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0/02/21/2010022100006.html
조승수 의원은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인민노련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조로 남한에서 사회변혁을 이뤄야 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며 “마 판사는 지도부에서 이론교육과 선전 부문의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인민노련 출신으로 민노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통화에서 “마 판사는 당시 핵심 이론가였지만 이미 20여 년 전 일 아니냐”며 “인민노련 출신들이 한나라당에도 몸담고 있는데 그 문제를 판결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말했다. 마 판사는 인민노련이 제도권 정당화를 꾀했던 1991년 한국노동당 창당에 참여했다.
1992년부터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서 정책국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1993년 한국외국어대 교지에 실린 ‘민중운동의 개혁과 진보정당 운동의 새로운 모색’이란 글을 통해 “군사파쇼정권에서 (김영삼 정부의) 부르주아 체제로 확립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라는 목표를 수행하는 투쟁 조건에 변화가 왔다”며 “진보세력의 정치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진보정당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마 판사는 진로를 바꿔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2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다』(2009.11.12, 동아닷컴).
마 판사는 2009년 10월 30일 평소 친분이 있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출판기념회 겸 후원회에 참석해 30만원의 후원금을 낸 사실이 알려져 법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두고 논란을 빚었다(09.12.1, www.dailyn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