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해리스의 민주당이 민망해졌다. 트럼프의 공화당이 훨씬 더 권력적이었다.-대한민국은 미국의 자유진영 승리를 바라며 참는 길 뿐인데-
 

 
대부분 한국의 보수 복음주의 신자들에겐 해방신학에 부정적인 기억이 있다.
 
, 규칙, 규범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자유민주주의에 해방신학이 중대한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든/해리스의 사회민주적 정책에는 여전히 해방신학의 서사가 있다. 그러나, 정책 집행에서는 정적인 사유로서 부르주아 사고와 타협한 지점이 발견된다.
 
반면에, 트럼프 정책에서는 한국에 번역된 미국 민주당 학자의 평가처럼 서양고대의 권력지향 산물이 나타난다.
 
미국의 정치양당은 원조 기독교 권력론이 민망할 정도로, 권력정치로 들어섰다. 자유진영 패권 다 내놔.
 
기독교기반으로 법, 규칙, 규범을 매기는 패권질서가 아니라,
 
맹자의 사대조공질서로 법, 규칙, 규범을 중국이 매기겠다.
 
원불교인들은 양다리 치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하지만, 사실은 이익은 원불교 귀족, 고통은 전국민과 전세계를 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필자는 원불교가 추구하는게 거의 1930년대 파시즘권력을 능가하는 씨족적 권력주의로 본다. 특히, 양쪽에서 이익이 되면 다 줄대자는 위주로, 이익은 원불교, 고통은 국민과 전 세계에 전가한다.
 
사실, 군사정권 기독교는 레이건 미국의 전 세계에 동방적인 사회민주 논리의 숨김에 치중했다.
 
이제는 꼭 기독교사민주의를 은폐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게 더 양반질서다.
 
지리산 무당신앙이 極惡이고, 이게 끼어 있는 원불교(사탄교)는 자기들에 極樂을 위해, 원불교 신자 아닌 쪽에 極惡을 스스럼없이 한다.
 
이 분들이 또 한국의 국제정치로 反美에도 주로 줄 대는 분들이다. , 보수가 전망 있으면 또 보수에 줄 집어넣고, 또 들어가면 또 반복이다.
 
한국정치는 잠시라도 이성적,
 
잠시라도 합리적
 
이런게 보장이 없다.
 
원불교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한 경우이고, 동구권 푸틴 러시아 및 중국공산당은 사도바울이 부정하는 <종의 멍에>를 넣는 그런 질서에 입각한 국제관계를 새로 편성하려는 움직임이다.
 
사실, 군사정권 복음주의 신자들은 가난의 시대에 규범을 지키다가 현타가 들었다. 현타가 들어도 30년 넘는 현타는 말이 안된다. 그 이후에 지리산 무당신앙 깐 권력주의로 정주행했다.
 
1930년대 서양지성사를 오늘에 비춰보면 답이 보인다.
 
성경의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성경의 하나님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