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시험에 빵점 맞는 한국교회의 문제점
 
 
최근의 한국교회에서 성경의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냐? 했을 장면이 굉장히 빈발한다. 성경본문을 공유하는 다른 분들의 지적이 무섭지 않은 것이다. 생각해보자. 조갑제 기자가 쓰는 전문 용어 싹다 틀리다. 틀림을 아는 사람은 뭘 어떻게 할껀가? 기껏 해야 민법상 사기죄 재판인데, 손해액 산정 괴롭다고 사법부가 접수도 안하거나, 기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손절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아무렇게나 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내가 복음>은 성도는 안돼. 목회자는 돼!. 이렇게 가도, 뭘 어쩌겠나? 정조준하는 실명 비판해보자. 결국 제 얼굴 침뱉기이자 교회 명예 추락으로 서로 피한다. 아무렇게나 해도 다 된다.
 
탄핵정국 같은 국가적 망국 상황에서 목회자의 영적 부패가 끝내준다.
 
일베정게에서도 전광훈 세력의 국민저항권이란 농민반란=헌법세움의 문익환 의미의 편집증적 집착이 문제다. 특히, 전두환 민정당에 문익환에 줄 서서, 민정당에 아이고 무서워라!를 끌어냈다고 쳇바퀴 돌리는 일의 자책골 문제도 심각하다.
 
역시, 똑같다. 비 법률적 용어다.
 
동학교리는 오래된 약속의 지속을 전제하는 기독교 논리의 반드시 파괴를 지향한다. 목회자인데 동학세계관을 끼고 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전광훈씨에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무렇게나 하는 조갑제씨에 아무것도 못하듯이,
 
아무렇게나 하는 전광훈씨에 아무것도 못한다.
 
이게, 자유일까?
 
이렇게 영적부패의 최대치는 자유가 아니라 망국의 상황일 것이다.
 
전광훈 세력은 검색 한번만 해도 나오는 자료를 외면한다.
 
받아쓰기를 잘하자. 씨족이 다른 영역과 공통질서를 공유한다는 의미를 전제한다.
 
전광훈세력이 받아쓰기는 아니라, 엿장수 맘대로가 제일이다. 세상은 권력의 한 종족 독점의 무한대다. 씨족이 달라지면 모든 가치가 달라진다. 사회의 협력은 신앙적으로 사라진다.
 
한국교회가 2010년 이후 성경 계시가 아니라, 월간조선 독자 느낌이 압도한다. 기독교적 건국론의 민족복음화 운동 신앙 유산이 아니라, 조사쿠라 조갑제씨의 세계관에 빨리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보면서 통탄했다.
 
어쩌겠나? 뭐 말하느냐? 대형교회에 지금 집회하면 출석중인 노인할아버지들 있다. 이분들 이야기다.
 
어쩌겠나? 들이박나?
 
아무것도 못한다.
 
다만, 세상이 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