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의 지옥문은 국가주의때문에, 김대중 체제의 지옥문은 통일담론때문에 열리는 이유 세상은 변하면서 안 변했다
 
 

군사정권에서 이런 담론이 유행했다.
 
일제 시대에 나라가 없으니까 국가에 충성, 6.25 때 국방이 약하니까 국가에 충성, 가난의 시대에 가난하니까 국가에 충성 ....
 
이렇게 영남 유교에 덧 씌워진 애국담론은 권위주의체제로 지속됐다.
 
을 배출한 宗家는 특수계급으로 바뀌면서, 여론에서 고립된 별개지대화됐다.
 
이때에 유행한 표현이 영남 유교에는 예수 신앙이 없다. 타자적 존재와 대화가 없다.
 
국가주의는 영남 유교 중심의 영남 봉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화이다.
 
통일담론도 이젠 명백하다.
 
민주통일은 그냥 호남 봉건제로 노론독재에서 조선공산당 및 남로당 인민공화국 중심으로, 비 호남을 반동몰이하는 종족권력일 뿐이고,
 
자유통일은 호남 봉건 권력에 시다바리하는 영남 붕당의 종족권력일 뿐이다.
 
유신체제는 의 종신권력이다.
 
군사정권은 권력잡으면 최고 지도자가 오래갔다. 아랫사람만 바꾸었다.
 
그때 박정희 전두환 줄 잘 탔다고, 김동리 서정주 선우휘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김대중체제는 제후귀족의 종신권력이다.
 
지금 이 시대 지배하는 아이콘들은 거의 대부분 30년이 넘었다.
 
조사쿠라 조갑제, 진중권, 유시민, 백낙청 등 확실히 문화권력은 다른 의미로 똑같게 고인물이다. 고인물로 존재하는 유형은 공통분모가 있다.
 
부정선거 없다,.... 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것은 조선시대로 칠 때 동일한 유교 색깔로 보이는 이들의 장기권력이다.
 
물론, 유신체제도 그랬다. 지금 색깔의 양반 당색의 제도권 진입이 차단됐다.
 
국가주의는 조화롭고 균형되며 안정의 아이콘으로서 을 상상하지만, 실제는 권위주의가 됐다.
 
통일담론은 민족의 숙원으로서 남북이 아우르는 조화롭고 경제 성장하는 사회를 상징하지만, 조선시대 종족권력의 부활로 씨족마다 모든 가치관이 다 달라지는 극도의 무질서가 됐다. 무질서가 싫어서 짱 나세요? 하면, 바로 일당독재 공산전체주의.
 
군사독재 때는 공산주의 및 좌파정보가 통제가 됐다.
 
김대중체제의 통일담론은, 국민 눈치 못 채게 자유민주 법치주의 시장경제 지식이 통제가 된다. 특히, 조사쿠라 조갑제 기자를 포함해서, 군사정권에 힘들었다고 하면서 지난 30년 승승장구하는 보수측 논객들은 원불교’(사탄교)코드를 가진다. 조갑제 기자는 제대로 된 개념정의의 등판 자체를 다 틀어막고, 개념의 재정의를 주장한다. 이석연 변호사도 헌법이 무조건 낡아야 한다면서, 원불교(사탄교)인들의 종족권력에 유리한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사정권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이제 이는 원불교인들은 이렇게 바꾸었다.
 
老論은 조선시대에 나라를 팔아도 조선선비는 깜짝 못했다. 한국문학을 연구한 사람은 누구나 안다. 1905년부터 1910년 사이에 모든 조선선비들이 다 알았다. 아무것도 못했다.
 
여당과 야당이 동일하게 원불교(사탄교) 박지원이 중심을 가지면 누가 어쩔꺼냐? 원불교(사탄교) 박지원이 중심가진 영역의 당파성에, 윤석열이 반동분자라는 어법을 쓰는 조사쿠라 조갑제기자를 보수우파로 불러주는 게 이 사회의 비극이다. 제대로 된 보수논리가 등판 자체가 막힌다는 이야기다.
 
