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간에서도 상호 물자교역하려면 신의성실 원칙이 있어야 한다. 헤겔의 인정이론이든지, 칸트의 영구평화론이든지, 그런 것을 따지지 말고 ‘러프’하게 국가간에도 민법 원칙으로 개인의 대인관계 같은 것이 국제관계에 있어야 한다.
한국의 남북문제는 원불교 백낙청 주축이다. 미국엔 한글과 한국인의 사유를 잘 아는 미국인이 이젠 많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을 읽었을 것이다. 백낙청의 남북문제가 세계체제를 깨뜨린다는 말을 잘 해석할 것이다. 즉, 중공이나 북한에 나라를 팔아버리면, 미국은 한국을 아끼는데 괴롭겠지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필자처럼 매일 반복에 반복하여 백낙청 처벌을 일베에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서양인문학으로는 원불교 백낙청 처벌은 당연하다. 냉정한 말로, 군대의 우크라이나 지원보다 원불교 백낙청 처벌이 압도적으로 우선한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송의달기자를 통해서 의사표현을 했다. 안했다. 이 맥락은 ‘소설가 한강’으로 6.25전쟁 한미연합군을 빈정거리는 한국대표 아이콘과 연결된다.
원불교인들은 국제적으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처럼 생각하는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하나님을 사기치고 이웃을 사기치고 세계를 사기치는 것>이다. 소설가 한강이 마치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고, 한국에는 트럼프지지층이 있어서 미국 민주당에게 한국 보수우파에 소설가 한강 류를 품어야 한다는 관용을 강제하는 <삼각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민주당원의 세계가 아닌 영역에서, 한국 일반국민과 미국 공화당원에게는 <삼각 사기극>이 보인다. 그런데, 미국 민주당원은 이분들의 기독교 사민주의 신앙에서는 진실이 안 보이거나, 과도하게 과소평가가 된다. (이러한 삼각사기극과 가장 유사한 경제적 대응물은 큐텐 구영배 대표의 ‘나스닥’ 상장이다. 큐텐 구영배가 글로벌리한 세계시민이란 전제로 미국인이 호구당한 것이다.)
“자유주의”란 이데아가 국제사회를 재편했다.
역사의 종말이다.
독재국가는 인간성을 외면한다. 그래서 분란으로 국가 붕괴한다.
..라는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이 종말을 맞았다. 그게, “개꿈”이었다.
오히려, 거꾸로 자유진영의 민낯, <법, 규칙, 규범>을 와해시키는 폭의 확대가, 시스템 붕괴를 가져옴을 보았다.
“관세”는 과연 한국 경제유튜버처럼 생산시설 미국 이전에만 사용될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안다. 미국에 생산시설이 아무리 많아도, 고임금으로 만든 제품은 기본적으로 비싸다. 해외직구로 얼마든지 미국인들은 해외에서 싼값으로 주요생산물을 살 수 있다. 아무리, 약달러를 주장해도 기본으로 미국인들은 고임금을 줘야 하는데, 생산물은 저임금을 주는 국가와 상대가 안되게 비쌀 수밖에 없다.
리만사태 이후에 오바마 미국이 품었던 중국까지를 아우르는 국제질서가 기본일까? 미국 트럼프 1기가 깼고, 미국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를 계승했다.
한국인들은 리만사태 때에 나온 쏭훙빙의 [화폐전쟁]을 기억한다. 위안화 패권을 노리고 있다.
미중대립은,
모택동주의 국제 세력에 대한 총체적 반대다.
모택동주의 국제세력에 개입됐다고 여기는 한에서, ‘관세’는 어디까지 올라가는거에요? 라고 묻는게 민망하다.
일베노인이 착각하는게 있다. ‘모택동주의’라는게 전원이 구성원이 모택동 합창하는 줄 안다. 말단에서는 중국경전 지식쪼가리 외우는 수준인데, 모택동의 지배방식에 순응하는 민중을 말한다. 이게, 이해가 어려우면 박근혜 탄핵 때 촛불군중을 생각해보자. 압도적 다수는 좌익이 아닌 촛불이었다. 그냥, 어버버버버버 대중이다. 어버버버버니까 미디어 선동에 낚시가 된다. 그 선동의 꼭지점은 친북친중임을 다수는 다 안다. 그러면, 역사기록은 어떻게 할까? 친북친중권력이 어버버버버 대중을 낚시했다고 기록하며, 그렇게 엮여진 하나의 권력을 주장한다. 즉, 마르크스의 마짜, 주체사상의 주짜, 모택동의 모짜가 없는 모택동주의 에 선동된 군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기독교사민주의 신앙에서는 안보이는데 한국인 및 미국 공화당의 세계에서는 잘 보이는 한국의 추악함이 있듯이,....
