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경화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특징은, 관용으로 이미지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안해야할 관용을 한다. 자기 편이면 모든 것을 용납해준다. 같은 쪽에 선 자들이라면, 
그들에게는 윤리를 초월하는 당리당략적 관념이 있다. 

정치체제라는 건, 건물과 같아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역사상 살았던 사람들이 
동의할만한 기준을 기둥으로 삼아야 유지가 되고, 그렇게 기둥을 올바르게 세운다 하더라도 
사람 자체가 거짓되고 변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수립된 체제가 일관지속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사실을, 자신들의 막연한 자유를 위하여 애써 부정하는 좌경화된 사람들은 
앞서 말한 이미지관리의 수단이었던 관용의 범주를 무제한적으로 넓혀, 그들 서로가 서로를 
가스라이팅하고 속이고 등쳐먹어도 그것마저 용납하는 매커니즘으로 변태적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소위 보수에 속한 사람들은 일관지속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류역사가 보여주는
상식적 진리의 기둥들로 국가의 체제를 잠깐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려는 정직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열성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위로 돌아감은, 올바른 관념을 가진 보수에 속한 사람들도 
'사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초월자가 아니기에, 올바른 체제를 구축한 희생의 뒤따라 오는 
보상심리라는 반동을 대다수가 이겨내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점진적으로 타락을 한다. 

역사는 파도와 같다. 어차피 인간이 제대로 서있을 수 없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 
공산주의는 신기루로 사람을 현혹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침몰시키고, 건강한 상식위에 서있는 자유보수는 
튼튼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태워 한시대를 보전하지만, 계대를 위하여 배를 만들었던 수고를 반복하려 않는다면 
자신들의 시대에만 평안이 잠시 머물 뿐이다. 

계대를 위하여 배를 만들었던 수고를, 안전한 배를 만든 뒤에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매우 억울할 것이다. 
이룩한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들을 자손을 위해서 갈아넣어야 한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껏 일베에 눈팅하기도 꺼려지고, 글 쓰지 않았던 이유는, 
일베가 굳건한 자유보수의 플랫폼임에는 분명하나, 대부분의 유저들이 쾌락과 일확천금과 부에 대한 
막연한 관심에 목말라 있는 자신들의 그러한 모습이 사실 공산주의가 원하는 모습이라는 걸 인지하지 않는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간단하다. 동일한 분배라는 미명으로 현혹하여 사유재산을 금하는 지도자층에 스스로를 세운 소수가, 
매우 어리석은 다수의 위에 군림하여 사람들이 자신들을 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유재산을 금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가족구성개념을 저버려야하는데, 왠만한 정상적인 사람들은 
배우자간의 돈독한 신뢰 위에 서있는 가정을 소망하기 때문에, 공산주의를 수립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가족개념을 저버리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로 성적방종에 배덕감을 느낄 명분을 제거하기 위하여 
매체, 성산업,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전통적인 가족관념에 반하는 성적 가치관을 계속해서 다수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가랑비에도 옷 젖는다고, 공산주의적인 성적관념에 영향받은 대다수는, 정치적 성향은 자유보수라고 자긍할지라도, 
실상 삶으로 들어가면 자유보수적인 정직한 삶이 아니라, 술집에 몸을 맡기거나, 원나잇, 결혼과 구별이 없는 
문란한 연애, 책임 없는 쾌락, 술, 폭력, 사행성 게임들, 그리고 일하지 않고 돈벌려는 불한당격의 여러 활동들에 
잠겨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라는걸 알 수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보수는, 인간에게서 비롯된 정치질서가 아니다. 사실 기독교의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보수,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나서도, 우리는 안일해지지 않고 죽음이후에 소망을 두고, 
주어진 평화를 자기 것으로 사용하기를 민망해하며, 자신의 방종에 대한 정당화로 그 평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시 자손들을 위해서 올바른 관념을 계대하는 데에 다시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정말 자유보수를 꿈꾼다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해라. 잠시 승기를 잡은 것 같은 이 때에, 
예수님을 만나려고 해라. 믿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그럼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그 사랑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가 있다. 살아계신 주님이 제공하는 능력 안에서만, 진정한 자유보수가 이루어진다. 

자유보수는 인본적인 정치성향따위가 아니라, 쾌락으로 자꾸 기우는 자신을 날마다 죽여내는 끝없는 희생의 사랑이다. 
그런 사랑은 인위로는 할 수가 없고, 진리의 기둥에 사랑때문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야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