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확실히 미쳤다. 서구의 경제 애널리스트는 이 현상을 분석 못한다. 국민이 정부 신뢰만 믿고 경제이론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미친 투자를 반복한다. 그리고, 민초는 ‘꼭지’에 물리고 이익은 귀족이 본다. 이게, 경제신문만 분석하면 숱하게 반복되는 老子적 소통의 결론이다.
필자는 통일담론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지주-사대부로 꼭지점으로서 민초들에게, 우리 돈 벌게 부채지고 어서어서 사라 이기야! 하는 것의 연장선으로, ‘내가 권력쥐면 우리 마을 뚱뚱따하게 해준다’ 그러한 메시지를 반복한다고 보았다. 30여년 넘게 1980년대 통일운동을 연구하니, 결국은 80년대 통일운동은 조선시대 노론사대부들의 군사독재 지배층이었던 남인 성향의 사대부에 대한 종족복수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유신체제는 법 위에서 절대 균형을 형성하는 국가였다면, 김대중체제는 씨족주의로 줄줄이 이어지는 연줄 라인의 연합으로 조선시대 임금(조선공산당) 국가로 나타난다. 국민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알 사람은 다 알지만, 공산파의 수장은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이자 이승만의 평생의 정적인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신채호 선생의 기본관점이 임금 사관이다. 당연히, 김대중체제에서는 ‘고용유연성’은 없다. 다만, 김대중체제에서 급진화되는 것은 권력을 쥐지 않은 쪽에 ‘부담의 전가’다. 한국사에 조금 지식이 있는 분들은 안다. 조선시대 내내 권력을 쥔 부족이 아닌 부족에 부담을 전가했고, 삼국시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북한공산당의 한국문학사에서 고대와 중세가 남한 것과 똑같은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주체사상 김일성주의는 명백히 고대와 중세의 한국사 맥락에서 나왔다. 뒤집어 말하면, 고대와 중세가 그 자체로 아름다움 아니라, 악마적인 지옥도 찾으면 굉장히 많다는 말이다.)
유신체제는 반론을 권위주의로 틀어막았다.
김대중체제는 지식인 다 틀어막지? 일반인이 우째 검증하겠노? 의도적으로 몽롱하게 남긴다.
필자는 경제학이론의 민법 기반이 아니라, 씨족기반으로 뒤바뀌어 우리 지주(영웅)님은 우리 함부로 못할 거야 라는 해괴망칙한 논리로, 영끌을 주저없이 행하는 것을 여러번 규탄했다. 아랫것이 지주가 신뢰라고 보나, 지주는 아랫것을 도구적인 가치로 본다. 생각이 달랐다. 이 다른 생각이 ‘이익은 자기화, 손실은 사회화’의 원인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지식생산은 어디에서 나온다. 지식생산자는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안다. 이 사람들이 민초들에게 진실을 알리는데 입을 털면, 바로 해고될 것이다. 따라서, 군사독재처럼 어렵게 정보 통제 안해도, 백성은 정보빈곤에 빠진다. 그 정보빈곤 속에서 일베정게 노인들이 상상속의 허위 조작정보 만들기 경연대회가 벌어진다. 제대로 된 정보의 소통을 막고, 그 위에 곡학아세를 더욱 진흥해버린다.
삼성전자 정책 결정권에 최악의 관료주의가 있다는 지적에, 도로 유신체제 관료주의인가? 그때는 반론억압, 지금은 노비계급 우민화(바보화)의 신적 경지. 약간만 다르고 나머지는 대부분 같다. 사실, 잘 따지고 보면 군사독재의 가해자 기득권집단이 성공적으로, 김대중체제에 옷 바꿔 입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게 보인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고, 노론의 감투지향성으로만 ‘정주행’하면 이런 모습이다)
기독교신앙지식도 똑같다. 삼위일체 성령공동체 교회는 삼위일체를 세속적 서양인문학으로 논할 때, ‘성경’이 法이 되는 민법적 질서 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씨족주의’가 압도하여 뒤바뀐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예수 믿는 그대여, 그대는 오래전에 동학농민 노예후손이다. 너의 무의식에는 노예후손 dna가 있다. 그거 어떻게 부정하겠나? 기본적으로 동학과 개신교신앙이 섞일 때, 십계명 대부분을 거역하게 된다. 기독교신앙이 아니다. 아닌데, 니깐게 뭐라고 씨족주의 공동체에서 ‘아니오’하고 내부총질하나? 들이대면 공동체에서 나가라!
군사독재처럼 꼭 권위주의로 반론 억압할 이유가 없다. 씨족주의 동심원으로 내부봉쇄하면 필자의 경우도, 부동산현업 경험을 만 10년을 딱 채우고 입털기 시작했다. 군사독재 때 내부고발이 어렵다.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문제는 내부고발을 하면 군사독재는 반성이란 게 있다. 지금은 없다. 군사독재는 1인 권력 무너지기 전까지 반론자의 노여움의 대상이듯, 김대중체제는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 반론자는 노여움의 대상이다.
제일 걱정스러운 게 있다.
국민의 힘의 정부 복지정책 홍보는 동학 노비들에게 하는 선전 자체다. 지주계급이 중심잡은 복지는 흔들림없이 영원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미중통화패권전쟁에서는 깨진다. 이렇게 영원하다고 홍보하고서, 깨지면 윤석열(바지저고리 임금)책임전가할 것이 518%로 확실해 보이나, 사실은 동학신앙 그 자체의 ‘악마성’에 있다.
