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정국에서 “더불어 민주당” 정치 논리의 분석은 정말 쉽다. 유신체제의 경상도식 독재 어법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같은 진실의 전라도버전을 해석이 안될 수가 없다.
한국의 근대성은 일본의 근대성처럼 번역된 근대성이다. 조선왕조 임금님께서 뭐뭐하던 물건, 格物致知로 예법을 아는데 암 걸리겠다. 그래서, 양명학으로 바뀐 논리가 사대부 세속어법의 기본일 때, 한국(구한말)은 중국(청나라)와 함께 망국의 경험이 있었다.
서구에서 조직신학(교의학)의 발생이 히브리적 신앙 체험의 로마인본주의 기록에서 시작이라고 한다. 서방기독교지대는 “양태론”이 이단이고, 동방기독교는 “종속론”이 이단이다. 뒤집어 이야기하자. 성경논리를 딱 지우고 해석하는 조직신학에 대한 로마 이방인들의 읽기는 ‘양태론’(서방기독교)과 ‘종속론’(동방기독교)일 것이다.
자주 거론한 새불결아카데미 김요○목사의 전라도 사대부 행실이 뼛속까지 그러한데, 그럴싸 한 서구 조직신학을 수입했다. 서양문명을 수입하는 데 있어서 아시아 사회는, <서양문명>을 원본이라고 그것을 따르는 분명한 집단적 약속이 없을 때,...... 그 기록한 언어에 깔린 본질적 문제로 돌아간다.
서양법은 율법에서 나왔다. 율법은 제사장의 공동체 수호와 연결된다. 반면에, 중국문명에서 제사장은 기독교신앙과 전혀 다른 맥락에 있다. 공동체문제는 자신들의 봉건적 갑질로 돌아간다. 조상숭배는 결국은 지배자의 조상의 강조이고, 노예제들의 노예인 이유로 돌아간다.
김대중지지자들은 전두환의 4천억원을 벌할 때 명분이 있다.
유신체제의 1인지도자의 법 밖을 질타했다.
그러나, 그랬던 분들이 ‘전라도는 노론사대부 귀족당파’ 집단적 열외를 구현했다. 손바닥 뒤집기도 이런 손바닥 뒤집기도 없다.
서양법으로는 김대중지지자들의 전두환을 정죄하는 모든 논리가 허물어진다. 반면에, 전라도 1당독재 중화사상으로 오랑캐몰이를 유지할 경우만 법이 유지가 된다.
아무도 자신을 법 밖의 열외로 안한다는 조건으로 전두환을 벌하고서, 또다른 의미의 중국식 야만주의(보다 더 심화된 야만주의)를 구현하는 경우에서, 과거의 기본적인 정죄 자체의 의미를 못 믿게 된다. 비상계엄은 아무것도 망친 게 없다. 생각에만 멈추었다. 반면에 더불어 민주당은 전라도와 중국이 공유하는 중국식 야만주의 코드를 무차별 행사했다. 서양법으로 탄핵을 추구하는 재판의 형식 자체가 말이 안된다.
사쿠라 조갑제기자의 헌법 해석의 구제불능 전라도종족주의(경상도 내부에도 전라도 꼭두각시가 있음은 조선시대 유교당쟁사를 보면 안다)는 그것만 망하는게 아니라, 『박정희 전기』 작성에도 진실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히틀러 파시즘 및 스탈린 볼셰비즘 탈피로서 국민상호간의 국민주권주의로서, 국가를 지키려는 공동체 도덕의지로서 작동한다.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반만년 조선왕조 단절의 서술이 중요하게 볼 부분이다. 조갑제기자는 조선왕조 잔재를 끌어안는 박정희 띄우기로 중립을 서나, 박정희 시대에서 ‘가난의 동문’들(평민들로서 군사정권에 배움이 짧아서 무조건 지지했던 세대)에게 나타난 무수한 ‘근대적 국민주체관’에서 돌아서서, 조선왕조의 전라도식 신분제 복권, 전라도식 기억 복원과 함께 중국식 공산주의에 보수층에 침투하게 됐다.
박정희 체제를 필자는 긍정하지 않는다. 반대측 전라도종족주의로부터 난도질당하지 않는 의미로서 중립평가를 한다. 이는 미국측의 입장도 비슷할 것이다. 필자는 자주 하는 말로 <진단서>는 맞는데, <처방전>이 잘못이다. 진단서가 틀렸다고 볼 수 없다. 그런 의미로 그 시대의 기억도 오늘에서 의미가 있는 부분이 있다.
군사정권 지배층의 고민이 이랬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기록된 노론 사대부정서처럼, 전라도 사대부들의 대다수는 <법 위>에 있고자 했다. 그리고, 한국 노예계급도 좀처럼 ‘법치’안에 놓임보다는 역시 <법위>에 있고자 했다.
유신체제는 이 고민의 해법이 이랬다.
