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생도 다음 세대에 인문학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으나, 모든 한국의 번영은 여기서 끝인데 그럴 기회가 있겠나?
디테일한 한국현대사를 논하는 논문을 쓰면 쉽게 학술적으로는 벽돌책 나오는데, 그것을 읽어줄 출판문화 독자층이 다음세대에서 나올까?
경제위기가 온다,... 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일.
극복의 리더십이 없다. 여야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유민주 교과서에 익숙해 있다.
1987년 및 80년대 후반, 유신체제 질서를 깨뜨리려는 김대중 지지파는 군사정권을 노론 양반으로 설명했다.
노론 양반=부르주아반동 /김대중진영=민중연합
이런 공식이었다.
영남 왕권제로 경상도식 수직종속에 있어서 이를 긍정하는 것은 서방자유민주가 아니다.
이렇게 바라보던 데모층이 절대 이해 못하는 세계가 있다.
군사정권 영남 유교의 파시즘적 권위주의에 길들어서 숨막힌다고요! 하던 시대는,....
어떻게 전라도 유교가 모택동주의 민중혁명에 닿는지를 이해 못했다. 이해를 못했으니까, 대학가에 비주사파 민족해방담론이 가득찼다.
한국의 양반들은 세상 걱정보다 오직 자신의 감투 권력 딱 하나만 신경쓴다.
우리 약자좀 신경써달라고. ..... 공권력 남용 어쩔 거야.
그랬다.
지금은 이젠 여야 지지층의 무속신앙이 대방출. 사회의 무질서는 넘쳐난다. 무질서는 아무도 컨트롤 안하고 붕당싸움에 일관한다.
유신체제에서 1인지도자 예찬하며 감투싸움하는 것은,
이젠 의회내부의 송시열, 한명회(박지원, 김무성) 줄서서 감투싸움으로 바뀌었다.
경제위기 극복의 리더십이 있으려면, 적어도 무속신앙에 마비된 1차원적 대중이 작고, 이성언어를 말잘듣는 군중이 있어야 한다.
으잉. 귀족에 들이박을 대중이 넘쳐난다고?
유신체제는 반론을 억압했고,
김대중체제는 진실을 주장하는 자가 언제나 독백만 가능하게, 대중들의 우민화를 급진화한다.
군사정권의 왕은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김대중체제의 왕은 귀족붕당의 뒤치따거리 하는 세도가문 바지권력이다.
필자는 통일에 찬성/반대가 아니라 ‘믿다/안 믿다’의 언어로 동학신앙으로, 의회독재자들에 물개박수노비로 고정하는 이데올로기로서 통일담론을 바라본다.
법치국가는 국민주권으로 책임을 다하는 마인드.
기독교는 성경의 진실 수호
시장경제는 시장경제의 자기책임
사회학은, 그런 자들이 어울린 신비성 없는 세상적인 교회
정치학은, 그 사회에서 진실과 권력의 만남
시장경제솔루션은 이성언어가 국민에 상당히 퍼짐을 전제하여 작동한다.
국가조정 이야기하면 알아듣는 사람도 없지만, 설사 있어도 책임전가한다. 특히, 못알아듣고 아는체도 굉장히 많다.
한국 지배층이 다시 또 다르면서 똑같은 일에 빠진다.
군사독재 기간 내내 경기침체에서 외면 받은 서민의 삶을 김대중지지자는 호소한다.
그런데 이분들은 김대중체제 30년 내내 무질서의 극대화로 소외된 층은 외면한다.
군사독재에 기득권자는 김대중체제 기득권자다. 이쪽 저쪽 줄바꿔타면서, 아무런 개혁안하고 이익만 먹는 층이 보인다.
필자는 조갑제씨 생각에 많이 원망한다. 조갑제씨 세대는 그토록 진심으로 진정으로 전라도 양반가문만 행복하고 모두가 고통이었던 조선후기 무질서를 그린다. 이 조갑제씨의 행복한 전망은, 전국민에 경제위기에서 답이 없는 시대다.
조갑제씨만의 증상이 아니다.
일베에 동학신앙 믿는 대부분은
경제학의 기초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처럼 법과 제도를 기독교인의 이익으로보면서, 정말 시장경제 살려주게 똥물경전 앞서지 말라는 애원, 애원을 외면한다. (그러면 기독교가 유리해)
그래놓고 답이 없는 위기로 빠뜨렸다.
이게, 한국의 양반이다.
이제, 한국 양반들은 미국타령, 딥스타령, 중국타령, 등등 외부요인으로 말한다.
아니!!
원래, 한국 양반 민낯이다.
이 포기관념이 빚어지는 답이 없음이. 사실은 심각하다.
지난 30년 군사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은 너무 악랄했다. 위기극복을 위한 임시변통의 모든 요소는, 정쟁 태클의 요소로 차지한다. 경제위기가 온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거. 여기에, 진저리나게 당한 사람들의 미래 학습효과. 무질서를 왜 바로 세워? 이런 포기 심리의 유발이다. 그래서, 어부지리를 공산파에 유도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