 같다.
 
6.25 전쟁 남침을 두 번다시 없게 한다는 이유로 1인 지도자의 권력집중이다.
 
김대중체제에서는 동학신앙으로 부족연합을 강조하는 귀족들의 신뢰를 팔면서, 부동산에 부채들고 투자하게 유도했다.
 
유신시대는 6.25 전쟁 트라우마 문제로 이를 벗어나게 해준다면, 독재도 괜찮다는 전쟁 트라우마에 있었고(민주당은 이를 너무 과소평가한다. 사쿠라의 , 조갑제기자도 마찬가지다),
 
김대중체제는 무속신앙에 기반한 근로회피와 놀면서도 잘 살면 개꿀! 이런 증세가 있다. 이러한 개꿀(?)을 보장하는 논리로 간다.--국민의 힘 정치인들이 이런 영역을 확장하는 공약을 냈다. 지금 한국은 여야 경쟁 구조가 아니다.
 
유신시대의 지속을 위해서 공권력 강화를 위한 정략개헌이라면, 부동산 부채버블발 반칙경제로 노론귀족의 집단이익과 손실의 보수층 힘없는 젊은이에 전가하는 것을 위한 내각제 개헌유도가 있다.
 
경상도식 상명하복 중국문명 임금님(일본유교와 유사)이 아니고, 전라도식 상향식 중국문명 임금님(청나라 유교와 거의 싱크로율이 대단히 높은)이 더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 공화당처럼 중립적이 시선이 맞을 것이나, 글로벌리스트 미디어는 일관되게 그들의 파트너를 당파적으로 편든다.
 
유신체제는 자유민주를 주장하면서도 민법질서가 없다. 그렇게 논하던 분들은 원불교(사탄교)식의 대승불교로 짜여진 지도자의 자아 속에, 전체 우주의 민법질서가 다 있다는 해괴망칙한 궤변으로 국민과 국제사회를 동시에 속였다.
 
미국은 1930년대 주식시장처럼 버블 부풀리기 했던 2025년 주식시장 및 자본시장이 붕괴된다는 주장이 퍼져 있다. 부풀리는 자들은 정의로운 부풀림이고, 거기서 빵 터뜨리는 매개물로서 관세는 아주 불의하다는 논리인데, 이 자체가 엽기적 당파성이다.
 
1930년대 유럽의 지성사에서 2025년의 세계 자유진영의 길을 보아야 한다. 최고로 버블을 부풀린 것과 관세의 맞물림이 문제이지, 관세자체는 얼마든지 중립적이다. 버블이 부풀려진 상태에서 관세는 버블이 터질 수 밖에 없음을 알거나 알 수 있었는데도, 미국공화당이 시도한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시대정신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의도적으로 30년 가깝게 하나의 지지층을 음지로 만들었다면, 민법적 <응가응보>원리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군사정권 때 1인독재 비판 맥락에서 수입된 유럽지성사 책들은, 그 수입상은 군사정권 독재 맥락으로 했으나, 지금이 오히려 더 적절할 것이다. 그때 유럽지성들은 일관되게 기독교신앙 위에 서려 노력하고, 그 밖을 거부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자본시장이 부풀면 감정적인 개꿀이다. 여기에 맹목적 종속이 나쁜 것이다.
 
지금 현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모든 지식 논리는, 유신체제에 대한 김대중 김영삼 연합의 비판논리를 그대로 적용할 때 남아날 게 없다. 문제는 그렇게 흔적도 안 남기게 비판하고, 권력을 주장할 간 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리스트 세력이 꽉 잡아주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이 달러를 쓰는 자유진영에 있거나, 어쨌든 중국식 신분노예제 문명 밖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미국이나 중국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한국의 원불교”(사탄교)귀족을 어떻게 믿느냐 하는 차원과 연결된다.
 
유신체제 극복과정에서도 똑같은 문제다. 그때도 서방자유진영의 룰을 긍정함은, 유신체제 변칙논리에 대한 강한 불신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