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나라 황부섭정왕 도르곤>
어느날 도르곤이 조선에 사신을 보내서 일본도를 바치라고 명령하였다. 칼의 설계도를 조선에 보낸뒤 이 설계도대로 일본에서 일본도를 만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도르곤은 조선과 일본 모두 청나라의 속국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에 조선 조정은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본래 칼같은 병기(兵器)는 해외로의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서 외국에서 제조하기가 어렵고, 이 일을 일본에 알리면 조선이 중국의 꼬붕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국가의 체면이 손상되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로서는 기미(羈縻)하는 나라여서 진심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기의 출입은 더욱이 그 나라의 금령입니다. 하물며 감히 견본을 그 나라에 보내어 검을 제작하려고 도모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승정원일기 1647년 10월 10일 기사)
이때문에 일본도를 일본에서 만들어서 바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청나라에게 알렸다. 하지만 도르곤은 무조건 만들어오라고 요구하였다.

"일본도를 만들어오지 못하면 조선왕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조선 조정은 1년 이상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자칫 도르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 침공을 당할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조선 조정이 어찌할바를 몰라서 발을 동동구르고 있을때 청나라 사신이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조선 조정은 청나라 사신의 의견대로 조선에서 일본도 2자루를 만들어서 도르곤에게 바쳤다. 아울러 청나라 사신에게 뇌물(은자)을 주고 도르곤에게 잘 얘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신들이 인사하고 나온 뒤에 정사(鄭使)가 이형장을 시켜 신들에게 말을 전하게 하기를, ‘예전에 보낸 환도(環刀)의 견양은 일본에서 제조하기를 도모할 수 없다면 도로 사행 편에 부쳐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번에 사은하는 사행을 다시 보내되 그 견양대로 귀국에서 두 자루를 정밀하게 만들고 말을 잘 만들어 보내기를, 「그 견양을 지금까지 머물러 두었던 것은 반드시 어떻게든 왜국에 시도해 보려는 것이었는데, 어찌할 방도가 없어 부득이 본국에서 만들어 보냅니다. 하지만 품제(品制)가 좋지 못하여 매우 황공합니다.」라고 하십시오.’하였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이대로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승정원일기 인조 27년(1649) 1월 23일)
"청나라가 보내온 견본용 환도(環刀) 두 자루를 군기시에서 이미 만들었으니,. 반송사의 장계대로 그 견본용 환도 두 자루까지 포함해서 해조로 하여금 부지런하고 성실한 금군(禁軍)을 특별히 정하여. 파발로 밤낮을 가리지 말고 내려보내어 안주(安州)와 정주(定州) 어름으로 뒤따라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승정원일기 1649년 2월 14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