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백낙청은 최근에 도산 안창호 선생을 밀고 있다. 필자는 아직도 연애도 못하고 뽀뽀조차도 못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의 [사랑]이라는 소설 영향이 지배했다. 춘원 이광수의 그 소설은 ‘안창호’ 선생을 진심으로 긍정했다. 그런데, 춘원 이광수는 ‘혁명가의 아내’라는 공산파 야유의 죄악이 있다.(필자는 그 소설이 강석경의 [숲속의 방]의 원형이라고 본다)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은 춘원 이광수의 그 소설에 극대노 했다 보다. 그래서, 민정당 시대에 교과서에 많았던 춘원 이광수는 문학사 삭제로 나타났다. 그리고, 원불교 백낙청은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빨아댄다. <찬양의 강요>와 <높임의 강요>로서 조선시대식 버전인데, 진심 엿먹어! 란 단어가 저절로 나온다.
군사정권 국정교육이 사라진 자리에, 공산파 조상숭배 신앙이 차지하여 숭배를 강요한다. 물론, 이분들은 박정희, 이승만 숭배강요에 극대노한다. 오직, 공산마을 조상신 연합만 숭상하라. 그 공산마을 조상신 연합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명분이자 이유다.
필자는 ‘영끌 자본론’으로, 지금 이 시대 지배계층이 공산마을 조상신 뒀다고 자본시장이 쑥쑥 크고, 그 조상신 아닌 쪽이 자의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을 바라본다.
우리 마을이라고 무조건 善도 아니고, 우리 마을 아니라고 무조건 惡도 아니다. 그러나, 조상숭배는 이분법적으로 조상숭배로 우리냐 아니냐를 나눈다. 또, 그 어법으로 국가조직차지하고 차지하면 미래세대를 좌우하려 한다. 권력을 차지한 직계존비속의 영구화를 꿈꾼다.
백낙청이 띄우는 모든 인물을 높이기 싫다. 냉정한말로 누군가에 조상신은 누군가에 ‘황당한 외지인’이다. 기독교인에겐 오직 예수님만이 주님이시다. 동시에, 기독교인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 신앙은 전국적으로 무조건 같다고 안 믿는다. 기독교인의 신앙 세계관이 전국적이나 국제적 영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니라 신앙 세계관 속의 성경의 하나님 신앙일 것이다.
기독교세계관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경제위기를 맞고 가난해질 것이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정말 중요한 가치가 중요하다. 탄핵 반대운동 대학생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라는 점에서,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 많다. 유교적 대를 잇는 신앙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을 탄핵 반대대학생들이 믿어주었으면.
히브리서 11장 1절의 “바람”은 믿음의 유전과 연결된다. 한글을 통해서 성경의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모든 지체들을 통한 하나님 역사와 연결된다. 조상신 숭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성경의 예수님만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는 대학생이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