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의 종광대 2구역에서 주택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땅을 파니까 후백제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후백제 시대(통일신라 말기) 기와와 토성이 발견되었다.

 
 



문화재 현지 보존 결정이 나오면, 재개발 사업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200여명의 주민들은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현지 보존 결정이 나오지 않도록 전주시가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땅을 잃고 대출받은 돈은 그대로 빚이 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문화재를 그냥 파괴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정부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민 25만원 지급 등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고 이런데 돈을 써야 한다. 전국민 25만원 지급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서 서민경제를 파괴시키지만 문화재 복원은 관광자원으로 발전하여 외화(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 결국 지방경제가 활성화 되는 것이다. 


게다가 후백제 유물은 사실상 통일신라 유물과 마찬가지이다. 이때문에 통일신라시대 기와 및 건축양식을 알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문화재 복원은 고증이 철저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화적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주는 신라 문화재 복원을 너무 엉망으로 해놔서 사실상 다시 복원해야 하는 수준이다.

월지와 동궁은 조선시대 양식이다. 경복궁, 창덕궁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월정교는 조선 + 청나라 건축양식이다. 단청은 조선양식이다. 바탕색이 녹색인 단청은 중국 원나라~명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단청이고 그 이전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계의견과 달리 아치형이 아니라 일직선의 들보교로 복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와지붕도 한반도 및 신라와 전혀 관련없는 중국 남방지역의 풍우교(비바람을 피하기 위한 지붕) 양식이라는 것이다. 청나라 시대 중국 남방지역의 다리를 베낀 것이다. 







그동안 통일신라 유적 및 유물들이 여럿 발견되었음에도 저렇게 엉망으로 고증하여 복원하였다. 문화적 가치가 제로인 것이다. 이때문에 경주는 문화재를 복원 할수록 신라와 관련없는 조선시대 마을이 하나 더 생겨서 오히려 신라문화가 파괴되고 있다. 신라양식의 문화재는 첨성대와 왕릉 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네스코(UNESCO)가 경주시의 문화재 복원을 중단시켰다. 경주시가 추진 중인 630억원 규모의 동궁과 월지 복원 사업이 2019년 유네스코(UNESCO)의 반대로 중단된 것이 밝혀졌다. 특히 신라왕경 복원사업은 세계유산 훼손이 우려된다고 계획보고안 접수자체가 거부되었다. "계획안에 세계유산에 대한 개념 인식 자체가 없었다"면서 "이번에 보고된 계획안을 그대로 실행하면 경주역사지구는 진정성을 잃어 세계유산 삭제 후보 일순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재를 잘못 복원해서 오히려 신라문화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신라문화를 보려고 방문한 것인데 조선 또는 중국양식의 건축물이 있다면 다시 방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정확하게 고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무조건 거대하고 화려하게 만들 생각을 해서도 안되고, 신라시대 문화와 건축양식을 되도록 정확하게 고증할 수 있어야 한다. 기록이 부족하다면 기록과 유물이 있는 부분만 복원해야지 상상복원을 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문화적 가치가 높아져서 관광도시로서 성공하는 것이다. 짝퉁 또는 조작이라는 소문이 나는 순간 관광도시는 망하게 된다. 유럽과 일본에 관광객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유도 결국 문화재의 문화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다른지역도 마찬가지이다.

강원도는 최문순 도지사 시절 춘천 중도에 레고랜드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2011년 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하자 온갖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 발견된 것은 청동기 시대 유적이며 이후에 고구려 시대 석곽묘, 철기시대 유적등이 순차적으로 매년 발견되기 시작했다. 석기시대, 청동기 그리고 삼국시대까지 8천 년간 누적된 9천 점 이상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청동기 시대 유적>

<고구려 석곽묘, 돌덧널무덤>
 

<고구려 석곽묘에서 나온 금제 붉은고리 귀걸이>
 
 
<고구려 석곽묘에서 나온 분표 출토 금제이식>



이후에는 고인돌 유적 170기가 집단으로 발견되었다.
 
<중도 고인돌 유적>



심지어 1,612개의 고대시대 집터까지 발견되어 8천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가 중도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대시대 8천명이 거주하던 대도시 터>



하지만 강원도지사 최문순은 중도 전체를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보호하지 않고 땅을 파헤치고 레고랜드를 만들었다. 유적과 문화재를 파괴시킨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문화재 복원은 수준급이다.