권위주의로 윽박질러서 전라도 사대부를 법 안으로 집어넣자. 하층민들의 해법은 ‘삼청교육대’였다. 고민은 이해는 가지만, 가서는 안될 처방전이었다. 고민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김대중지지자들의 주장은 전부 허구로 끝났다. 군사정권의 조건이 사라지자, 과거 군사정권 지도자들이 고민했을 부분이 전부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법위의 노론사대부와 법위의 하층민 노예계급이 만나면, 모든 시스템 붕괴로 나타날 수 있다.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을 모방하면서도, 주체사상의 주도 없이, 마르크스의 마도 없이, 오직 원불교(사탄교)동학사상만으로 모든 악행을 뛰어넘는 창조적(?) 집단 악마가 가능한 것이다.
유신체제(박정희체제)의 고민은 법위에 있고자 하는 귀족과 법 위에 있고자 하는 그 귀족의 노예층을 법 안으로 강제로 쑤셔넣자였다.
김대중체제의 고민은 지속불가능한 사회구조에서 집단이익의 안정적 보장을 위해서, 반대측에 무한대의 부담전가를 위한 종족전쟁 모드를 구현하되 민주화로 포장하자.
유신체제(박정희체제)때는 정말 한국은 못 살았다. 자료도 없었다. 서양법을 이해하는 측은 과장 안하고 수십명에 지나지 않았다.
김대중체제는 그렇지 않다. 권위주의 통제도 없다. 서양법 자료도 많고 전문가도 많다. 그러나, 일당독재로 원불교(사탄교)코드로 집단화된 프레임이 유신시대 독재체제를 능가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며 역사가 계속 다시 쓰여짐을 전제한다면, 바보가 아니어도 ‘민주화신화’는 가짜라고 재해석이 생각돼야 정상이다.
일반인의 생각은 독자적 줏대가 없다. 집단행위에 다수는 끌려간다. 김대중체제는 한국의 지식층은 넉넉히 일당독재 파시즘으로 짓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탄핵정국을 작동시켰다.
히틀러 시대에 ‘고백교회’가 이런 의미구나!
전라도 동학신앙이 서양법이 아니라고, 국회의원의 다수가 전라도 동학(원불교)만 알고 법치를 모른다. 이석연 변호사가 헌법연구관 1호라는 데 원불교(사탄교)만 알고 법치를 모른다.
기독교인은 예와 아니오가 분명해야 한다. 성경적이면 예 아니면 아니오. 필자는 이런 공식으로 비상계엄 초기는 윤석열 비판,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일당독재 파시즘 구조에서는 미국의 비판과 논조를 맞추어서 나아갔다.
1인 독재로 박정희 전두환 의중에 맞는 경상도종족주의가 법이 아니고, 원불교(사탄교) 박지원과 백낙청 의중에 맞는 집단마피아의 전라도종족주의가 법이 아니다.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장안하고 최소 수천명은 된다. 모조리 침묵한다. 이해관계로 침묵하거나 정치적 보복을 무서워하거나, 대학에 소속된 지식인의 경우는 해직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조갑제기자의 사쿠라적 스탠스를 강조할 것이다. 대구경북의 30년 후원을 받고 제대로 배신의 칼을 꽂았다고 볼 것이다. 필자는 정치인의 관점으로 조갑제기자에 원망을 갖지 않는다. 이미, 영화 [건국전쟁]과 영화 [길위의 김대중]으로 영화를 통해서, 조선시대 유교붕당연합이라는 ‘법치주의’는 개나 주세요! 하는 지배층의 집단적 일탈행위의 문제와 연결돼서 본다. 조갑제기자는 민주정의당 영남종족주의식의 관점은 잘못이다. 전라도종족주의가 답이다, 라고 볼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진짜 가슴아픈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김영삼 믿고 문민정부라고 인문학시작한 ‘엑스세대전문가’는 최종적으로, 민주당 좌파 아니라 보수측에서 의도적으로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일베정게에서도 기억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데 조병옥파벌의 유교사대부 붕당으로 기억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황당해 하는일이 빈발한다.
민주당 지지층은 김대중 지지자 씨족의 투쟁역사로 노비새끼들 잘 복종하나? 국힘 지지층은 박정희 지지자 씨족의 투쟁역사로 박정희를 도통대는 대장 선비로 씨족사로 설명한다. 그래서, 민주당과 국힘 지지층의 역대 최대규모의 귀족 집단으로 생산성을 압도적으로 초과하는 집단과, 이 기억을 가진 층을 매수하는 정당성 매우 없는 살포성 복지를 유지한다.
민주당 지지층이 ‘노론독재’에서 조선공산당 및 남로당 인민공화국 논리를 소환하는 것이 불법이며 무효라고 해서, 국힘 지지층의 노인들의 기억은 유신체제 기득권자 기억이 적법함을 얻는게 아니다. 헌법재판소 판사들의 언어는 서양법이다.
