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과 ‘탄핵’의 이면을 살펴본 한국인들은 ‘경제위기’를 직감한다.
‘계엄’은 경상도 유교로서 왕=대동의 ‘我’의 보존을 위한 씨족윤리에 덧 씌워진 국가긴급권이다.
‘탄핵’은 전라도 유교로서 종족=대동의 ‘我’의 보존을 위한 씨족윤리에 덧 씌워진 의회의 탄핵소추다.
미국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탄핵을 반대하며, 미국 자국 현실에 덧 씌워서 설명하는 방송을 만든다. 사실적 정확성은 의미가 없다. 미국정부가 탄핵을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미국 자국민 기준으로 설득할 수 있도록 설정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마치 바이든 미국의 트럼프 이지메 유사함을 당한 듯이 미국은 설명한다. 사실은 17-19세기 노론독재 300년의 계승이자 그 연장선에서 남로당의 반동분자 척결 모드이고, 매우 아시아적 현상이 실제적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맥락에서 ‘사실’을 원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촛불에 의한 정부전복을 바라지 않음이 핵심 메시지일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같은 서로 다른 종족윤리가 충돌한다. 이게, 진짜 진실이다.
‘황당계엄’을 긍정하는 쪽은 경상도 유교나 경상도 동학신앙으로 포장해서 설명한다. 반대로, 탄핵소추로 내란죄까지 설명하는 쪽은 멀리 1997년 전두환 재판에 이르는 호남동학파 종족의리로 이어진 호남씨족신앙의 보호까지 포장된다.
생산성에 비해서 너무 많은 부채를 진 기업과, 그 기업부채가 터지면 연쇄적으로 소득이 안 나오는데 부동산 가계부채를 진 어마어마한 문제에 걸쳐 있는 상황에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안 터지는 것보다 터진다고 보는게 상식적이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느 정부가 정부정책이 가능할까? 군사독재 옵션이 불가능하고, 상호간 의사소통 진흥에는 양반계급이 일체 협력 안하겠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인 부채로 덮어버리는 것이 절벽에 처한다.
그 이후의 경제정책은 뭘까?
민간의 시그널은 확실히 서로 양쪽에서 180도 다르다. 영남은 영남 중화사상으로 영남 사람들은 모든 국민이 그 영남 천하 중심을 받길 바란다. 호남은 호남 중화사상으로 호남사람들은 모든 국민이 그 호남 천하 중심을 받길 바란다.
부채 버블이 터진다는 것은, 재산이 있으신 분들은 재산 증식의 기회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귀족은 세상이 붕괴됨을 어떻게 책임지느냐는 생각을 안한다. 요즘 연기금이 증시 붕괴에 땜빵하러 나서신다. 부채버블 터지면 증시는 전고점 회복에 최소 5년. 길게는 20년이 소비될 수 있다. 부채버블 터지고, 국민의 연기금이 상당히 녹아내린 이후에, 정부가 이러라고 존재하는가? 란 회의감이 들 것이다. (필자는, 지금 연기금 방어 등판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게 상당히 녹아내릴 경우에, 국민에 뭐라고 말할 것인가? 이 말의 준비는 돼 있나?)
경제 성장은 상호적 사회신뢰 속에서 생산요소의 투입의 증대로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부채 경제는 한국의 종족주의를 그대로 놔두고, 사회신뢰가 1도 없이 덮어버리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애시당초 윤석열 정부는 탄핵 안 당할 수 있었고, 정국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문재앙의 평양선언-종전선언 수사를 하거나 원불교 백낙청 분단체제론의 헌법 국가 살해 문제를 의제화하면 됐다. <황당 계엄>은 경상도의 ‘왕 대동’ 유교원리로, 결국 전라도 동학(전라도 유교)의 헌법에 위배되는 것을 수사한다고 식겁한 원불교 박지원은 전두환 재판 내란죄 몬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측에서 ‘민주화운동’이 공소시효가 중단되지 않은(계속된 거짓말은 공소시효가 중단 안됨) 사기극 아니냐는 의문을 진지하게 가진 것이다. 미국 국민 내부로 한국에 ‘노론독재’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 자국민은 미군빼! 이런 이야기나옴)
필자는 ‘이재명 이완용’ , ‘문재인 이완용’짤의 진실처럼, 90년대 전두환 극복하며 김대중 김영삼 정권에 줄 섰던 동학할아버지(그때는 40-50대)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군사독재는 조선시대식 종족충돌은 안된다면서 독재정치를 정당화했다.