1. 나고야성
아래 사진은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설한 나고야 성이다.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으로,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군 폭격으로 모두 불에 타 지난 2002년부터 24년 째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복원 현장은 관람객들에게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

3층 높이에 설치된 이 통로를 따라 걸으면서 관람객들은 문화재 복원현장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지붕에 올라가 서까래를 까는 작업을 하는 목수들의 모습에서 철저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즈치다케(관광객) : "이 건물이 없었을 때부터 돌로 기초를 쌓는 것부터 지켜봤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오카즈츠(관광객) : "옛날 문화재들을 당시 기술을 사용해서 복원하는 모습이 진짜 대단하게 보입니다."

문화재 복원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부실 공사를 막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한 복원을 하기 위한 것이다.

시모야마(나고야 성 관리소장) : "시민의 이해를 토대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복원 과정을 지켜보도록 하면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근 복원된 '혼마루 고텐'.

 
<나고야성 혼마루 고텐>


드넓은 다다미 방에 섬세하게 만들어진 창살이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미닫이 문마다 그려진 화려한 호랑이 금박 그림은 세밀한 문양까지 그대로 복원되었다. 이 그림 하나 복원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시모야마(나고야 성 관리소장) : "원래 그림의 1/2, 1/3 크기로 그려서 전체 균형을 맞춘 뒤에, 실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복원에 필요한 비용의 1/3은 기부로 충당되고 있다. 복원공사 공개와 함께,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2.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찰인 '기요미즈 테라'.



                                                                                 <기요미즈 테라>


'기요미즈 테라'는 10m 절벽 위에 나무 기둥으로만 세워져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하다.

모두 170개의 나무 기둥이 절을 떠받치고 있다.

오랜 세월 풍상에 시달리며 낡거나 썩은 외곽의 기둥 일부는 교체 됐고, 일부가 부식된 기둥은 그 부분을 도려내고 새 목재를 박아 넣었다. 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수시로 수리하거나 복원하고 있다.

히로베(목공 장인) : "기본적으로는 가능하면 당시 모습, 당시와 같은 공법으로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복원과 수리에 쓸 나무를 장기 계획을 세워 기르고 있다는 점이다.

고미야(사찰 복원 책임자) : "산에다 (기둥 용) 느티나무를 심어서 장래를 대비해서 키우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죠."

기요미즈 테라가 직접 산을 구입해 나무를 키우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봤다.

산 속에는 우뚝 솟은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절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을 교체해야 하는 시기는 앞으로 400년 이후, 기요미즈 테라는 400년 이후 복원까지 치밀하게 계획하며 조림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3. 킨카쿠지(금각사)
아래사진은 14세기 말 장군의 별장으로 세워졌다가 사찰로 봉헌된 킨카쿠지, 금각사이다.

 



3층 전각이 모두 화려한 금박으로 돼 있어 특히 서양 관광객들에 인기이다.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진 금각사의 아름다운 자태는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이 킨카쿠지는 지난 1950년 어린 승려의 방화로 절이 모두 불에 탔다.

이후 일본 정부는 1999년까지 무려 50년 동안이나 공사를 하면서 완벽한 복원에 성공했다.

가로. 세로 10cm 금박을 20만 장이나 붙이는 작업, 그것도 보통 금박보다 5배나 두꺼운 것을 촘촘하게 붙이는 난공사를 선택했다.

나카타(문화재 복원 전문가) : "세밀한 세공 등 옛날의 장인기술을 지금 기술로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을지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 구마모토 성
아래사진은 임진왜란 때 일본 측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세운 구마모토 성이다.





서기 1877년 세이난 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아래사진은 2014년 복원된 '혼마루 고텐' 이다.

 
                                                                               <구마모토 성 혼마루 고텐>


성터에서 발견된 설계도를 토대로 용마루와 기와 한 장까지 치밀한 고증을 거쳤다.

이렇게 옛 모습 그대로 완벽한 복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기술이 끊기지 않고 대대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혼다(구마모토 성 관리소장) : "당시 기술을 잘 알고 있는 장인들을 잘 육성하는 것이 문화재 복원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각 분야에서 전문적 기술을 갖고 있는 장인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마무라(문화재 보호 심의위원) : "문화재를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것이 없으면 완벽한 복원은 거의 어렵다고 봐야됩니다."


일본은 원형과 똑같은 완벽한 복원을 위해 철저한 고증과 함께 수십년의 시간을 들이며, 수백년 이후를 내다보며 복원용 나무를 키우고 복원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도 확실하고, 완벽하면서, 세밀하게 문화재를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복원 과정은 비공개에, 길어도 10년 이상 끌지 않는 졸속 복원으로 부실복원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부정선거(선거조작), 무안공항 참사도 결국 한국인들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