한국개신교 교회의 가톨릭 비난의 상당부분을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따지고보면 종교개혁 정신이 아니라, 가톨릭 몸통에 김대중파(현재는 원불교 박지원) 양반가문이 끼어 있다는 의미로만 해석된다. 사실은 ‘개신교’대 ‘가톨릭’보다, ‘개신교’대 ‘원불교’(사탄교)의 거리가 월등히 더 멀다. 희한하게 동학신앙은 품고 가톨릭을 때린다. 문제는 가톨릭의 신부에 물개박수보다, 원불교 및 동학신자 증세가 나타날 때 무뇌아적 물개박수가 훨씬 더 심각하다.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란 명제 자체도 사실은 종교혼합의 산물이다. 당장 SNS에서 영어로 성경본문 올려보시라. 엄청난 인원의 미국 및 서방기독교신자의 ‘아멘’나온다. 반면에, 민족복음화 세계 복음화란 전제는 전라도 사대부의 大學읽기 세계관이 보인다. 삼위일체 성령 공동체의 온전한 예수 따름 세계관은, 어쩌면 사대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속에서 존재한다.
그 사대부 자아에 원불교식 남북을 품는다는 것 자체는, 기도로 시작됐다고 하는 대한민국 성립질서를 뼈째로 부정한다. 그런데, 이 원불교(사탄교)신앙을 바라보는 이들에겐 아니다. 불륜하는 남성이 결코 정실부인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불륜남성 머리에만 가능하다.
군사정권은 교육받은 세대들을 업고 배운 층을 기초로 지배했다.
김대중체제는 똥물에 튀겨죽을 동학사상이 정치경제 사회문화 모든데에 퍼지고, 동학사상에만 미치광이가 된 고졸 이하 노인, 그리고 원래부터 남성들이 비하하는 의미로서 느껴지는 한국여성의 ‘단세포’적 기질, 등등 생각이 멈춘 일차원 군중을 포획한다. 그 일차원 군중에 생각이 멈춘 감정의 정치를 유발한다. 이게 민중혁명의 ‘민중’이다.
헌법의 국민은 종교개혁 정신 연장선의 근대 계몽주의이고, 민중혁명의 민중은 생각이 멈춘 노예계급의 공산혁명가 물개박수다.
통일담론도 중요하다.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다. 노동이 시장에 투입이 줄어든다. 노동량만큼 국민의 총 부가가치를 전제로 돌아가는 모든 시스템은 박살난다. 북한주민 걱정 하는 분들은 ‘원불교’(사탄교)의 약탈 시스템에 고통받는 남한 국민을 언제나 외면한다.
참된 진보는 ‘원불교’ 타도 운동 뿐이다.
군사정권 반공에 탈탈 털린 남로당층은 군사정권 반공이 파시즘이라고 그랬다. 그러나,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원불교(사탄교)에 덧입힌 진보사상은 그 자체로 초 수퍼 울트라 ‘파시즘’이다. 특히, 특정 조상신의 소유여부가 과도한 자의적 우대성으로 남의 국민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칼 마르크스의 혁명론을 적용하면 한국에는 원불교 타도 운동 뿐이라고 본다. 조상신과 얽힌 씨족주의와 그에 기반된 특권경제는, 시장경제 본체를 갉아먹는다. 씨족주의와 그에 기반된 특권경제는 한번도 동의받은 바 없는 불법적인 것이다.
동시에, 한국의 참된 보수주의는 원불교 분리운동 뿐이라고 본다.
자유는 상대에서도 이성적인 원리가 통한다고 미래가 예측될 때 나타난다. 한국은 원불교(사탄교)의 미치광이 논리가 작동하여 투명한 이성원리가 없다. 물론, 투명한 이성원리가 아니라 씨족원리로 고졸 이하의 세상에서는, 대학 학문 이상의 언어가 지배하는 언어가 숨막힐 수 있다. 문제는 못 배운 사람 기준으로 나오는 물개박수 시스템이 지금 부서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조선시대 귀족계급은 자기가문만을 지향하고 거짓이 많고, 하위신분의 약탈을 즐겼다. 도로 과거로 가자는 것에서, 그 이익은 귀족이고 손실은 오로지 평민이다. 통일담론은 사실은 전라도 사대부 씨족원리 위에 동학신앙, 그 동학신앙 위에 조선공산당 질서로 가자는 말이다. 그 질서는 한국개신교 박해와 연결된다. 종교혼합하면 안 간다?
성경은 다른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나?
조상신이 어떻게 성경의 하나님인가?
필자의 시점은 그렇다. 근대국민국가 시점으로 한국사회에 닥친 경제문제를 외면하고 훌쩍 도망가는 북한문제가 뭐니?
다른 분이 나를 볼 때 그럴 수 있다. 원적이 함남이라면서?
필자의 반론은 또 그렇다.
지난 30년 눈물나게 억울하고, 스스로는 성경상에서 수난받는 인물 다 거론될 만한 것에 대해서, 원불교(사탄교)와 종교혼합하는 분들은 외면한다. 십자가 예수 따름이 없으니 씨족원리안에서 타자가 보일 리가 없다. 내가 이런 판단을 함은 나는 그쪽을 인식한다는 이야기다. 그쪽이 나를 인식못한다.
대한민국은 원불교를 극복해야 살아난다(보수주의)
대한민국은 원불교를 타도해야 살아난다(진보주의)
원불교가 낀 모든 것은 다 부서지고 있다. 원불교 세계관이 낀 모든 것은 믿지 말아야 한다. 교회에 신분을 두고 말하는 원불교세계관이 끼어있는 표현을 말하는 분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