87년 6월의 민주헌법 쟁취는 개신교인이 개심하여 서양법을 수용하게 노력한다는 전제에 있다. 그렇게 요구하고는 노력은 어느 순간 멈췄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붕당정쟁으로 일본군대에 이로움주고, 조선시대 말기에 충돌로 일제에 이로움 준 과거의 복사판으로 돌아간다.
미국 트럼프는 미국 건국세력 계승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론 및 민족복음화운동세력의 기독교적 건국론에 있다.
그런데, 2010년 이후의 복음통일담론은 매우 수상했다. 이때부터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사상-특히, 원불교-에 종교혼합의 죄악이 심각했다.
영남 동학파 일베노인은 ‘왕 =대동’으로,
호남 동학파 원불교 박지원은 ‘종족=대동’으로,
영남 동학파이자 사쿠라 파 원불교 김무성도 ‘종족=대동’으로 선다.
대구 경북 동학파는 인문학에 쥐약이다. 그리고 김영삼 시대 이후로 비정상적으로 원불교 박지원파의 헌법 위반에 대하여 침묵한다. 대구 동학 기준으로는 상생 사회를 상상하나, 30년 동안 1초도 있은 일이 없는 세계다.
탄핵소추가 법의 수호가 아니라, 광주전남 원불교 귀족의 잇권 보호를 위한게 아니냐는 진지한 의문이 돈다.
그런데, 이 순간 국민에겐 87년 6월의 약속 중에서 하나님 앞에 진실한게 어디있나? 전부 싹다 공소시효 중단 안된 사기 아니냐?
김대중 어록집의 ‘민주주의 ’자체가 사기다. 호남씨족의 씨족의리다.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앞에 죄를 논하지,
경상도에 전라도가 죄다.
혹은
전라도에 경상도가 죄다,를 논할 수 없고 논해서도 안된다.
모든 시그널이 다 망가졌다. 권력분립론의 교과서인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은 법은 시스템을 설명해야 하고, 그 법의 수호는 귀족이라고 논한다. 그런데, 한국은 法은 종족을 설명하고, 그 법의 수호는 아랫것이 되고 있다. 귀족이 법의 수호를 안한다.
한국기독교인은 다 안다.
기독교적 건국론은 결국 동학사상으로 설명한다면 <향벽설위>에 속한다. 40-50년대생의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사상 할아버지들은, 향아 설위가 맞다. 씨족주의 기준의 종족적 자아를 수호해야 모든게 잘된다. 친북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의 말을 반복하며, 종족적 자아를 강조했다.
그래서, 조상신을 잘둔 종족의 귀족은 법 밖이다. 이런 논리에서, 노동력의 투입이 늘어날 가능성은 제로다.
한국교회는 1930년대 독일 교회 이상으로 몇 명만 복음수호하고, 목사님 혹은 교파 교단이 알아서 하겠지 정신 나간 상태로 빠졌다. 그러니까 나오는 상황이다.
일베 노인 및 용산 대통령실에, 87년 박종철 때 김수환 추기경님 생각만큼 국민공동체를 서양법적으로 설명하는 인문학 설명이 없다. 그냥 영남 양반의 씨족 원리 복원으로, 양반이 이리 오너라! 해야지 법앞의 평등하니? 전라도 양반들은 더 심각하다. 인문학 학문이 강하니까, 자신들의 부도덕한 권력욕망을 인문학 논리에 은폐한다.
조사쿠라 조갑제기자와 지금의 조중동 매스미디어는 ‘종족=대동’의 호남씨족종교 상징만 반복한다. 서로 다르게 개념 쓰는 현상을 수정안한다.
한국경제 위기가 나오는 근본 계기는 지금 보훈부에서 나오는 해외 선교사에 대한 조상숭배적인 접근법(이분들을 성경적 삼위일체 신앙이 아니라, 조선유교 개념으로 기독교도 해결한다)에서 모든 원인이 자리한다.
범법에 대하여 혼나지 않고 지나가는 성경 논리는 없다. 국민공동체는 똥물신앙에 오염된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기독교신앙으로 거듭나는 속에서 국민은 회복될 수 있다.
핵심 메시지.
구한말 한국의 신분제와 종족 충돌 상태의 재탕으로 돌아가서 빚어진 무질서는,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론에 입각한 서양법 문화의 온전한 회복으로만 극복된다. 이 상태까지 망가진 상황에서 고난 없는 극복은 불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