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영어와 일본어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영어는 어느 정도 학술적인 글을 읽을 수 있을 수준이 되었지만,
일본어는 이제 막 중급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년 시절에 조센어 같은
불완전한 언어로 교육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난다.
인간의 언어 능력을 관장하는 뇌 영역의 시냅스는
10~12세 사이에 완전히 그 형태가 형성되어 정착하게 된다.
이 시기를 지나면 언어 사용 능력은
주로 그 형태의 기반 위에
학습과 노력의 여하에 따라
신경 가소성에 의존 해 변하게 된다.
위의 시기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 학습을 하고 생활을 하고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우리의 언어 소프트웨어의 기본 사양이
결정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2세가 넘어가기 전까지의 모든 시기를 말하는 것.
10세부터 12세 사이에만 벼락치기로 잠깐
지적, 언어적 자극을 풍부하게 받는 것이 아님.)
물론 이 후에 노력하면 얼마든지 언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형성된 사양의 차이는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언어를 배울 때는 뜻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고,
용법과 용례를 무시하며 대충대충 단어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영미권이나 라틴어권에서는
단어 하나를 배울 때도 어원부터 시작해서,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적절하게 사용 될 수 있는지를 따지며,
단어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뉘앙스 까지 신경 써서 학습한다.
이들에게는 어휘나 표현 사용의 적절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예를 들어, 똑같이 '믿는다'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라도
사람을 믿는 것인지, 사실 관계를 믿는 것인지에 따라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그들에게는 단어 하나 하나에 근본과 역사가 있고,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이 있다.
강도의 차이가 있고, 뉘앙스가 있고, 격식과 비격식이 있으며, 감성과 이성이 있다.
직접적이고 강한 주장,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표현들이 있다.
어휘의 종류의 끝을 알 수 없는 묘사와 서술과
비유적 표현을 가진 운문이 있고,
철저하게 사실 관계를 따지는 논리적인 표현을 위한 글이 있으며,
각종 학문의 분야가 있다.
(심지어 영어같은 경우는
감정적이고 감각적 어휘는 게르만, 노르만계에서 온 어휘를 사용하고
법이나 학문 전반에는 라틴어에서,
예술과 교양에 대해서는 주로 프랑스어에서,
학술에 대해서는 그리스어에서 차용한 어휘를 사용한다.
어휘만 해도 이렇게 다양한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언어를
어떻게 쉽게 되는대로 대충 대충 활용하겠단 마인드로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겠는가?)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일본 현지인들은 한자가 모국어 사용의 토대가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유치원 때부터 한자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많은 양의 한자를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다.
단순히 한자도 아니다.
여러 훈독과 음독이 있고,
맥락과 어휘의 차이, 발음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어휘 자체가 비유적이고 시적이어서
그러한 감각을 가지고 어휘를 대하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감을 잡기도 쉽지 않다.
배우는 것 자체만으로 뇌가 자극을 받고
개발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언어라고 봐도 무방 할 것 같다.
일본어 전체가 일종의 시와 같고, 일본인은 일종의 시인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조센1징들의 풍류와 교양과 언어의 예술적 감각을 모르는 단순무식한 빡대가리로는
大丈夫가 왜 괜찮다가 되는지 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역사적 맥락과 사고의 방식 비유가 주는 예술성이람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가
단어 하나에 아주 폭발적이고 집약적으로 녹아있는 언어의 체계를
그들의 단순무식한 머리와 사고 구조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언어에서부터 근본이라곤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본래 건장한 성인 남성이란 어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들만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생생하게 상호작용하고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더 했던 조상의 혼이
말을 걸어오는 그런 경험 따위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괜찮다라는 말을 할 때 마다 대장부의 의미를 생각하며
어떻게 어려움 가운데서 굳세게 머리를 들고 살아가야 할지
삶을 헤쳐나가야 할지를 생각 해 보는 그런 경험 따위는
어휘나 표현의 뜻도 고찰 해 볼 생각도 하지 않는 조센1징들은
절~대로 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렇게 늘 단련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국어를
학습하고 훈련하며 그들은 한자가 가진 뜻을 모국어의
체계와 맥락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능숙한 언어 사용자로 성장하게 된다.
반면 조센식 1:1 단어 매칭식 학습으로는 제대로 된 회화나
글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문법 구조의 복잡한 규칙을 외우는 데에만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상술한 체계적이고 섬세한 교육 시스템에서 10년 이상 훈련받은 사람들의
상황 인지 능력과 화용적 능력은, 모국어조차 맥락을 구분하지 않고
무작정 어휘를 끼워 넣는 식으로 배워온 사람들이 뒤늦게
습득하기 어려운 능력이라고 본다.
본인은 물론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변명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을 하겠지만 현저하게 질이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
그 것을 기반으로 학습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현타나 조센에 대한 환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