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이후의 한국 경제 성장의 비밀
- 기습적 금리인하는 변장된 유신체제 경제학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오점을 유신체제의 결과물로 설명하여, 민주당의 귀책사유를 지워주는 것을 좋아한다.(물론, 민주당시대에서 문제가 시작되는데 국힘에서 크게 터진 문제의 경우에서, 크게 터진 현 시점을 지우고 문제의 기원만 밝혀적는 글을 보수우파도 좋아하기는 한다) 이 글의 ‘부제’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유신체제 케인즈 경제학’과 ‘김대중 대중참여경제학’은 ‘한 뿌리’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한 뿌리’인가?
 
오늘 아침 인용하는 조갑제닷컴 회원 ‘무학산’의 글에서 유신체제처럼 시대착오적으로 ‘國法’을 논하는게 여전히 이행된다는 점에서는, ‘한 뿌리’였다.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는 민법질서가 본질인데, 유신체제 임금 경제학이 뭔 말인가? 그렇게, 6월 항쟁을 치루고도 2024년에 유신체제처럼 ‘國法’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조갑제닷컴 회원 무학산의 어조는 ‘국법’을 논하며 고대중국의 종법제 질서를 논하지만, 유신체제와 스타일이 다르다. <제후 중심 질서에 종속된 바지저고리 임금>이 곧 <國家>라는 ‘전라도식’ 고대중국 정서다.
 
유신체제에서 재벌중심은 ‘탑 다운’으로 나타난 체제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의중 안에 재벌 편중이 공공복리로 설명된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저가상품을 수출하려면 원가관리해야 하고, 원가관리하려면 권위주의 유지, 권위주의 유지가 원가관리..... 이렇게 탑다운 방식의 영남 봉건제에서 이것의 유지가 헌법의 공공복리로 설명됐다.
 
헌법의 공공복리 조문은 이제는 ‘바텀 업’ (전라도 동학)원리로 나타난다. 의료법 사태에서 윤석열 정부의 의료법의 정당성도 여기에 해당한다. (조사쿠라 조갑제는, 그 때 그때 선택이 달라요!)
 
미국이 0.75포인트 금리 인하를 했다. 한국이 0.5정도 금리인하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미국이 열어주었다. 미국이 强달러로 가는데도 금리 인하를 했다. 둔촌 주공 살리기라는 말이 많다.
 
한국 사회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원불교’는 전라도 씨족의 시각으로 보는 신라 읽기다. (경상도 유교로 신라읽기가 아니라) 부족연합 짬짜미 개념으로 재벌들에 대부분 건설사가 끼어 있고, 재벌들의 화두는 엄청난 금융 문제가 엮여있는 둔촌주공을 법 위에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즉, 심플하게 말해서,
 
<둔촌주공살리기>=<의료법 의대 정원 확대> 로서 헌법 공공복리 조문에 걸리며, 이는 군사정권 유신체제에서 국가안보 및 군사정권 식 재벌 편익 주는 문제와 동의어가 된다.
 
김광석 한양대교수는 유튜브를 통해서 한국은행이 하면 안되는 일을 했다고 분노를 표했다. 김한진 박사(삼프로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이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을 했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 원칙과 어긋나게 갑자기 쌩뚱맞게 고대 부족국가에서 귀족연합으로 제일 꼭지점 귀족이 납신다! 하는 원칙이 나왔다. 시장경제원칙에서 명백히 어긋난 것이다. 재벌님들은 특등귀족, 나머지 코스피는 개차반귀족. 코스피 희생시켜서 둔촌주공 구하자는 원리에서, 한국의 시장경제는 원불교로 해석한 ‘육두품 경제학?’이라는 자조감을 들게 한다. (물론, 군사정권에서 탑다운 봉건제에서, 유신체제는 계단식 수직봉건 경제라는 자조감이 있었다.)
 
경상도식 임금 경제학인 유신체제 경제학이 끝나고, 전라도식 임금 경제학인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학이 발현한다.
 
경상도식 임금경제학의 가장 원초적 뿌리는 조선전기이거나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와 연결된 마인드일 것이다. 전라도식 임금경제학의 뿌리는 노론독재 때의 약탈경제이거나, 6.25 전쟁 때 공산군 진영 때 남로당의 약탈경제가 뿌리다.
 
김대중지지자들이 유신체제 때에 썼던 말이 있다.
 
국가(경상도 동학 귀족이 지배한)를 어떻게 믿나?
 
그 김대중 지지자들은 국힘 정권이지만 주요 요소에 원불교 지배이념으로 장악 중에 있다. 그리고, 트래블 제이 유튜버 같은 경우 <‘싸가지 없는 미국’을 어떻게 믿냐?>는 이야기를 한다. 유신체제에서는 경상도 사람들이 경상도 정치가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는 지를 몰랐다. 김대중체제에서 전라도 사람들의 정치가 전라도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응가응보라는 진리로서 “원불교(사탄교)를 어떻게 믿냐?”는 말로 30여년만에 대꾸 논리를 썼다.
 