진짜 대한민국의 문제는 국민소득 선진국 기준으로 완벽하게 서양법과 서양법전문가를 길러넣고, 귀족은 안하고 중인층만 쪼아댄다. 자기들 편 하층민들도 안고 간다.
유신체제에서 김대중지지자들이 반복한 말. 권력이 진리다. 진리가 진리가 아니라 권력이 진리다. 그래놓고, 일당독재로 저짝 무너뜨리면 진리다.
이 속에서 무슨 20대들의 문명 발전이 있다.
노론 두 당파의 과거 파먹기와, 그 과거 파먹기에서 엑스세대 전문가들을 노비로 굴러먹는 일은, 곧 끝난다.
한국경제의 미래전망은 엑스세대 전문가들이 유지된다는 조건이다. 이들은 곧 대가리가 똥이 된다. 조갑제기자도 지금처럼 원래 똥 가치의 머리가 아니었다. 하나의 사회가 작동됨은 후대가 그렇게 바톤 터치가 이루어져서 존재한다. 야구에서 그렇다. 박철순이 영원한 박철순인가? 선동렬이 나오고 박찬호가 나오고 류현진이 나오고, 이제 안우진이다.
과연, 한국에서는 투기적 자본증식(도박)에 미친 20대에서 오건영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 노동력은 해외에서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 어떤 나라들도 결국 그 국가를 이끄는 머리는 자국이 해결한다. 이 머리도 해결 못하면 노동력이 해외에서 올리도 없다.
필자는 70년생인데 88학번인 윤희숙을 비판했었다. 이 수준 아닌 언어 많잖아. 70년생이 과거 파먹고 씨족을 줄세우는 양반 어법을 사용한다. 이럴 때, 무슨 경쟁이 있나? 법위의 무한대 귀족연합에 일반인이 어찌 싸우리오. 귀족들은 일반인들을 억누를 수 있다. 그런데, 귀족들이 생각못한게 있다. ‘이런 후진국 멘탈’ 사회에 누가 투자 하리오.
씨족주의의 난무는 곧 공정한 법질서의 붕괴다.
1당독재도 1인독재도 안하려면, 씨족주의와 무관한 진짜 대단한 전문가들을 앞세우고, 그 전문가들을 보고 배우는 20대들이 있어야 한다.
근대화 정치가 결국은 영남봉건제에 명분적 포장 아니냐? 이런 환멸로 드러났다.
탄핵정국은 민주화신화가 전라도 노론독재에 덧 씌운 명분적 포장 아니냐? 환멸로 드러났다.
환멸이 환멸에서 끝나는 것이 지배층의 소망일 것이다. 아무도 공정한 법치를 대변안해야 귀족연합이 엿장수 맘대로 한다. 엿장수 맘대로 해야, 젊은 세대를 인질과 노예로(유신체제에서 호남 서민 노동력을 인질화하는 권력의 단순한 변주곡) 노인중심의 과거팔이 권력을 유지한다.
엑스세대의 어린시절과 20대에는 보고 배울 사람이 있었다.
나도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꿈이 멈춘 사회는 경제성장은 없다.
그런 꿈이 있으려면 공정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사족, 유신시대의 한국교회 영남유교에 너무 타협했고, 김대중체제 한국교회에는 호남의 무속신앙 섞인동학신앙에 너무 타협했다. 유신시대처럼 칼빈의 기독교강요만이 아니라, 지금은 신학이론이 많이 수입됐다. 한국교회는 진지하게 신학지식의 수요확장과 기독교 세계관 갖춘 사람들을 띄우는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사람의 책임감을 만든다. 그게 멈춘 사회는 사회가 망하고, 사회가 망하면 그 사회의 경제도 끝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유신시대에서 일반인들 걱정할 필요 없어 하는 논리는, 김대중체제에서 법치수호 신경 쓸필요로 바뀌었다. 귀족은 의무를 안하고 권리만 노린다.
그렇게 의무를 안하고 권리만 노리는 귀족사회에서, 사회의 구조조정은 권리만 행사하려는 근로계층에서 불가능할 것이다.
모두가 가난하여 똑똑해도 대학을 못가고, 박사모에서는 자기는 손학규보다 서울대에서 공부잘했는데, 부자가문인 손학규는 해외유학하여 잘나갔다는 자조감이 있던 시대. 그 시대의 어르신들 사회에서 어떤 지식으로 전문가는 수십인 시대였다. 탄핵정국에서 최소 수천명의 전문지식이 있는 시대에, 그들이 겁에 질려 아무도 발언 못하게 하는 사회를 유지하여, 굳이 감투 싸움하려면, ... 이런 불공정사회에 누가 20대가 순순히 도덕적으로 살겠나?
“일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는 단순한 박정희 우상화 슬로건이 아니다. 그 시대에 청소년들에게는 전인교육으로서 모범을 보이던 선생님들 기억과 겹쳐 있다. 이제 50대가 된 엑스세대는 이분들이 생각이 난다.
정치권아. 제발 좀 도와주라. 이게, 개인이기주의이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