원불교(사탄교)인의 세계에서는 안 보이는데, 한국인의 성경대로 믿는기독교인과 고학력층에서는 잘 보이고 미국인들도 잘 보이는 세계가 있다.
김대중이 앤터니 기든스의 ‘제3의 길’ 방한 때, 기든스의 시민공론장개념을 김대중은 유불선 합일한 그런 조상신 아는 세계와 퉁쳐 버렸다. 기든스는 세계적 석학이지만 이 중국사상을 어찌알겠는가? 멀리 과거로 소급하자면, 민중신학 두목님들에 칼 바르트가 박사학위 줬다. 이율곡 유학사상과 이황 유학사상이 줄줄이 나오는데, 칼 바르트가 세계 석학이라도 어찌 알겠는가?
이 문제는 간단히 요약된다.
용산 대통령실이 여야 모두가 자기 앞에서 화합한 영정조 탕평인줄 안다. 그러나, 일반국민은 시민공론장으로 토론될 사안을 자기 마음대로 잡고 있다고 본다.
1인 권력의 남용이 아니라,
1당 권력의 남용.
종족권력의 남용이 벌어지고 있다.
두 집 살림하는 남성이 어느 한집 여자도 서운하게 안했다고 고백해도, 정실부인이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정실부인이 반론을 할 기회를 안주니까 나오는 그 발언이다.
보수우파에 제대로 공론장에서 발언할 기회를 안주니까 나오는 문제다.
멀리갈 거 없다.
일베정게에도 나타난 일이다.
법, 규칙, 규범을 강조하는 그런 서양식 질서를 논하면, 기독교라고 정죄하여 낙인찍으며 조상신중심의 신분제와 얽힌 생각을 토로한다.
윤석열이 탄핵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깔끔한 세계가 있다.
원불교 백낙청 사법처리
문재앙 종전선언 사법처리 둘 중 하나나 둘다 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모두 내란죄 공범이다.
미국 민주당원의 기독교사민주의에서는 완전히 은폐되는 것은 아니나, 안 보려고 노력하고, 한국국민과 미국 공화당원에서는 잘 보이는 세계가 있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헌법 질서를 사문화하는 남로당 인공씨족을 다 옳다하며
헌법 국가와 병행하는 질서를 취하나?
이렇게 하면 헌법 자유주의가 소멸한다.
“관세”는 단순히 미국에 공장을 끌어넣겠다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종편에 남북관계 평론가들은 미국 민주당이 동학질서를 품어줄 때를 전제로 썰을 푼다.
자유진영을 남북문제를 키울수록 뿌러뜨릴꺼다. 미국이 남북문제를 키워야 한다. 작심하고 미국을 호구화하는 어법이다. 신의칙에 위반한다.
한국의 부동산버블은 무조건 터진다.
이분들이 부동산 버블이 터지기 전까지는 ‘개소리’가 계속된다고 미국은 볼 것이다.
법, 규칙, 규범을 세우지 않고, 친북친중좌파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과 헌법 전문에 기록된 일제 강점기 공산가문의 귀족 기득권만 강조하는 국가는 국민을 그 귀족의 노예화하는 나라다.
군사독재처럼 꼭 권위주의 국정교육 안해도, 보수우파를 갈갈이 찢어버리니 이승만 이용사업, 박정희 이용사업을 넘어서는 정보가 없다. 그래도 국민은 ‘지랄하고 자빠졌네’하는게 현대인으로 기본이다. 동학노인은 너희는 조선시대 노비였어. 빨리 노비정서로 돌아가! 이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품어주는 미국 민주당 자유주의는 망했다.
버블이 터지고 나서 미국 민주당이 현재의 방식을 취할까? 그렇지 않다. 글로벌 하지 않은 자국중심의 기독교사민주의와 그에 연결된 공산혁명이 폐기된 맑시즘도 품을 가능성이 있다.