경상도 외부에 갑자기 쑥 튀어나온 경상도 씨족주의가 정교일치로 들어간 경제원리. 당혹스러우며 이를 못 믿겠다는 말이 자동으로 발사될 수 있다. 마찬가지 원리다. 시도 때도 없이 전라도 외부에 전라도 씨족주의의 정교일치가 들어간다. 경제 전문가도 당혹스럽거나 분노할 지경이다.
 
김영삼 정권을 세운 할아버지들은 부정하겠지만, 필자는 김대중체제의 시작을 김영삼 정권으로 설명한다. 사회과학의 ‘모델’ 논리로서 김영삼정권은 큰 틀에서 호남식 지배체제였다고 설명될 수 밖에 없다. 즉, 김영삼 지배체제는 영남에서 호남과 입장을 같이하는 양반지배체제. 다시 말해서 영남 老論이라고 평가하는게 논리적이라고 보여진다.
 
유신체제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신가? 그 당시에 개벽신앙 등 토착신앙은 군사정부에서 부정당했다. 군사정부가 기독교를 표나게 지원하고 미국 공화당에 잘 보이려 서학파 정부이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실은 군사정부도 동학지배세력이 주도했고, 개신교는 얼굴마담이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유신체제에서에 ‘성리학적 유교’마인드로 박정희, 전두환에 충성을 강요하는게 시대적인 분위기였다. 그런데, 김대중은 이렇게 발견했다. 성리학 임금이 아니라, 유불선 통합임금이 전망이다.
 
조사쿠라 조갑제의 만물을 관통하는 전라도사람들의 임금!!
 
제왕학으로 달통하여 전 영토를 유교의 義로 해야 하는 전라도 사람의 임금!!
 
오직 전라도 씨족에게선 보수정당 경상도 씨족 집권에서만 나타나는 외부씨족 권력 때에는, 언제나 전라도식 맹자 읽기로 임금의 부덕함이 마치 서양법의 정당성 타당성 결여로 보는 엽기가 나타난다.
 
그래서, 군사정권은 <탑다운 영남 봉건제>의 박정희, 전두환의 임금기우제를 믿어요, 가 경제.
 
김대중체제(김영삼 정부 이후 30년)는 <바텀 업 호남봉건제>의 제후들의 바지저고리의 임금 기우제를 믿어요,가 경제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를 책임진다면서, 정부는 습관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시그널을 발산했다. 원불교 박지원이 원불교 김종인 권력을 무너뜨려서 원불교 박지원의 꼭두각시로 보이는 한동훈을 박아넣으려는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윤석열 정부관료에도 김종인계 양반집단이 상당히 포진됐을 것이라는 추정은 무난할 것이다.
 
노태우 정권 막판, 김영삼 정권 초입.
 
남북을 아울러
동서를 아울러
좌우를 아울러
등등의 의미로서 中庸이 무한대로 강조가 됐다. 그런데, 중도 중용 조화균형 상생 화해는 씨족의 기준을 넘어서면, 정반대로 해석된다.
 
한국경제의 문제는 이런 문제다.
 
<생각을 잘하는 형>이 대신 생각해줄게. 어여, 형만 믿어.
다 맡겨. 형에게 맡겨!
 
그리고, <생각을 잘하는 형>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믿는 씨족은 형이 동생을 끝까지 책임지듯, 씨족을 개벽신앙 이상으로 끌고 간다.
 
이런 생각은 일베정게에서 흔하게 나오는 발상이다.
 
국힘에선 관료로서 모든 것을 다 맡은 <생각을 잘하는 형>이 불만이다. 이재명 민주당에 생각을 더 잘하는 형이 있다. 그렇게 줄 바꿔야 경제가 잘된다?
 
그게 경제인가?
 
지금 정치플랭카드 보면 국가폭력(경상도 종족의리)을 무너뜨리고 민주화 기념(호남종족의리)로 채우자.는 글이 많다.
 
결국은 생각을 잘 하는 형!이 온 우주를 국민대신 생각해준다.
 
딱, 공산주의 서적 공부한 사람들은 이 문제를 담박에 안다. 고대중국에 공산주의 원형 심리가 있는 것이다. 조사쿠라 조갑제가 漢字사랑하고 주체사상 모른다, 마르크스 모른다는 비겁한 변명이다. 조갑제의 한자사랑은 명백히 민중혁명론자의 용어인 民을 꽂을 만큼, 대부분의 운동권 후원 사회과학 서점의 중국경전 파는 심리 비슷해있다. 백기완의 딸 백원담씨가 ‘마르크스=공자’의 책을 내는 바탕과 비슷하다.
 
조까무라 조사쿠라 조갑제의 끔찍한 악마의 경제관은, 사실은 지난 30년에 익숙하다. 그리고, 일베정게 ‘익명50마오’처럼 도교(이는 군사정권 때 부정된 양반당파)를 강조하며, 이승만에서 이어진 서양인문학 논리를 극복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이혼숙려캠프]는 부채가 너무 많은 한국에 병이 든 30-40세대의 인간유형공부 장소로 보인다.
 