지금 지배층은 어쩌면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민주정의당 반공교육은 왜곡이다.
 
주체사상 수입없이, 김일성주의 수입없이, 마르크스주의 수입없이,
 
문맹 농민의 직계 후손들로, 여전히 아메바 머리 대중들인데 공산주의 1도 모르는 무당신앙 출중한 대중들이 하는 공산혁명에 손대지 마라.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미동맹파 자유민주 국민을 비 국민화한다.
 
고문수사와 공권력 남용에서 소외지대를 불쌍하다고 손잡아준 세력들을 이렇게 확실히 개차반대접을 한다.
 
거듭 밝히지만, 여야가 한통속인 원불교(사탄교) 박지원 중심의 사회조직에 대하여, 그 누구도 제대로 비판하는 사회교체를 이룰 수 없다. 그들이 한국학에 깔아놓은 정보로는 천년 이상을 지배했다고 한다.
 
몰라서 사회가 이 꼴이 아니다. 제대로 된 사회정보의 대부분은 이들세력이 번역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문재앙 구호에서 연상되듯, 한국의 노론 지배세력의 꿈은 한국 국민을 노비화한 꾸러미를 배경으로, 국제사회를 흔드는 꿈이다. 한국학에서 고대 사회의 노예제 정서의 미래적 복원이다. 이게 통일담론의 실체. 이를 중국경전 사고로 보면 이렇게 보인다. 필자는 그 사고가 아니라 서양철학으로 보니 대부분 이렇게 보일 것이다. 이성을 가진 일반국민은 악마다!’라고 판단되나, 너는 죽었어!! 바른 말 하니! 이성 가진 국민보다 아메바 국민이 더 많다. 아메바에 치어 죽어 봤어? 라고 할 것이다.
 
모든 이들이 각각 자기 중심으로 자의적 어법을 과시하여 전부 분열되고, 아무도 원불교(사탄교) 박지원 중심에 덤빌 수 없는 사회.
 
여기에 일베노인의 국민저항권타령하는 개소리도 끼어 있다. 하나의 예시일 수 있는데, 조갑제기자가 문익환 목사가 만든 자의적 용어를 쓰고, 이를 무속신앙으로 자유자재로 쭉 이어서 쓴다.
 
법대에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지? 우리는 된다. 우리 씨족은 된다. 조선시대 내내 성리학에서 같은 성리학공식도, 마을마다 다르게 쓰지? 로스쿨에서 안되는게 우리는 된다.
 
로스쿨도 역시 마찬가지다.
 
서양법으로서 로마법을 가르쳐야 할 대학이 조선왕조 사대부 씨족 색깔로 법 왜곡이 다반사다.
 
군사정권은 법 위의 초월적 임금.
 
김대중체제는 이렇게 사방팔방 다 달라진 것을 px 심부름 가는 졸병처럼 작동하는 바지 임금이 다 케어한다고 몰아간다.
 
군사정권은 초월적 임금에 대드는 김대중에 오랑캐몰이.
 
김대중체제는 30여년 원불교(사탄교) 박지원 중심의 부족연합(통일전선조직)에 오랑캐 박근혜, 윤석열로 나타난다.
 
군사정권을 이분들은 국가독재로 규정했다.
 
지금 김대중 체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부분의 실체는 동학교단, 그중에서도 원불교 교단 지도부의 작동이 강하게 의심된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인과 미국에 은폐된 이 정도의 일사분란함이 불가능할 것이다.
 
조선시대식 당쟁을 하면서,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이상.
 
이 사회는 김영삼 정권 시작부터 예고가 됐다.
 
춘추전국시대로 돗대기 사회는 백성들의 고통이 극대화된 사회라고 중국학책에 기록됐었다. 그때도 알고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학계의 상식이었다.
 
백성들의 고통의 극대화가 아니라, 자유의 시대다.
 
귀족은 부정적 의미로 자유롭겠지.
 
이젠 그만 araboj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