경제유튜버들은 대부분 투사가 아니다. 금권 권력에 덤비는 일은 금기로 알고 있다. 오늘은 복지에 의존하여 대책없는 가정을 본다. 서장훈이 ‘일을 하세요’하고 분통 터져할 만큼, 대책이 없다. 필자는 ‘둔촌 주공 살리기’가 사실은 특권계급 살리기만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기본도덕도 잃어버린 복지에 의존하는 인간유형도 있다.
 
이효석 아카데미 채널에 출연한 이재준 국방연구원 박사는 군사정권 때 소외됐다가, 지난 30년을 기득권을 누리는 양반가문인데, 현재의 경제문제를 초래한 판단착오를 저지른 분을 상징한다. 이재준 국방연구원 박사는 자신의 자아만이 현실학문이란 생각으로 노장사상이 결합된 권력주의를 구사한다.
 
이재준 국방연구원 박사는 이효석 아카데미 채널에서 이런 논리를 주장했다.
 
바이든/해리스 민주당 = 성리학적 도덕 =규제
트럼프 공화당 = 탈규제 =탈 도덕
 
과연, 그런가? 김영삼 정권 이후에 이재준 박사 같은 해석이 한국의 미국해석으로 지배했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도 일베정게에 거주하는 ‘익명50마오’나 김정민 박사등 보수진영의 동학신앙 세계관으로 미국을 자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트럼프 지지층과 바이든 지지층은 서로 다른 유형의 기독교신앙의 지지층이 있고, 서로 다른 유형의 경제원리와 사회원리와 연결된다. 이재준 박사같은 동학신자의 미국읽기는 미국의 왜곡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의 한국경제성장의 비밀을 논하자.
 
김영삼 이후 등장한 유신체제 내내 소외된 양반가문은 미국시장경제를 노장사상 중심의 이단 원리로 설명했다.
 
아담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시장경제의 출발지대인데, 미국장로교와 연결된 미국복음주의 신앙, 그 연장선에 근대서양계몽주의와 연결된다. 이를 박세일 교수와 김정호교수는 노장사상적으로 해석했다.
 
김대중정부의 카드대란,
노무현정부의 부동산,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붕괴 위기 수습,
다시 문재앙 정부의 부동산, 윤석열 정부의 수습.
 
여기서, 모든 경제성장의 비밀은 군사정부때 노동가치로 형성된 자본을, 도교적인 사고로 전혀 보호 없는 상황으로 노출시켰다. 미국의 해리스 캠프에서 한국의 더불어 민주당이 보였다면, 트럼프 캠프의 ‘스테이블 코인’에서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 이해방식이 보였다.
 
모든 것을 대신 생각해주는 형....
이 허경영이나 옴진리교 교주처럼 전능함을 믿습니다,.....
라고 믿는게 너무 오래 지속됐다.
 
차츰 차츰 시장경제로서 한국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히틀러 시대처럼 아메바적인 대중으로 바뀌었다. 그 아메바 대중들이 애써 근로가치로 형성한 재산이, 자본시장 확장의 불쏘시개가 됐다.
 
군사정권은 국가폭력으로 문제를 설명했다. 자본시장버블을 만들고, 군사정권에 소외된 분들이 아낌없이 보상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는 옴진리교가 권력획득할 때처럼, 종교폭력의 문제다.
 
대런 애쓰모 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제도가 시장경제의 토대이며, 생각을 대신해주는 형은 기대조차 안하는게 건전한 성장의 토대로 논한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로 갔다.
 
공권력 남용의 유신체제가 가고, 1만권 읽은 김대중이 생각을 민중 대신 해드립니다. 군사정권 보다 월등히 더 커진 엽기거대정부가 와도 별로 국민이 저항이 없다. 생각을 대신 해준다니까.
 
구한말 해외선교사가 구한말 사회를 그린 책들에 비춰진 사회상과 지금은 붕어빵처럼 유사하다.
 
법, 규칙, 규범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문화로 바꾸느냐, 그 사회의 지식층의 문제다.
 
 
유불선을 통합하여 국민의 문제를 모두 대신 생각해주는 형을 바랬는데, 윤석열이 잘못이다. 이재명 어떨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일베노인이 잘못이다. 국방연구원 이재준 박사처럼 보수정당에 연결된 특정동학당파 양반색깔로 왜곡된 원리를 퍼뜨리고, 교과서적 원리를 왜곡해서 문제가 됐다.
 
70대 이상 고졸 이하의 동학노인에겐 상상이 되는게, 대졸이상의 50대 이하에선 이걸 믿냐? 병신 아니야? 하는 단계다. 그런데, 김대중체제는 노인을 안고 영 아닌 논리를 사이비종교지배체제로 강요한다.
 
 
보수사회의 골을 비게 해야, 보수영역을 진보진영에서 생각을 대신해줄게 다 내놔가 된다. 그런 이유로 1994년 이후에 보수인문학은 조사쿠라 조갑제 박정희 전기만 팔리고 나머지는 처참하게 파멸지경으로 붕괴했다.
 
경제위기는 여야 동학신앙 합작으로 해서 찾아온다. 동학신앙 노인 아닌 이들은 전부 동학신앙의 불법행위에 피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